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과 박영효

1894년 11월 박영효가 내부대신이 됐다. 얼마 후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이 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서울로 끌려오자 박영효가 직접 심문했다고 한다. ‘위로부터 혁명을 일으킨’ 인사가 ‘아래로부터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을 다그치는 진풍경이었다(오지영의 <동학사>). 그들이 만나자 엄청난 설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편의상 3회전으로 정리해볼 수 있는데, ..

역사와 현실 2020.09.17 0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진나라 환관 조고가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려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 호해에게 사슴(鹿)을 바쳤다. “이것은 말(馬)입니다.” 사실대로 사슴이라 말한 신하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뒤로는 아무도 조고에게 바른말을 못했다.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유래다. 조고의 행태는 일찍이 예견된 것이었다. 진시황이 지방을 순행하다 갑자기 사망하자 조고는 진시황의 죽음을 감추고 얼음을 가득 채워넣어 시신의..

역사와 현실 2020.09.10 0

언론은 정부보다 더 공정한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언론은 늘 정부보다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 실제로 늘 그렇지는 않다. 보편적인 일은 시대가 바뀌어도 다른 모습으로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조선왕조의 정치는 대신(大臣)과 언관(言官)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였다. 대신은 정승과 판서를 말한다. 이들의 책무는 한마디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다. ‘판서’는 한자로 ‘判書’라 쓰는데, 사안을 판단해 사인(signature)하는 사람이라는..

역사와 현실 2020.09.03 0

때아닌 인육 소동

돌발적인 사건은 어느 시대든 일어난다. 이것은 태평성대라고 하는 세종 때 일로 이계린이 황해감사에 임명되었다. 임지로 떠나기 직전 그는 조정에 재정지원을 요청했는데, 황해도는 이미 수년째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계린은 현지 사정이 무척 열악해, 사람이 사람 고기를 먹는 사태까지 일어났다고 했다(<실록>, 세종 29년 11월15일). 말을 전해 들은 세종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즉위 초부터 백성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역사와 현실 2020.08.21 0

격식과 실용

1884년 윤5월, 고종은 복식 제도 개혁안을 발표한다. ‘갑신의제개혁’이라고 한다. 복식의 간소화와 단일화를 지향하는 이 개혁안은 서구와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전통 복식의 불편에 눈을 뜬 결과였다. 급진개화파는 양복 도입을 바랐지만 당시로선 시기상조였다. 복식 개혁을 영향권 탈피 시도로 의심하는 청나라의 눈치도 봐야 했다. 결국 개혁안은 전통 복식을 약간 수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공식 행사복인 ‘조복’, 제사..

역사와 현실 2020.08.13 0

신라의 수도 이전 시도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삼국통일 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은 689년에 수도를 경주에서 달구벌, 즉 지금의 대구로 옮기려 했다. 이 시도는 실패했다. 신문왕이 수도를 옮기려 했던 이유는 지금 봐도 이해할 수 있다. 백제와 고구려 영역을 아우르게 된 신라의 수도로 경주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다. 수도로 기능하려면 위치가 대구 정도는 되..

역사와 현실 2020.08.06 0

[여적] 문화재가 된 ‘활쏘기’

<최종병기 활>은 조선 신궁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이다. 병자호란으로 누이가 포로로 잡혀가자 주인공 ‘남이’는 활을 들고 적진으로 달려가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는다. 애국심에 호소한 ‘국뽕 영화’이지만 잊혀져간 활쏘기 무예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활을 가까이 했다는 점은 고구려 벽화 ‘수렵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민족을 뜻하는 동이족을 ‘동쪽의 큰 활잡이’ 종족으로 풀..

역사 칼럼 2020.07.31 0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과 거부

한때 세계사 교과서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켰다는, 관행적으로 사용한 표현이 있었다. 구체적 내용이나 맥락에 대한 보충설명이 없다면 이 문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신앙은 기독교를, 이성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상징한다. 조금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중세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학문을 신앙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천년 넘게 배제..

역사와 현실 2020.07.30 0

[역사와 현실] 이익이 들려준 이순신 이야기

성호 이익의 글은 명쾌하고 분석적이라서 읽을 때마다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성호는 이순신에 관해서도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몇 차례 거듭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서너 가지 점에서 정말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이순신을 조정에 추천한 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세기에는 서애 류성룡이 왜란 때 정승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다며 호평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성호는 거기서 한발..

카테고리 없음 2020.07.23 0

[여적]강산무진도 vs 촉잔도권

2009년 10월 초 국립중앙박물관은 13년 만에 일본에서 건너온 ‘몽유도원도’를 보려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2005년 용산중앙박물관 개관전에서는 8년 만에 공개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은 두루마리 대작으로 실물 공개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길이가 11m, 세한도는 15m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감상을 적은 발문(跋文)을 포함한 것으로 순수한 그림..

역사 칼럼 2020.07.22 0

조선시대 성교육

<천자문>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도 ‘하늘 천, 따 지’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아예 <천자문>이 뭔지 모른다. <천자문>을 마치고 이어서 읽었던 <동몽선습> <격몽요결> <소학> 같은 교육용 필독서 역시 알 턱이 없다. 세상이 변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가르치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가르치는 과목이 딱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성교육이다. 조선시대 성교육의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기..

역사와 현실 2020.07.16 0

홍콩보안법과 세조구제

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 162명이 만장일치로 이 법을 통과시켰고 시진핑 주석의 서명으로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새 법의 내용은 크게 4가지라고 전한다. 외국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을 금지하고, 국가 정권 전복 및 테러리즘 활동을 금지하고 처벌하며, 국가안보 교육을 강화하고, 마지막으로 이를 위한 집행기관을 홍..

역사와 현실 2020.07.09 0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십자군 전쟁

최근 몇 년 동안 타임 슬립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였다. 타임 슬립(Time Slip)은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 여행을 뜻한다. 타임 슬립을 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겪게 되는 어려움은 상호 소통이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다른 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 행동양식, 가치관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래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 <비지터>(1993년)는 중..

