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은 기자

ㆍ나치 내부서 권력 놓고 ‘피의 충돌’

하인리히 히믈러는 나치 제국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유대인 강제수용소 건설과 대량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SS라는 약칭으로 알려진 아돌프 히틀러의 친위대를 이끈 것이 그다.



1900년 뮌헨 근교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히믈러는 23년 에른스트 룀이 이끄는 나치 돌격대(SA)에 가입했고, 히틀러·룀과 함께 뮌헨에서 ‘맥주홀 폭동’으로 알려진 폭동을 일으켰다. 2년 뒤에는 돌격대 내의 친위대에 가입했으며 친위대 안에서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히믈러는 맥주홀 폭동 때 히틀러와 룀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반면 자신은 그냥 풀려났던 것에 끝없는 회한을 표했을 정도로 맹목적인 히틀러 추종자였다. 히틀러도 히믈러를 점차 신임하게 됐고, 마침내 히믈러는 29년 친위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히믈러 밑에서 친위대의 규모와 역할은 갈수록 커졌다. 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할 당시 친위대 조직원은 5만2000명에 달했다. 그 해 가을 히믈러는 ‘친위대 제국총통(Reichsfuhrer-SS)’의 호칭을 얻었으며 돌격대 사령관과 동급으로 승진했다.

히틀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히믈러와 달리 룀은 야심만만한 사람이었고, 돌격대를 아예 독일 제3제국의 정규군으로 만들려 했다. 이 때문에 히틀러와 룀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당시는 아직 히틀러가 절대권력을 굳히기 전이었다. 독일 정·재계와 군부의 보수세력이 돌격대의 횡포에 불만을 가진 것을 알았던 히틀러는 룀을 숙청하고 싶어했다. 집권한 히틀러에게 룀과 돌격대는 이제 방해만 되는 짐이었다.

히믈러는 이 균열을 치고들어가, 룀과 돌격대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34년 6월30일 이른바 ‘긴 칼의 밤’이었다. 히믈러의 친위대와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뮌헨 등지에서 룀 세력을 기습, 85명을 쿠데타 기도 혐의로 ‘처형’하고 수백명을 체포했다. 룀은 붙잡혀 뮌헨 감옥에 수감돼 자결을 강요당했으나 이를 거부하다 결국 친위대원의 손에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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