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용 기자

ㆍ미국 연극사 새로 쓴 연출 거장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세일즈맨의 죽음>2차 세계대전 후 현대문명의 비극적 현실과 환상, 허망한 꿈을 좇는 소시민 비극을 그린 이들 작품은 한 사람이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이들 모두 미국 연극사를 새로이 썼다.

배우들의 내면연기를 통해 현대 미국인의 삶을 가감없이 묘사했던 연출가 엘리아 카잔이 1909년 오늘 오스만제국 치하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면직물과 양탄자를 판매하던 카잔의 가족은 1913년 ‘기회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대학 졸업 후 예일대 드라마스쿨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카잔은 1930년대 ‘그룹 시어터’에 들어가 배우 겸 연출가로 활약했지만 극단을 이끌던 리 스트라스버그와 해롤드 클러맨으로부터 “넌 재능이 있지만, 그게 연기가 아닌 것은 분명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연출에 집중하면서 26세에 상당수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1942년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기용해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위기일발>을 연출하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이어 아서 밀러의 <나의 아들들> <세일즈맨의 죽음>,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명작들을 차례로 무대에 올렸다. <나의 아들들> <세일즈맨의 죽음> 로 토니상 감독상을 3차례나 받았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로, ‘메소드 연기’가 거론되곤 한다. 카잔은 1947년 배우 로버트 루이스, 셰릴 크로퍼드와 함께 ‘액터스 스튜디오’를 세우고, 러시아의 연출가이자 연극이론가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발전시킨 연기훈련법인 ‘메소드 연기’를 도입했다.

메소드 연기란 극중인물과 연기자 자신을 동일시해 실생활에서 하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것. 카잔은 배우들에게 등장인물을 연구하고 직업 등을 유사체험해 인물의 내적 진실을 전달하고 무대 위에 표현되는 삶이 현실처럼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표현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메소드 연기를 통해 무명이었던 말런 브랜도, 몽고메리 클리프트, 칼 말덴, 제임스 딘, 워런 비티와 나탈리 우드 등이 명배우로 탈바꿈했다.

성공가도를 걷던 그는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1945년 영화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 이후 <신사협정>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등 20여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2차례나 수상했다. 카잔은 이민 1.5세대로서 자신이 겪은 체험, 자신이 바라본 미국 문명의 현실을 작품에 녹여 넣고, 이를 통해 문명비판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려 했다.

그러나 역경도 있었다. 1952년 매카시즘의 광풍이 할리우드에도 몰아치면서, 하원 반미(反美)활동위원회에 출두해 공산당원이었던 과거를 고백하고 동료 당원의 이름을 발설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미국 예술계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1999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 수상 당시, 후배와 동료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카잔은 2003년 9월28일 노환으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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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