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난지 며칠 되지 않은 26일 오후부터 서울에 시작된 비는 하늘에 구멍난 듯 물폭탄을 쏟아 부었다. 내리기 시작한 지 2시간여부터 서울 중심부근은 이미 물바다로 변했다. 밤새내린 비로 곳곳이 침수되어 아침출근 시간 교통대란이 벌어졌고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버스안에서 발을 동동구르던 사람들은 뉴스보다 SNS로 더 빨리 상황은 파악하였지만 속수무책으로 발이 묶여 있었다.

와중에 서울시는 SNS로 피해상황 보다 시장의 동선을 중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였다. 물난리가 날 때 마다 인재(人災라는 말은 줄곧 나오는 얘기이다. 어찌된 일인지 작년 광화문이 잠기는 일부터,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는 서울을 또 보게 됐다.

비만 오면 전국적으로 상습 침수 지역이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대책이 시원치 않은 이유는 뭔지 궁금하다. 과거부터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수 있을지.. 비가 내일까지 계속 된다는데 큰 사고가 없기만을 바랄뿐이다. 

1970년대 물난리는 하수도 문제와 하천의 범람으로 구분할수 있다. 197063일자 신문에는 한강치수 사업
이 하루아침에 잘 될 리가 없다며 관계자들이 맥을 놓고 있다고 전한다
.
상습침수지역은 34군데 종로구의 5배가 넘는 면적이며 물에 잠기는 집만도 28백여채.난지도처럼 섬이거나 섬 주변지역이다. 형편이 이런대도 서울시의 치수 사업비는 미비하다. 그때나 이때나 시행정은 우선순위가 뭔지 모르겠다. 주민투표에 들어가는 돈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하다.


 70638

 

849월에 내린 집중호우와 한강범람으로 인한 홍수는 12년만의 최대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당시 한강수위가 11m 3cm까지 올라가면서 위기는 초읽기 였으며 망원동 펌프장이 유실되면서 6개洞이
대피하였다. 김포평야 반이상이 잠긴 홍수는 일부 사재기 추태로 생필품 품귀현상을 빚었다.

한강의 홍수를 보면 집중호우 직접피해보다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  72년엔 이재민이 23만명으로 큰피해를 입었다. 해방이전 역사적 대홍수로는 1925 이른바 을축년대홍수 가 손꼽힌다. 당시 제1.2 철교의 교각이 파손되는등 5백96억원의 엄청난 물적,인적 피해를 입었다. 또한 64년 9월 20년내 최대의 강수로 1천7백여mm 강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84년 9월 3일 7면  


909중부지방 푹우로 한강이 위험수위를 넘었고 40여명이 사망.실종됐다.
한강 홍수 경보는 84년 이후 처음이다. 4백밀리가 넘는 폭우가 내린 수원은 주민 2만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서울시 초,,고는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909111면 
 

9885일자 신문에서는 장마가 끝난뒤에도 한반도에 이상한 비가 내리고 있다고 전한다.
그 내용은 국지성호우라는 점에서 장마와 혼동 되지만 중국 양쯔강 부근에서 생겨난 거대한 저기압이 원인이라고 기상청은 밝혔다. 편차가 심한 이유는 한반도의 복잡한 지형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전한다.기상청은 궁극적으로 엘니뇨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중으로 이동한 열에너지가 비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98853

 
서울시의 수방행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수도 관리가 되지 않아 저지대 침수가 나타났으며 무사안일로 인해 수천억 시설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물난리의 가장 큰 원인은 하수도 역류와 환기구를 통한 빗물의 지하철 역사 유입이었다. 90년 대홍수 이후 3천억원을 들여 빗물펌프장등 수방시설을 대폭강화하였으나 이번에는 하수도가 막혀 주요도로를 비롯한 마포구 망원동 강동구 성내동 등 과거 상습침수지역이 다시 침수되는 일이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98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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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