역사와 현실 2020.07.02 0

우리에게 “남조선”은 무엇입니까

살기가 어려워도 희망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어려움이 클수록 고통을 벗어난 이상세계를 향한 동경도 커지는데 이것이 인간 역사의 모습이다. 조선 후기에도 그러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어지러운 사회경제적 현실에 괴로워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때였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그들 자신이 속한 기득권층의 이익에 봉사할 뿐이었다. 그들은 백성의 편에 설 생각이 없었으므로 조정의 실정에 분노하는..

역사와 현실 2020.06.25 0

[여적]삼국유사면

고려 말 간행된 <삼국유사>의 저자는 수백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초간본이 전하지 않는 데다 현전하는 중간본(정덕본·1512년)에도 저자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본에는 저자의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고려 문인 민지가 쓴 일연의 저서 목록에도 삼국유사는 보이지 않는다. 중간본 간행을 주관한 경주부윤 이계복이 ‘인각사 주지 일연’이라는 서명을 책 중간에 슬며시 끼워넣지 않았으면 삼국유사 저자는 미궁에..

역사 칼럼 2020.06.24 0

명복은 빌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말이다. 명복(冥福)은 저승의 행복이다. 이승의 삶이 끝나면 저승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느 종교나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교는 독특한 점이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생전의 행위와 신앙이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한다. 따라서 사람이 죽고나서 명복을 빌어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반면 불교에서는 살아 있..

역사와 현실 2020.06.18 0

[조호연 칼럼]‘백선엽 논란’, 지체된 정의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에 대한 국립묘지 안장 찬반 논란이 불거졌다. 김병기·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파묘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다. 현재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는 60여명의 친일파가 잠들어 있다. 두 국회의원은 나라에 헌신한 이들을 모시는 현충원에 친일파들은 묻힐 자격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이장해야 한다고 법 개정 취지를 설..

역사 칼럼 2020.06.17 1

국가의 일

48년 만에 한 해에 세 번째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또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960년대 경제성장을 시작한 이래 세 번째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뉴스도 같이 전해진다. 물론 이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이며, 사정은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다. 오히려 한국은 성공적 방역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그 부정적 영향이 가장 적다는 사정이 그래도 불행 중 위안이 된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중소상..

역사와 현실 2020.06.11 0

기적을 믿고 바라게 된 사회

흔히 서양 중세는 암흑시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은 중세를 고대 문명의 찬란한 빛이 사라진 시대로 보았고, 이러한 관점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중세는 이성으로 타파할 무지, 야만, 몽매, 폭력의 시대였다. 19세기 이후 서양 중세사회에는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있었다는 해석이 나타났다. 하지만 현대인의 이성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시각에..

역사와 현실 2020.06.04 0

[조운찬 칼럼]애이불상<哀而不傷>의 오월

정도상의 신작 장편 <꽃잎처럼>은 5·18민주화운동 시민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적 배경은 1980년 5월26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15분까지 10시간 남짓이다. 최초의 5·18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물론이거니와 <봄날>(임철우), <소년이 온다>(한강), <광주 아리랑>(정찬주) 등 많은 ‘오월 소설’이 열흘간의 항쟁 전 시간을 포괄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작가 정도상이 항쟁의 일부만 다룬..

역사 칼럼 2020.05.29 0

프레임의 전환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집안에 갇혀 지낸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옛날이야기도 다시 꺼내 읽었는데, 15세기의 문장가 강희맹이 쓴 글 하나가 내 마음에 남았다. 강희맹은 소문난 재담가여서 종일토록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강희맹이 아들에게 준 일종의 가훈이었다. 어느 도둑에 관한 이야기인데 선비들이 쏟아낸 틀에 박힌 훈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곰곰 생각하면 특별한..

역사와 현실 2020.05.28 0

[여적]최서면의 근기(根器)

1969년 겨울 어느날, 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은 도쿄 고서점거리 진보초의 한 서점에서 보내준 ‘도서목록’에 눈이 꽂혔다. <안응칠 역사>를 확인한 그는 소장자(스에마쓰 교수)한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세우는데 정작 안 의사 전기가 없으니 양보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최 원장의 열정에 감복한 소장자는 결국 책을 내줬다. 구전으로만 떠돌던 안중근 옥중 자서전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었..

역사 칼럼 2020.05.28 0

[여적]간송미술관의 보물 경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스물네 살 되던 1929년 미곡상을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4만마지기(수확량 2만석)의 논을 상속받는다. 쌀 2만석은 요즘 시세로 450억원, 수십채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간송의 꿈은 변호사가 되어 일제강점기의 우리 동포를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졸지에 대부호의 상속자가 되면서 ‘문화재 지킴이’로 진로를 바꾼다. 그가 문화보국(文化保國)에 뜻..

역사와 현실 2020.05.22 0

‘세종스타일’과 광화문 한글 현판

자칭 ‘시민모임’이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자 현판은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 광장을 상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례본 서체로 제작한 샘플도 선보였다. 반드시 한글 현판을 걸도록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겠단다.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광장 좋다. 현판만 바꾼다고 되겠는가. 이참에 광화문 앞 세종대왕 동상도 바꾸자. 근엄하게 옥좌에 앉은 모습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친근..

역사와 현실 2020.05.21 0

‘신천지’와 공동체 삶의 가치

20여 년 전 <태조 왕건>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여기에 나왔던 궁예의 ‘관심법’이 얼마간 유행했다. 왕이 된 궁예는 자신을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하며 자신에게 반역을 꾀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역사기록에도 그렇게 나온다. 궁예의 말과 행동은 그 자신의 생애는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신라는 9세기에 들어서 차츰 국가체제가 와해되었다. 9세기 중반이 되면서 중앙정부가 사회..

역사와 현실 2020.05.14 0

흑사병과 의사 기 드 숄리아크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책 판매량도 늘었다. 이 소설은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오랑시에서 발생한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페스트와 맞서 싸웠던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경험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작은 도움과 위안을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전염병이 파괴한 평범한 일상, 가공할  공포에 맞선 작은..

역사와 현실 2020.05.06 0

퇴계의 편지 “아내를 공경하라”

코로나19가 세계 각국에 유행하자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편에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가정폭력과 이혼율도 급증한다며 걱정이 많단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성인 남녀가 평화롭게 사는 일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유교가 지배한 옛날에는 부부관계가 어떠했을까. 그때는 가부장 사회라서 여성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을지 몰라도 남성은 편했을 거라..

