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면 한해의 끝이 느껴진다.

경향신문은 1996년 직장인이 맞는 세밑 풍경을 ‘매거진X’에 소개했다.




“입사 2년차인 곽용선씨(28)는 아침마다 수첩을 뒤적인다. 12월의 스케줄 표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모두 10개. 직장·동문·친구들의 망년회가 이틀 걸러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 회식과 노래방, 단란주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답습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망년회 몇 개를 추가하면 매일 술에 절어야 할 판이다. 술이 없으면 허전한 세대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한, 구세대식 망년회는 계속될 것 같다. 권위적인 술판에서 자유롭고 싶다. 신·구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망년회는 없는가.”(12월17일자)

20년 가까이 흐른 2015년 직장인들의 송년 맞이 풍경은 달라졌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직장인들의 삶이 훨씬 팍팍해졌고,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가 커졌다는 것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었던 1987년 연말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각종 모임이나 직장에서 후보 지지 문제를 놓고 격한 논쟁, 심지어는 몸싸움까지 벌여 동료나 주민들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고 일부 직장에서는 정상업무에 지장까지 주고 있다.”(12월8일자)

송년 풍경을 국난(國難)으로 표현한 적도 있었다. 해방 직후인 1948년 2월29일자 경향신문 ‘망년여록’에는 “웬 놈의 위스키나 브랜디, 밀조 약주나 막걸리의 ‘무궤도 망년회’가 경향 각지에 범람하였던지, 국난은 분명히 여기에도 있음을 발견하였었다”라고 적혀 있다.

일본식 한자어인 망년회란 용어가 송년회로 바뀐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경향신문 1998년 12월30일자에 기고한 ‘사람 키우기에 적대적인 사회’란 제목의 칼럼에서 “요즘 송년 대신 망년이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송(送)’자에는 보내는 쪽의 섭섭함, 헤어져야 하는 애석함 등의 정서적 잔여가 묻어 있는 반면, ‘망(忘)’자에는 ‘에라, 얼른 잊어버리자’의 뜻이 담긴 것 같다”면서 “그러나 기억할 것들까지도 다 불살라버리는 것은 망년의 기능이 아니다”라고 했다.

예년과 다를 바 없이 올해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큰 사건들이 많았다. 연말을 맞아 저마다 울분을 털어내고 싶겠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씩 오가는 모임도 필요해 보인다. 문뜩 “술 한 방울 피 한 방울”이라며 마지막 잔까지 비우라 하고, “술은 먹되 먹히진 말라”고 했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강기성 편집에디터 bois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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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