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중세 유럽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파라다이스, 즉 에덴동산(낙원)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뜬금없는 질문으로 영문도 모르는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중세 유럽 세계와 당시 기독교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낙원의 위치를 ‘알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 동쪽 끝에 낙원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믿게 된 근거는 창세기의 구절이었다.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이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셨고, 그 에덴동산에서 강이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4개의 강으로 갈라져 인간 세상으로 흘러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과 나일강을 낙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4개의 강으로 간주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굳게 믿었던 중세 유럽 기독교인들은 낙원이 아시아 동쪽 끝에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리학자들은 낙원을 지도에 그려 넣었고, 교부와 신학자들도 낙원이 지구상에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모두에게 낙원은 동쪽 끝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공간이었다.

 

13~14세기 몽골 시대 아시아를 직접 눈으로 보았던 유럽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동방 여행기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낙원에 대한 허구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중세 말 유럽에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보다 더 많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맨드빌의 동방 여행기가 그 대표적 예이다. “현인들의 말에 따르면, 지상낙원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어찌나 높은지 달이 돌고 있는 원 궤도에 거의 닿을 정도이다. 위에 있든 아래에 있든 온 세상의 땅을 휩쓸었을 노아의 홍수도 오직 그 높디높은 곳만은 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낙원은 벽으로 빙 둘러싸여 있으나, 그 벽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벽이 온통 이끼로 뒤덮여 있는지라 겉으로 보아서는 돌로 된 것인지 아니면 그 밖의 어떤 것으로 지은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 벽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고, 입구는 하나뿐인데 활활 타는 불로써 닫혀 있어서 죽어야 할 운명인 인간은 누구도 감히 들어갈 수가 없다.” 맨드빌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이렇게 낙원이 살아 있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지구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확신했다.

 

낙원에 대한 상상은 또 하나의 상상세계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프레스터 존이라는 왕이 다스린다는 기독교 왕국이 아시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환상이었다. 그곳은 낙원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땅을 적시고, 향신료와 보석이 지천으로 널려 있으며, 영토는 드넓어서 그 경계가 어디인지 모르는 지상낙원이었다. 기독교인들은 프레스터 존의 이 왕국이 곧 이슬람 세계를 제압하여 서방 기독교 세계를 구원해주기를 기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시아 동쪽 끝에 지상낙원이 있다는 이러한 믿음은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유럽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아시아를 동경하게 만들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낙원을 찾아 모험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에스파냐 왕실의 지원을 받고 인도 항로 개척에 나선 콜럼버스 역시 동방에 낙원이 있다고 확신했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자신이 아시아에 도착했다고 믿었고, 그곳에서 낙원을 찾아다녔다. 결국 3차 항해에서 오리노코강 주변에서 낙원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이 기쁜 소식을 에스파냐 왕실에 알리기까지 했다. 그는 오리노코강은 낙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이라고, 강어귀에서 들리는 소리는 낙원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내륙으로의 정복이 진행되면서 콜럼버스의 생각이 틀렸음이 밝혀졌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도 지구 곳곳을 돌아보았지만 결국 낙원을 찾지 못했다. 유럽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믿고 찾았던 낙원이 지구상에 없다는 슬픈 사실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때로는 비합리적인 듯 보이는 인간의 상상력이다. 유발 하라리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신화 혹은 전설 같은 가상의 것을 상상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그러한 예가 아닌가 한다. 대항해 시대 유럽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것은 역사적 대전환을 이끈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대체로 금과 향신료에 대한 욕구를 거론해 왔다. 특히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아시아의 향신료에 대한 안정적인 보급로를 찾는 것이 유럽인들의 중요한 목표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이 중요한 사건 이면에는 파라다이스에 대한 유럽인들의 굳은 믿음도 있었다. 파라다이스에 대한 믿음이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허무맹랑해 보여도,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역사적 전환을 만들어냈다. 파라다이스는 사라졌지만, 유럽인들은 그 자리에서 일확천금의 기회를 찾았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향신료를 비롯한 엄청난 이익의 기회를 찾았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는 유럽인들을 위해 일해줄 노예와 은을 찾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대륙인들에게는 지옥문이 열린 것이었다.

 

<남종국 이화여대 교수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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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