역사와 현실 2020.05.04 0

선거는 예상에 불과하다

이번 투표에 사용한 기표용구에는 동그라미 안에 ‘점 복(卜)’자가 들어 있다. 원래는 ‘사람 인(人)’이었는데 용지를 접었다가 잉크가 묻어서 누구를 찍었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려고 바꿨다고 한다. 대칭을 이루지 않는 글자라야 확실히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설명이다. 대칭 아닌 글자는 얼마든지 있다. 고작 혼동을 피하려고 사람 인을 비틀어 점 복으로 만들었다니. 일설에는 ‘..

역사와 현실 2020.04.24 0

코로나19와 정체성

두 달 넘게 코로나19가 개인의 일상과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문제의 범위와 영향은 역사적 차원에서 ‘2차 세계대전’, ‘대공황’에 비교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질병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국제적 차원에서 코로나19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역사와 현실 2020.04.16 0

낙인찍기

2005년 국내 개봉한 알 파치노 주연 영화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초반부 한 장면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제러미 아이언스 분)는 길거리에서 만난 샤일록(알 파치노 분)을 더러운 오물 취급하면서 침까지 뱉는다. 안토니오가 이런 모멸감을 주는 무례한 행동을 한 이유는 샤일록이 유대인 이자 대부업자였기 때문..

역사와 현실 2020.04.09 0

비둘기를 사랑한 조선의 부자들

물질에 대한 욕망,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성리학도 그렇고 불교와 도교, 기독교와 이슬람에서도 물질적 욕망에 휘둘리면 절대 안된다고 가르친다. 어떤 경전을 펴도 부자가 되어서도 결코 욕망의 노예는 되지 말라는 준엄한 가르침이 도처에 있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 선비들은 재물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다룬 글을 쓰기 일쑤였다. 그런 조선 시대에도 경제적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인구도 줄었다 늘기를 반복..

역사와 현실 2020.04.02 0

요행을 바라지 말고 피하라

전염병 따위를 피해 거처를 옮기는 것을 피접(避接)이라고 한다. 전염병의 원인도 모르고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던 시절, 그나마 전염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기에 피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일한 전염 방지책이다. 국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궁궐에 감염자가 발생하면 국왕은 다른 궁궐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에 궁궐이 다섯 곳이나 있는 이유는 피접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경덕궁(慶德宮)은 애초에 피접할 목적으..

역사와 현실 2020.03.26 0

조선시대 ‘언관’과 기자

조선시대에는 ‘언관(言官)’이라고 부른 관리들이 있었다.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들이다. 두 기관은 ‘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그 ‘말’이란 감시와 비판을 뜻했다. 원래 사간원은 왕의 언행을, 사헌부는 영의정을 포함한 모든 관리들의 언행을 비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된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 두 기관의 기능은 서로 비슷해졌고, 나중에는 왕과 관리들 모두를 감시하고 비판했다...

역사와 현실 2020.03.19 0

민주주의와 투표

한 달 후면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투표는 민주주의 제도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투표를 잘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투표를 제대로 하기는 여러 면에서 쉽지 않다. 민주정치를 최초로 실시했던 고대 아테네에서도 일부 철학자들은 대중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에 민주정은 그렇게 이상적인 정치제도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플라톤은 철인 왕이 다스리는 철인정치가 가장 이상적이고..

역사와 현실 2020.03.12 0

백성의 벗, 재상 김육

1658년(효종 9) 재상 김육은 79세의 노령이었다. 그해 8월26일 아침, 그는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절감하였던지 손자인 김석주를 불렀다. 임금님에게 올릴 마지막 상소를 불러줄 테니까 받아적으라는 거였다. 손자가 대신 기록한 김육의 유소(遺疏)였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소신의 병이 몹시 깊어서 실낱같은 목숨을 얼마나 이어갈지 모르겠습니다. 전하의 용..

역사와 현실 2020.03.05 0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

1815년, 조선 선비 윤기는 경기 양근의 산골짜기로 이사했다.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이 야기한 세계적 대기근이 조선을 덮친 해였다. 모든 물건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곡식은 물론 소금, 땔감, 옷감, 심지어 짚신조차도 구할 수 없었다. 서울 시장까지 가 보았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땔나무 한 짐이 무려 300~400전으로 폭등했다. 평상시 쌀 한 가마 값이다. 간신히 구한 소금은 메밀과 보릿가루를 섞은 가짜였다..

역사와 현실 2020.02.27 0

1821~1822년 콜레라

1821년 8월13일 평안감사 김이교가 조정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평양부의 성 안팎에 지난달 그믐 사이 갑자기 괴질이 유행해 토사(吐瀉)와 관격(關格·급하게 체해 인사불성이 됨)을 앓아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10일 동안 무려 1000여명이나 됩니다. 의약도 소용없고 구제할 방법도 없습니다. 목전의 광경이 매우 참담합니다.” 괴질의 정체는 콜레라였다. 본래 인도 벵골 지방 풍토병이던 콜레라가 영국의 식민지배 후..

역사와 현실 2020.02.20 0

전염병에 대한 공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 여러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에 따라 공포도 증가하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의학 지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전염병을 관리하는 사회나 국가의 대처능력이 많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히스테릭한 반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염병의 확산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서 우려되는 문제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고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과도하게 자극해 이를..

역사와 현실 2020.02.13 0

세종시대 전염병 대응

불가피하게 동네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의료진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메르스 사태 때 보았던 손 소독제도 보인다. 대기실에서 누군가 가벼운 기침을 하자 간호사가 놀라며 급히 마스크를 가져온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잠시 긴장이 흐른다. ‘저이가 혹시 중국을 다녀온 사람은 아니겠지.’ 표정으로 보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예외는..

역사와 현실 2020.02.06 0

[기고]2·8독립선언의 주역 최팔용

1919년 2·8독립선언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페이지로 기록된다. 이어진 3·1운동 등 국내 항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상해 임시정부 수립 등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됐다. 또 독립운동이 민족 전체의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독립운동의 열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런 의미에서 2·8독립선언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도쿄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한 최팔용을 비롯해 김도연, 송계백, 이종근, 전영택, 윤..

