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첫 직장은 1986년 입사한 동원증권이다. 광주제일고를 나온 그는 대학(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시절 ‘자본시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등록금·하숙비 등 1년치 생활비를 한꺼번에 받아 주식투자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재테크의 기본기를 다졌다. 그는 연봉 1500만원을 받던 동원증권 평사원 시절부터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투자 종목을 정할 때 루머에 따르지 않고, 기업 내재 가치에 주목했다. 그러자 투자하는 종목마다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입사 45일 만에 대리, 1년1개월 만에 과장, 4년6개월 만에 33세의 전국 최연소 증권사 지점장(압구정지점장)이 됐다. 1993년과 1995년, 1996년엔 전국 최고 약정액(증권사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매매 주문액)을 기록해 억대 연봉자가 됐다.

입사 10년 만에 30대 이사가 된 그에게 단골 고객들이 내준 승진축하 주문액이 480억원에 달해 하루 최고 약정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동원증권을 나와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창업한 그는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탄생시키며 간접투자의 새 장을 열었다. 그는 증권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박현주 미래에셋 금융그룹 회장이다.

경향신문은 1999년 5월31일자 7면에 ‘앞선 수읽기로 돈 맥(脈) 짚는 투자 귀재’라는 제목의 박현주 회장 성공담을 실었다. 당시 41세의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이던 그는 ‘자산운용회사 등록 1호’ ‘뮤추얼펀드 운영 1호’ ‘개별펀드 상장 1호’ ‘벌처·벤처투자 전용펀드 1호’ ‘채권전문연구원 발족 1호’ 등 증권업계 ‘1호 기록’을 양산해냈다. 그는 “투기성이 강한 주식시장에서는 이성적으로 장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내 행동이 적절했는지를 항상 복기(復棋)한다”고 했다. 그가 성공신화를 쓰게 된 것은 승부사 기질뿐 아니라 집념도 한몫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 갈비뼈가 금 간 줄도 모르고 하루 6시간씩 연습하다 3개월 뒤에는 드러눕고 말았다”는 일화처럼 그는 목표를 이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말 꿈을 이룬 ‘야망의 사냥꾼’이 됐다. 대우증권 매각 입찰에서 2조4000억원을 써내 미래에셋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도록 한 것이다.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면 자기자본 8조원 규모의 초대형 증권사가 된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과도한 입찰 가격과 인수를 위한 8000억원 규모의 대출금이 부담으로 작용해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 미래에셋의 인수를 반대하는 대우증권 노조가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합병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박 회장은 2007년 자서전 격인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를 펴냈다. 그는 책에서 “바르게 벌어서 바르게 쓸 때 돈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활짝 피어난다”고 했지만 일각에선 그가 돈의 아름다움만 좇아온 것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왔다. 돈 맥을 정확하게 짚어온 ‘베팅 귀재’인 그가 앞으로 돈만큼 사람의 아름다움을 좇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람은 돈보다도, 꽃보다도 아름답지 않은가.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good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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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