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정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대변인이 했던 말은 인상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말 말이다. 아마도 대변인 본인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선조 임금이 즉위하면서 사림(士林)이 집권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5, 6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사림정권이 되었다. 사림이 조정의 최고위직까지 장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말하자면 선조가 즉위하고도 구세력과 신진사림 세력은 공존했고, 5~6년 정도는 구세력이 신진사림 세력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하게 국정 개혁을 주장했던 사람이 율곡 이이다. 하지만 민생을 위한 제도 개혁의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이이는 그 원인을 여전히 조정에 남아있던 아버지 연배의 구신(舊臣)들에게 돌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대신(大臣)은 구체제에서 여러 번 원칙과 태도를 바꿔가며 겨우 자기 몸이나 보전하던 사람들입니다. 벼슬이 높았던 자일수록 행동이 비열하고, 요직에 있던 자일수록 그 인간적 재질은 하등에 속합니다.” “오늘날 구신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지난날 간신들 밑에서 구차하게 녹이나 받아먹고 살았습니다. 신진사림이 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얼핏 봐도 구체제와 구신들에 대한 깊은 혐오가 배어 나온다. 당시 이이를 포함한 신진들은 구체제와 구신들의 인격을 동일시했다.

 

선조 5~6년에 사림은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이의 동료와 선후배들 다수는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이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집권했는데도 민생과 국정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진사림은 자신들이 집권만 하면 정치와 민생이 곧바로 개선되리라 진심으로 믿었다. 그제야 이이는 구신들에게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실, 이 시절 사림의 대부는 선조 3년에 세상을 뜬 이황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국가를 새롭게 운영할 실제적 계획이 없었다. 그가 선조에게 제시한 몇 가지 지침이 국가 운영의 실질적 계획은 될 수 없었다. 시대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과제가 달라졌던 것이다. 나중에 이이가 말한 대로 시의(時宜)가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이이는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거칠게 말한다면, 그는 ‘구조’와 ‘의지’에 대해서 오해했다. 구조는 국가가 실제 작동하는 방식, 그 작동에 관여된 조직이고, ‘의지’란 다수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뜻일 것이다.   

현실에서 두 가지는 늘 결합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때문에 이 두 가지의 비중과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흔히 구조를 의지에 앞세우거나, 혹은 그 반대이다. 나아가서는 구조를 들어서 의지를 감추거나, 반대로 의지를 강조하면서 구조를 경시한다. 이이와 신진사림은 후자 쪽이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한 말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신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조선시대 성리학 때문인지, 아니면 해방 이후 거의 맨손으로 국가를 건설했던 경험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는 구조를 너무 과소하게, 의지를 너무 과대하게 평가하곤 한다. 이것은 결국 개인에게 너무 과도한 인내와 노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하면 된다”는 그것을 압축한 말이다. 의지를 강조하면 할수록 문제 있는 구조는 은폐되었다. 의지는 장기적, 집단적 차원에서 구조를 이기지 못한다. 근래 젊은이들이 쓰는 ‘노오오오~력’이라는 말은 그것에 대한 비아냥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최근에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 역시 의지를 구조보다 강조하는 입장에서 나오는 말이다. 적어도 두 세대 이상 계속해서 강화되어온 한국 사회의 계급지배구조가 2년도 안되어 개선되리라 생각했는가. 제도개혁의 첫 단계는 개혁 의지를 가지는 것 못지않게 고쳐야 할 구조의 실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한국 사회의 구조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게 이해하는가? 그러한 이해를 토대로 얼마나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었는가? 선조 5~6년 사림정권이 등장한 이후에 이이가 본 것은 개선된 민생이 아닌 조선의 구조 그 자체였다.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늘 그렇듯 구조는, 그것을 바꾸려는 의지가 작동해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의지가 구조에 순응할 때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구조와 의지가 결합한 것이 ‘제도’이리라. 제도개혁이란 결국 구조를 의지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 의지에 따라 구조를 조정하는 것이다. 제도개혁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목표다.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임기가 있는 정치인과 월급 받는 관료가, 임기 없는 소유권과 돈에 대한 욕망의 결합체를 바꿀 수 있을까? 물론 벌써 실망하기는 이르다. 어차피 현재 상황에 이른 데에도 정치인과 관료가 기여한 바는 크지 않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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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