역사 칼럼 2020.02.05 0

인간의 죽음에 대한 예의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은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인물이다. 전라도 암행어사로 내려와 거지꼴로 원님들의 잔치 자리에 끼어들어 ‘술동이에 담긴 술은 백성의 피요, 쟁반에 올린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라는 시를 짓고는 ‘암행어사 출두’를 외쳤다는 일화가 <필원산어>에 실려 있다. <춘향전>의 클라이맥스와 똑같은 이 일화가 발견되자 한때 국문학계가 떠들썩했다. 성이성은 십대 초반에 남원..

역사와 현실 2020.01.30 0

공론과 유튜브

선조12년 5월에 수년째 낙향해 있던 이이에게 대사간 벼슬이 내려졌다. 나라의 언론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이이는 이를 사양하면서 긴 상소를 올렸다. 다음은 그중 일부이다. “관직은 국가의 공기(公器)이니 마땅히 공론(公論)에 따라서 시대의 인재를 다 등용해야 합니다. … 국시(國是)를 정하는 일에 있어서는 말로 다투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모든 인심이 다 같이 그렇게 여기는 것을 공론이라 하고 공론이 있는 것을 국시..

역사와 현실 2020.01.23 0

얼마나 일해야 충분할까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40시간의 법정근로+12시간의 연장근로)를 도입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첨예한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 정책이 경제를 파탄 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보수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며 쓴 기사들의 표제들이다.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 ~ 일 더하게 해주세요” “1년 뒤에 공장 문 닫을 판” “주 52시간 포비아에 떠는 2.4만개 기업” “지킬 수 없고 지켜도 행복하..

역사와 현실 2020.01.16 0

김종서의 냉혹한 보복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제 살이라도 깎아 먹일 듯 친하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원수로 돌변하고,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이익을 공유하는 벗이 된다. 최근에도 어느 유명 인사가 오랜 친구를 저버리고 궁지로 내몰아 세인을 놀라게 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나 같은 서생은 알 바 아니다. 먼지 덮인 역사책이나 뒤적이면서 사는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옛날이야기나 하나 해보겠다.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와 현실 2020.01.09 0

[기고]‘중도유적’ 갈아엎고 레고랜드 지어야만 하나

지난해 12월 초 중도유적 현장을 방문했을 때 넓은 벌판에 높은 펜스를 쳐놓은 채 레고랜드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상에 대형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지고 있었다. 우려했던 문화재 대참사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중도유적은 1980년부터 1984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5차례에 걸쳐 발굴해 270여기의 유구를 확인하고 중도발굴보고서를 5권이나 내놓은 유적이다. 2010년까지 강원대학교박물관과 한림대학교박물..

역사 칼럼 2020.01.03 0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

아첨은 남에게 잘 보이려는 행위다. 대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윤기(1741~1826)에 따르면 당시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아첨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주인은 노비에게 아첨하며 행여 심기를 거스를까 걱정하고, 상관은 부하에게 아첨하며 행여 인기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정승이 일개 야인에게 아첨하여 명성을 얻으려 하고, 사대부가 시정잡배에게 아첨하여 이..

역사와 현실 2020.01.02 0

김종직과 김굉필 사이에서

누구나 알고 있듯이 조선왕조는 유학을 최고의 정치적 사회적 가치로 천명했다. 그 유학을 창시한 공자를 기려서 제사 지내는 곳이 문묘(文廟)이다. 문묘는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모든 향교에 있었다. 그런데 문묘에서는 공자뿐 아니라 함께 기려야 할 그의 제자들 위패도 있다. 그중에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 제자들의 것도 있다. 모두 18명인데, 조선시대 인물이 14명이다. 조선시대에 누군가가 문묘에 배향된다는 것은 엄..

역사와 현실 2019.12.26 0

[여적]옥바라지 골목

안악사건으로 체포된 백범 김구는 1911년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됐다. 그곳에서 만 4년을 옥살이했다. 백범의 모친 곽낙원 여사는 형무소 맞은편 골목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번 돈으로 아들에게 사식을 넣었다. 1919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가 갇혔던 곳도 서대문형무소다. 그의 옥바라지를 담당했던 누이와 동생들 역시 곽낙원 여사가 머물렀던 골목에 살았다. 서대문형무소는 한국 최초의 근대 감옥..

역사 칼럼 2019.12.20 0

판도라와 이브

2016년 출간된 소설 이 영화화돼 개봉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사이 소설과 영화는 큰 사회적 반응을 불러왔다. 책을 언급하거나 추천한 여성 연예인들은 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고, 일부 남성들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공격했으며, 누군가는 영화를 보지도 않고 평점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그 저변에는 여성을 비하하고 때론 혐오하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여성 비하와 혐오는 역사가 너무나 오래되었고 아직..

역사와 현실 2019.12.19 0

그게 관점의 차이인가?

똑같은 일이라도 관점이 다르면 달리 보인다.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는 바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할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관점이란 것이 이해관계로 결정되는 일도 적지 않다. 역사가인 나는 지금 중종 5년(1510) 11월 어느 날의 경연 풍경을 떠올리고 있다. 그날도 훈구파 대신들과 신진사류는 서로 옥신각신하였다. 그들은 경전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현..

역사와 현실 2019.12.12 0

[여적]잃어버린 땅, 녹둔도

‘조산(造山)의 요충지 녹둔도(鹿屯島)에 농민들이 흩어져 사는데, 골간(骨看·여진족) 등이 배를 타고 몰래 들어와 약탈할까 염려된다. 진장이나 만호에게 단단히 방어할 수 있도록 하라.’(<세조실록>) 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로 부임하는 양정(楊汀)을 경복궁 사정전으로 불러 이렇게 당부했다. 세종이 6진을 개척해 영토를 두만강까지 넓혔다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확장보다 더 어려운 게 수비였다. 6진의 행정체계..

역사 칼럼 2019.12.10 0

대입, 공정한 지옥?

밤 10시가 넘은 시각, 분당 정자동 앞을 지나는데 차들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출퇴근 시간에도 좀처럼 막히지 않는 왕복 10차선 도로다. 사고라도 났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로 가장자리 2개 차선은 학원을 마친 학생들을 기다리는 학원 버스와 자가용으로 주차장이 되었다. 그러고도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한 차들이 세 번째 차선마저 주차장으로 만들려는 판국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많은 버스와 자가용에..

