나라의 흥망은 인재가 제대로 쓰이느냐 마느냐에 달렸다. 너무도 평범한 진리다. 다산 정약용의 사론(史論) 가운데 하나인 ‘진지제업(秦之帝業)’도 같은 내용이다. “예나 이제나 진(秦)나라를 말하는 자는 오직 배척할 줄만 알지 마침내 제업(帝業)을 이루었고 거기엔 까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삼대(三代) 이래로 인재 등용에 정해진 틀에 구애됨이 없이 오직 인재에 급급했던 나라는(立賢無方 唯才是急) 진나라뿐이었다.”

가혹한 지배 때문이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권력의 농간 때문이었다 등등 진나라의 멸망을 말하면서도, 진나라의 성공은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랜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최후의 승자가 된 데엔 뭔가가 있었다. 바로 인재 정책이었다.

진나라는 외국의 인재도 객경(客卿)으로 영입했다. 그런데 외국 빈객들의 진정한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쫓아내려는 상황이 발생했다. 궁지에 몰린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가 왕에게 글을 올렸다. 앞선 왕들이 외국 인재를 기용해 성공한 사례들을 들어 축객(逐客)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이사의 <축객서(逐客書)>에 열거된 여러 객경들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비록 그보다 못한 사람들, 가령 제나라 공족인 맹상군, 위나라 사람인 범저, 연나라 사람인 채택 같은 이도 현명하다고 생각하면 하루아침에 발탁해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그 그릇이 큰지 지려(智慮)가 심원한지 의심하지 않았으니, 이 점은 다른 여러 나라가 미칠 수 없었다. 진나라가 마침내 제업을 이룬 것은 마땅하지 아니한가?”

위 내용은 다산의 <혼돈록(餛飩錄)>에 실려 있다. 1930년대 간행된 다산의 문집인 <여유당전서>에는 빠져 있는데, 최근에 실학박물관에서 김언종 교수의 역주로 발간했다. 그 내용은 사론, 언어문자 등을 내용으로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범저(范雎)’다.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앞에서 리허설 연습을 하는 진나라 병사 복장의 공연단 모습 (출처 : 경향DB)


범저는 위나라 사람으로 진의 승상이 되어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을 폈다. 범수(范수)라고도 해서 헷갈린다. ‘저(雎)’와 ‘수(수)’, ‘且’와 ‘目’의 모양이 비슷하여 표기상 혼동한 탓이다. 다산은 두보의 시를 통해 ‘저’라고 결론지었다. “우리나라만 곧잘 ‘저(雎)’를 ‘수(수)’라 한다. 그래서 나는 병진년(1796, 정조20) 겨울 <사기영선>을 교정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특별히 ‘저(雎)’로 바로잡았다.”

진나라가 성공한 까닭은 출신·친소(親疎)·귀천(貴賤)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이다. 너무 먼나라 얘기인가. ‘입현무방 유재시급(立賢無方 唯才是急)!’


김태희 | 실학네트워크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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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