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마지막 칼럼이다. 그간 일본만을 주제로 글을 써왔지만 결론은 전 세계인이 일본을 무시해도 한국인만은 일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팬 패싱’은 통쾌하기는 한데 우리 국익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거꾸로 전 세계 아무도 일본을 무시하지 않는데, 한국만 무시한다.

 

물론 전 세계가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한국인은 그럴 필요 없다. 끝내 존경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않는 자세, 그게 대일자세의 입각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동아시아사 2000년 동안 일본이 신흥강국이 되어 국제질서에 도전한 것은 두 번에 불과하다.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이다. 임진왜란 전 100여 년은 전국시대였다. 살아남기 위해 각지의 다이묘(大名·영주)들은 대하천 유역을 개발하는 대모험을 감행하고, 농업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았다.

 

그 덕분에 농업 생산력이 비약했다. 때마침 은을 제련하는 기술(회취법)이 조선에서 들어오자 다이묘들은 은광 채굴에 목을 걸었다. 당시 세계 유통량의 30%를 차지하는 은을 수중에 넣었다. 은은 당시 국제무역의 결제수단이었다. 그 막대한 은으로 중국의 사치품을 사들였고, 서양 상인들에게서 최신 무기인 조총을 대량으로 들여왔다. 농업 생산력, 은, 조총. 몇백년 만에 일어날까 말까한 획기적 성과들이 겹쳐 일본은 순식간에 강국이 되었다.

 

그 후 400년, 일본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요술방망이를 손에 넣었다. 산업혁명과 군대의 근대화다. 1870년대 말부터 시작한 산업혁명은 약 15년 후 일본을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다. 그 요술방망이의 힘도 컸지만, 일본이 더욱 활개를 칠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내 견제세력이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 때문이었다. 늘 동아시아의 패자였던 중국이 역사상 가장 약체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편전쟁부터 공산당 정권 성립까지 100년이라는 시기에 중국은 역사상 가장 허약했고, 일본은 가장 강력했다. 이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본의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한 것이며, 그것은 불행히도 지금 우리의 바로 앞 세대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실이 일본에 대한 과대평가, 과민반응, 허장성세 등 모든 모순이 가득 찬 대일자세와 심정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2000년 동안 지역질서에 도전한 것이 두 번이라면 그것은 구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인 것일 수 있다. 그만큼 앞으로도 쉽사리 재연될 수 없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비록 쇠약해졌다고는 하나 명나라가 건재했고, 조선도 신흥세력인 양반사림들이 얕볼 수 없는 힘을 갖고 있었다. 만주에는 또 하나의 신흥세력인 누르하치의 여진족이 버티고 있었다. 제아무리 신흥 군사강국이라 하더라도 도요토미 군대가 이 힘을 전복하기는 어려웠다. 임진왜란의 지리멸렬이 이를 웅변한다.

 

지금 중국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최약체 중국’이 아닌 G2다. 가까운 장래에 그 국력이 급감하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은 여전히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다. 일본은 그 미국에 고삐가 단단히 잡혀 있다. 한국은 구한말의 조선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때의 조선보다도 훨씬 강력하다. 아마도 적어도 수십년 내에 이 상태에 큰 변화가 오기는 힘들 것이다.

 

내 일본인 친구들은 술에 취하면 떠든다. “일본은 중국에 굴복하지 않겠다. 건드리면 맞짱 뜨겠다”고. 그럼 쿨한 표정으로 내가 말한다. “무슨 수로?” 술 취했어도 더 이상 헛소리는 안 한다. 일본인들의 병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빚더미에 앉아 있다. 지역질서에 도전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내 친구를 비롯해서 그걸 위해 세금 더 낼 일본 유권자는 없다. 독재국가인 중국은 무리가 가능하나, 일본은 어렵다.

 

중국에 맞짱 운운하는 친구를 달래며 나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강중국(强中國) 혹은 강소국(强小國)으로 서로 협력해서 중국을, 아시아를, 나아가 세계를 리드하자고 말한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강국이고,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다. 양국의 문화 콘텐츠는 세계인들이 열광하며 국민들의 교육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는 통일한국을 가정하면 합쳐서 2억명이다.

 

국제정치학자 남기정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는 이를 ‘더블볼란테 전략’이라고 말한다. 축구에서 미드필더로 전체 경기를 조율하는 포지션 말이다. 각각 박지성과 가가와 신지가 되어 동아시아 상황을 통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와 영토 문제라고 난공불락은 아니다. 현명한 두 나라 국민은 긴 장래를 내다보고 밑에 깔려 있는 지뢰밭을 관리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목표는 애국도, 천황 만세도, 군국주의도, 부국강병도 아니다. 두 나라가 그동안 소중히 키워온 개인의 자유와 인권, 번영과 복지, 문화와 기술 발전이다.

 

일본만을 주제로 꼭 20회를 썼다. 그간 독자분들께 과분한 평가와 격려를 받아왔다. 우리 특유의 반일감정에 껄끄러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도 탓하지 않고 경청해주셨다. 그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성숙하고 깊이 있는 반응이었다. 내내 즐거웠다.

 

<박훈 서울대 교수 동아시아사>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섯 군대의 전투  (0) 2018.06.21
정치와 진정성  (0) 2018.06.14
21세기는 일본과 함께 춤을?  (0) 2018.06.07
이데올로기의 전쟁을 넘어서  (0) 2018.05.31
‘좋아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0) 2018.05.24
한국에서 ‘3대째’란  (0) 2018.05.17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