역사와 현실 2019.12.05 0

가장 중요한 정치윤리 ‘출처’ <出處>

정당마다 내년 4월 총선 준비가 한창이라고 언론이 전한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제까지 사례로 보면 선거 전 더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던 정당이 선거에서 대개 이겼다고 말한다. 그와는 별도로 여당과 야당에서 이미 여러 명이 선거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출마 포기란 본인에게는 정치적 물러남인데, 그것의 함의는 간단하지 않다. 조선시대 지식인과 관료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윤리는 출처(出處)였다. 출처는 그들 삶의 윤리..

역사와 현실 2019.11.28 0

멈추지 않는 마녀사냥

16~17세기 마녀사냥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광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육당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이 척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마녀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1486년에 출간된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악마와 마녀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마녀사냥의 베테랑들이었던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도사와 요하네스 슈프랭거(1438~1495)가 저술한 책으로, 마녀를 색출하고 고문..

역사와 현실 2019.11.21 0

명의를 지킨 이항복

백사 이항복(1556~1618)이란 재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소문난 익살꾼이요, 장난꾸러기였다. 소년 이항복은 요샛말로 좀 “노는 아이”였다. 한 가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는데, 그것이 바로 글공부였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글을 읽기 시작했으나, 불철주야 노력한 덕분에 스물다섯에 어려운 문과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로 말하면 상대를 포복..

역사와 현실 2019.11.14 0

상상력의 한계

<태원지(太原誌)>는 한국 고전소설사에 보기 드문 판타지 소설이다. 원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던 시기, 중원 수복을 갈망하는 호걸 임성(林成)은 동지들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한다. 이들은 요괴가 사는 아홉 개의 섬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낯선 대륙에 도착한다. 그 대륙의 이름은 태원, 중국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다. 태원의 면적은 사방 10만리, 그러니까 15억㎢가 넘는다. 지구..

역사와 현실 2019.11.07 0

못다 이룬 율곡의 개혁

<선조수정실록> 20년 3월 기사에는 율곡 이이의 제자 이귀의 상소가 나온다. 스승 이이가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상소에 대해서 사관(史官)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이때 조정 논의가 성혼, 이이 무리에 대한 공격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선비로서 성혼, 이이와 조금이라도 가까이했던 자는 차례로 배척당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위하여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이가 사망한 지..

역사와 현실 2019.10.31 0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얼마 전에 ‘중세 말 피렌체로 팔려온 타르타르 노예’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하다가 우연하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어머니가 중국인 노예였다고 주장하는 책을 발견했다. 일견 황당해 보이지만 동시대에 이탈리아 도시들에 아시아 출신의 노예가 다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개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전엔 유럽과 아시아가 직접 교류를..

역사와 현실 2019.10.24 0

시중의 정치

영조와 정조는 조선 후기사회에 이채를 더했다. 그들은 스스로 ‘군사(君師)’ 곧 철인 왕을 자임하였다.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건국 이래 오랜 세월 성리학을 국시로 여겨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영조와 정조 같은 석학이 나온 것이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개혁정치가 조광조는 중종을 철인 왕으로 만들고자 정성을 쏟았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선조 때에는 시골로 물러났던 선비들이 조정에 복귀해, 선조를 철..

역사와 현실 2019.10.17 0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안중근의 전쟁과 평화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겨눈 브라우닝 M1900 권총에서 났던 총소리다. 이 총은 칠연발형이었으나 실제로 발사된 것은 여섯 발이었다. 세 발이 이토에 명중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수요(數謠)는 “육혈포로 칠 발을 쏜” 안중근을 기리며 그 총소리를 일곱 발로 듣는다. 제국주의는 무도하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적어도 조선에 관한 한 단순한 식민지배가 아니다. 브..

역사 칼럼 2019.10.15 0

인정의 나라, 인륜의 나라

성호 이익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인정의 나라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 많다는 뜻일까? 아니다. ‘인정’은 뇌물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뇌물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호가 본 조선은 뇌물의 나라였다. 인정이라는 명목의 뇌물이 가장 만연한 분야는 조세 행정이었다. 국가 재정을 지탱하는 전세(田稅), 군역(軍役), 공납(貢納)은 모두 뇌물의 온상이었..

역사와 현실 2019.10.14 0

[여적]‘불후의 기록’ 탁본

1816년 7월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 비봉에 올라 비석을 발견했다. 무학대사비로 알려진 비석이었다. 이끼 낀 비석을 만지니 글자가 보였다. 몇 번 탁본을 하니 진흥왕의 ‘眞(진)’ 자가 드러났다. 이듬해 6월 다시 비봉을 찾은 추사는 모두 68자를 판독한 뒤 진흥왕순수비로 단정했다. 북한산비의 발견은 조선 금석학의 시작을 예고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정희는 본격 비석 조사에 나섰다. 경주를 돌며 진흥왕릉, 분황사 화쟁국..

역사 칼럼 2019.10.07 0

조국 백 명을 갈아치운들…

두 달 동안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조 장관과 관련된 대화를 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교육 문제, 세대 간 불평등 문제, 그리고 계급 문제로 확대된다. 하나의 신드롬이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에 반대하는 집단은 일견 크게 세 축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이고, 다른 한쪽은 검찰이다. 유력한 제도권 언론사들은 이 두..

역사와 현실 2019.10.04 0

네로 황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로마 최악의 황제로 꼽히는 인물은 네로(37~68)일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이복동생을 살해한 패륜아, 베드로와 바울을 처형하고 기독교를 박해한 폭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성적으로 타락한 난봉꾼,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하프를 연주한 미치광이 등 온갖 추악한 모습으로 서술되곤 한다. 네로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모두 사실일까? 네로에 관한 이미지는 주로 타키투스가 저술한 <연대기>를 통해 만들어졌..

역사와 현실 2019.09.26 0

교육과 돈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 향교와 서원이 있다. 향교는 정부가 세운 것이고, 서원은 지역의 유력자들, 양반들이 세웠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의 변천은 그 자체로 조선왕조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교육과 공동체의 본질적 관계는 조선시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조선 정부는 처음부터 교육을 강조했다. 태종 때부터 향교를 모든 행정단위에 세웠다. 이런 노력은 세종 임금 때 거의 완성을 본다. 300개 넘는 전국의 행..

역사와 현실 2019.09.05 0

사비니 여인의 납치 사건

고대 로마제국을 이야기할 때 흔히 로마의 평화, 포용성, 선진 문명 전파 등을 언급한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은 로마가 정복한 지역에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경제를 발전시킨 사례로 거론된다. <로마인 이야기>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적으로 민족의 차이, 문화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들을 모두 감싸안은 보편 제국을 수립한 것은 로마뿐이라면서 로마의 포용력을 칭송한다. 다수의..

역사와 현실 2019.08.29 0

[여적]조선통신사

임진왜란 직후 일본은 조선에 강화와 함께 무역재개를 요청했다. 새 집권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 도발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조선인 포로 160여명을 송환했다. 1604년 8월, 조선은 사명대사를 대표로 하는 ‘탐적사(探敵使)’를 파견했다. 사명대사가 일본 국정을 탐색하고 조선 포로 3000여명과 함께 귀국했다. 국교재개에 대한 반대여론은 여전했다. 조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국..

역사 칼럼 2019.08.26 0

이순신의 공적

이 나라에는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직접 겪은 분들이 아직 살아계시다. 그분들의 뼈아픈 증언이 있음에도, 일각에서는 엉뚱한 주장을 한다. 그들은 강제징용 자체를 부정한다. 심지어는 ‘위안부’ 역시 당사자가 자의로 선택한 경제적 활동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사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어찌 이런 망발을 할 수가 있는가. ‘임진년의 일을 따져본다(論壬辰事)’는 글을 읽다가 나는 무릎을 쳤다. 세상에는 역사적 사실을 완전..

역사와 현실 2019.08.22 0

아베의 공과

조선 후기 문인 교와(僑窩) 성섭(成涉·1718~1788)은 경북 칠곡의 시골 마을에서 두문불출하며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곤 주변에 사는 선비 몇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성섭의 학문적 성향은 대개의 영남 선비와 사뭇 달랐다. 그의 독서 범위는 당파를 넘나들었으며, 명·청의 최신 서적도 입수해 읽었다. 광범위한 독서를 바탕으로 국제정세를 조망..

역사와 현실 2019.08.16 0

화랑도

아버지를 이어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은 681년 56세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무열왕 김춘추이고, 어머니는 김유신의 동생 문희이다. 뒤이어 문무왕의 맏아들 신문왕이 즉위했다. 그런데 신문왕 즉위 후 약 한 달 만에 <삼국사기>에 의미심장한 기사가 등장한다. “소판 흠돌(欽突), 파진찬 흥원(興元), 대아찬 진공(眞功) 등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형되었다”는 기록이다. 흠돌, 흥원, 진공 등은 단순한 고..

역사와 현실 2019.08.08 0

정조의 이름이 바뀐 이유

최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수원 화‘성’과 정조의 이름 이‘성’을 딴 이른바 ‘2개의 성’ 특별전을 열고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알려진 정조의 이름은 ‘이산’인데 어찌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이산이나 이성이나 둘 다 맞다. 원래 정조의 한자이름은 ‘李’이라 하고 ‘이산’이라 불렀다. ‘’자는 산(算)자의 고어(古語)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임금의 이름과는 발음도 같을 수 없다는 이유로 평안도 이산(理山)은..

16세기 베네치아의 위기와 기회

1492년 바스쿠 다가마가 이끄는 포르투갈 선단이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유럽에서 제일 먼저 전해들은 곳은 베네치아였다. 이 소식은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지중해를 경유하지 않고 향신료의 원산지로 직접 가는 새로운 항로의 개척은 베네치아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중계 교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 왔던 베네치아 공화국 천년의 역사에서 최고 위기의 순간이었다. 베네치아에는 부정적인 전..

역사와 현실 2019.08.01 0

[여적]‘재외동포’ 윤동주

중국 지린성 용정시의 윤동주 생가 입구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커다란 표지석과 함께 한글과 중국어로 새긴 ‘서시’ 시비가 있다. 기념물만 보면 윤동주는 중국어로도 시를 쓴 조선족 시인이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윤동주를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소개한다.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중국 태생이니 중국인이라는 주장은 고구려·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동북공정과 다를 바 없다. 윤동주는 중국 국..

역사 칼럼 2019.08.01 0

최익현의 운명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쳐들어올 기세였다. 강적과 싸우지 말고 평화조약을 맺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호남의 대학자 노사 기정진은 결사반대했다. 그는 군비 강화의 방법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흥선대원군은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그때 근기의 석학 화서 이항로도 똑같은 입장을 밝혔다. 위정척사론이었다. 각지에서 선비들의 호응이 빗발쳤다. 그들은 외세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역사와 현실 2019.07.25 0

신라시대 3대 판결문

1988년 3월20일 경북 울진 죽변면 봉평 2리 마을 이장 권대선씨는 길 옆 개울에 처박혀 있던 명문비석을 확인하고는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비문 내용은 “524년(신라 법흥왕 11년) 모직지매금왕(법흥왕) 등 14명의 6부귀족이 회의를 열어 이야은성에 불을 내고 성을 에워싼 마을의 유력자들을 곤장 60대와 100대형에 처한다”는 판결문이었다. 울진 봉평비(국보 제242호)이다. 1989년 3월 경북 영일군 신광면 냉수 2리의 마을주..

너만 아니면 된다고?

포폄(褒貶) 문서라는 것이 있다. 조선시대 관원의 근무평정서다. 평가 주체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며, 평가 대상은 직속 하급 관원들이다. 평가는 매년 두 차례 실시하며 상, 중, 하로 성적을 매긴다. ‘하’를 받으면 퇴출이 원칙이다. ‘중’을 받아도 안심할 수 없다. 거듭 ‘중’을 받으면 역시 퇴출이다. 게다가 상대평가다. ‘하’를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평가자가 견책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현재..

역사와 현실 2019.07.18 0

[여적]사라지는 ‘이육사 순국지’

중국에서 여행작가로 활동 중인 윤태옥씨가 지난 10일 베이징의 ‘이육사 순국지’ 철거 소식을 알려왔다. 윤씨는 페이스북에서 “육사 순국지 그 건물 남쪽과 동쪽의 평방이 철거되고 있다”면서 “순국지인 2층 벽돌 건물은 2차 철거한다고 현지 주민이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그가 보내온 사진은 철거가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건물 주변은 폐자재로 어수선하다. 벽에는 ‘안전제일 예방위주’ 등 철거를 알리는 중국어 플래..

역사 칼럼 2019.07.16 0

분노는 나의 힘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흔히 그 현상을 둘러싼 ‘구조’나 현상의 중심에 있는 주체의 ‘의지’를 살핀다. 예를 들어 19세기 조선왕조에서 농민반란의 폭발적 증가 이유를 세금제도 문란으로 인한 민생 파탄에서 찾는 것, 1차 세계대전 패배가 불러온 독일에 대한 과도한 전쟁 배상금 요구가 결국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구조적 설명이다. 또 조선시대 세금제도 개혁인 대동법 성립에서는..

역사와 현실 2019.07.11 0

‘만취승마’와 음주운전

“남양백 홍영통이 임금의 탄신일에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태조실록> 1395년 10월11일) 조선 초 원로문신 홍영통(?~1395)이 태조의 탄신잔치에서 만취상태로 귀가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기사다. 홍영통의 출생연도는 모른다. 다만 1393년(태조 2년) 1325년생인 안종원(1325~1394)과 함께 ‘개국원로’로서 상을 받았으니 1320년대생(사망 당시 70대)일 가능성이 많다. 홍영통은 70대..

[편집국에서]비운의 문화재들, 제자리 찾아줄 때다

빼어난 조형미로 백제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자랑이다. 이 향로를 보기 위해 부여를, 부여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관람객이 늘자 박물관은 이 향로만을 위한 전시공간을 특별히 단장하기도 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부여의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한다.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고마운 문화재다. 세계적 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즐겨찾는 상..

역사 칼럼 2019.07.05 0

성인 세바스티아누스와 흑사병

유럽 역사에서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는 14~16세기에는 엄청난 양의 미술작품이 제작되었다. 그림의 양도 증가했고 새로운 소재들을 다루었지만 여전히 기독교와 관련된 주제가 대다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인기를 얻은 기독교 성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성인 세바스티아누스였다. 페루지노, 틴토레토, 티치아노, 안드레아 만테냐 등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수 화가들이 그를 화폭에 담았다. 대체로 성인 세바스티아누스는 화..

역사와 현실 2019.07.04 0

실학자 정약용의 ‘페이크 뉴스’

실학자 정약용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었다. 세월의 장벽을 넘어, 그가 쓴 글은 오늘날에도 진가를 인정받는다. <목민심서>도 그러하고 <여유당전서>에 실린 논설이나 전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실학자가 쓴 글이라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다.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쓴 글도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글을 쓰는 경우조차 배제할 수 없다. 정약용의 시문집을 읽다가 글쓴이의 진의가 아리송..

역사와 현실 2019.06.27 0

[조호연 칼럼]김원봉과 황장엽에 대한 불공평한 시선

한국 보수의 특징은 대북강경정책이다. 하지만 실제 대북관 운용은 자의적이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박 대표는 편지에서 북한의 연호인 ‘주체’와 ‘북남’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어투 역시 ‘위원장님께 드립니다’로 시작해 시종 최고의 경어체로 일관했다. 편지 내용만 봐서는 ‘종북 빨갱이’ 그대로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

역사 칼럼 2019.06.26 0

태정태세문단세…정순(익)헌철고순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어렸을 적 달달 외웠듯 조선의 임금은 총 27명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국왕’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니,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사진은 왕세자 책봉옥인)이다. 세자는 “귀티가 나고 용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순조실록>)고 한다. 효명세자의 저술이 역대 임금의 시문을 모은 <열성어제>에 포함됐고, 조선을 실제로 3년3개월간(1827년 2..

사람이 먼저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의공(懿公)은 학을 끔찍이 아꼈다. 학을 관직에 임명하고 녹봉도 지급했다. 귀족이나 탈 수 있는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 어느 날 북방 이민족이 위나라를 침략했다. 의공은 백성들에게 무기를 나누어주고 맞서 싸우게 했다. 백성들은 거부했다. “학에게 싸우라고 하시지요.” 백성에게 외면당한 의공은 결국 이민족 군사들에게 죽고 말았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말을 애지중지했다. 비단옷을..

역사와 현실 2019.06.20 0

[여적]조선도공 후예 심수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7년전쟁에서 끌려간 조선인은 5만~10만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도공, 석공, 목공, 인쇄공, 제지공 등 기술자나 기능인이 유독 많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했다. 도공은 일본군의 표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인 도공을 납치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일본이 ‘조선 도공 모시기’에 열을 올린 것은 당시 일본에 다도가 유행하면서 질 좋은 다기와 다완이 필요..

역사 칼럼 2019.06.18 0

[여적]‘조선시대 3대 정원’

‘주변의 산은 높더라도 험준하게 솟은 정도가 아니요, 낮더라도 무덤처럼 가라앉은 정도가 아니어야 좋다. 주택은 화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사치한 정도가 아니어야 좋다. 동산은 완만하게 이어지면서도 한 곳으로 집중되어야 좋다.’ 200년 전 서유구가 백과사전 <임원경제지>에서 밝힌 집터 잡는(相宅·상택) 법이다.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분화되면서 사대부의 생활이 주거와 조경에 눈을 뜰 정도로 나아졌다는 증거다. 서유..

역사 칼럼 2019.06.14 0

모데르누스

며칠 전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에 한 친구가 흥미로운 요청을 올렸다. 광화문에 나갔다가 퀴어축제 참가자들과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행진을 동시에 보았단다. 스피커 성능이 좋아서 양쪽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고 정신이 없었다고. 친구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일의 혼란스러움을 토로하며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 친구가 전한 내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런 양상이 조만간 사그라질 것 같지도 않다..

역사와 현실 2019.06.13 0

양녕대군의 두 얼굴

“충녕(세종)에게 하늘도, 인심도 쏠린 것을 알고는 일부러 미친 척하면서….” 1879년(정조 13년) 정조의 글(‘지덕사기’)처럼 양녕대군 이제(李제·1394~1462)는 세종의 등극을 위해 일부러 미치광이로 살았다는 것이 여러 기록에서 보인다. <태종실록> 1418년(태종 18년) 6월6일자도 태종이 폐세자 양녕대군에게 “네(양녕대군)가 언젠가 나(태종)에게 ‘세자 자리를 사양하고 싶다’고 고한 적이 있지 않으냐”고 언급했다..

[여적]‘남영동 대공분실’의 변신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김수근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작품 연보가 소개돼 있다. 대표작 ‘공간 사옥’(1971)을 비롯해 남산 자유센터(1963), 경동교회(1980), 인천상륙작전기념관(1982), 불광동성당(1982), 청주박물관(1985) 등 익숙한 건축물이 많다. 그러나 그의 건축 리스트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물론 재단이 공개한 작품연보에는 빠져 있다. 남영..

역사 칼럼 2019.06.11 0

민주주의, 역사의 최종 단계인가?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중도 세력의 약화와 극우 세력의 약진이라는 우려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영국에서는 신생 극우 정당인 브렉시트당이 32%로 1위를 했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주의 정당 국민연합이 23%로 선두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난민들의 이탈리아 입국 계략은 인신매매를 돕고 부추기는 일”이라면서 강경한 난민 반대 정책을 외치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극우세력인 북부동..

역사와 현실 2019.06.07 0

[여적]톈안먼 광장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명·청 양대 왕조의 황성인 베이징고궁(쯔진청)의 정문 앞 너른 마당을 말한다. 원래는 담장이 쳐진 궁정의 뜰이었으나 1914년 도시 정비를 하면서 광장의 면모를 갖췄다. 남북 880m, 동서 500m, 총면적 44만㎡(약 15만평) 크기로 도심광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광장 중앙에 인민영웅기념비와 마오쩌둥기념관이, 동서에 각각 중국국가박물관과 인민대회당이 있다. 톈안먼 광장은 중국 정치의 1번지다...

역사 칼럼 2019.06.04 0

최제우 죽음에 관한 진실

수운 최제우는 1864년 3월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선이라는 국가 권력에 의해 박해를 당한 것이다. 조정에서는 그를 ‘서학 죄인’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최제우는 자신이 믿는 도(道)는 ‘천도(天道)’요. 자기의 공부는 서학이 아니라 ‘동학(東學)’이라고 했다. 그러나 관헌은 그의 말을 묵살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민간에서 전하는 구전설화를 들어보면, 최제우의 죽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었다...

역사와 현실 2019.05.30 0

[경향의 눈]래여애반다라

지난해 지인이 말했다. “춘천박물관의 전시가 볼만합니다. 시간 내어 가보세요.” 얼핏 오백나한전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흘려들었다. ‘전시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춘천까지 가서 본단 말인가?’ 다른 사람이 또 그 전시를 추천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2018년 최고의 전시회’라는 얘기와 함께. 지난달 말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개최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지인의 말을 수긍했다..

역사 칼럼 2019.05.30 0

인종의 절친 김인후의 통곡

하서 김인후(1510~1560)는 공자의 사당인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 중 유일한 호남 출신 인물이다. 관직은 ‘옥과(곡성) 현감’으로 끝났지만 ‘영남에 퇴계(1501~1570)가 있다면 호남엔 하서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선 선비의 귀감이 된 분이다. 그런데 이 선비가 해마다 7월1일이면 뒷산에 올라 밤낮 통음하고 미친 듯 대성통곡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로 바뀌었다. 무슨 곡절인가. 7월1일은 바로 제자이자 둘..

가족호칭은 언중의 선택

지난 15일, 여성가족부의 주최로 가족호칭 토론회가 열렸다. 불평등한 가족호칭의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시댁과 처가는 ‘시가’와 ‘처가’로 동등하게 대접하고, 시부모와 처부모는 ‘아버님’과 ‘어머님’으로 통일하며, ‘도련님’과 ‘아가씨’ 대신 이름을 부르자고 한다. 누구 아빠, 누구 엄마보다 ‘여보’, ‘당신’이,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보다 ‘큰삼촌’과 ‘작은삼촌’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증조..

역사와 현실 2019.05.23 0

[여적]서원과 퇴계 이황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 반대도 적지 않다. 조선이 수입한 서원(書院)이 대표적이다. 서원은 당나라 말 혼란기에 지식인들이 산중으로 들어가 불교 선원을 본떠 만든 교육공동체가 시초다. 뒷날 향촌의 사립 교육기관이 된 서원은 송나라 때 꽃을 피웠다. 허난의 숭양(嵩陽)서원과 응천(應天)서원, 후난의 악록(岳麓)서원, 장시의 백록동(白鹿洞)서원은 송대 4대서원으로 꼽힌다. 이후는 쇠퇴기다..

역사 칼럼 2019.05.16 0

잃어버린 고전과 책 사냥꾼

최근 정부가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인문사회 연구자를 지원하고, 인문학술 연구를 총괄할 전담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골자다. 정부가 나서 인문학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현재 인문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대학들은 경제적 수익성이 높은 학문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인문학, 기초과학 등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홀대하고 때론..

역사와 현실 2019.05.09 0

김원봉과 노덕술

“내가 왜놈 (앞잡이)의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 약산 김원봉 선생(1898~1958)과 친일경찰 노덕술(1899~1968)의 악연은 전설처럼 전해진다. 약산의 직접 증언은 아니라 어디까지가 팩트인지는 모르지만 약산의 동지들이 남긴 회고담 등을 모아보면 노덕술 같은 친일경찰이 ‘감히’ 의열단장이자 조선의용대장이며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약산을 모욕한 것은 사실 같다. 1947년 3월22일 미군정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인 노..

붕당정치의 화려한 부활

수년 전 역사학계에는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를 미화하는 풍조가 있었다. 공부를 많이 한 선비들이 나랏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당파를 형성한 것이라며, 현대 민주국가의 정당과 흡사하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그런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당쟁은 조선사회의 고질적 폐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어느 당파든 자기네는 군자(君子)요, 반대파는 몽땅 소..

역사와 현실 2019.05.0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