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의 한 동네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다. 이제 그곳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재개발의 광풍이 비켜간 덕택에 지금도 동네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른바 ‘노포’도 드물지 않다.

 

어머니가 나를 등에 업고 달려갔던 병원도 그대로고, 아버지 담배 심부름을 갔던 약국도 그대로다. 기업형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홍수 속에서도 조그만 슈퍼마켓 하나는 살아남았다. 학교가 많아서인지 동네서점 한 곳도 아직까지는 무사하다. 비교적 자리바꿈이 심하지 않은 업종들이다. 반면, 유행에 민감한 탓인지 음식점은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중국집이나 치킨집, 빵집처럼 유행을 덜 타는 곳은 40년 전과 똑같은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

 

40년 전 가게를 지키던 사람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릴 적 이미 할아버지였던 의사가 지금까지 진료를 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약국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약사는 나보다 젊은 사람이다. 자리를 옮긴 가게도 더러 눈에 띈다. 이쪽에 있던 가게가 길 건너로 옮기는 일은 다반사이고, 더러는 이웃 동네로 이사를 갔다. 파는 물건도 달라졌다. 빵집에 진열된 빵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고, 오래된 기름에 튀겨 갈색에 가까웠던 치킨은 산뜻한 노란빛으로 바뀌었다. 40년 전과 똑같은 상품을 파는 가게는 하나도 없지 싶다. 그래도 손님들은 노포를 기억한다. 사람이 바뀌어도 자리가 바뀌어도 상품이 바뀌어도 노포는 노포다.

 

노포의 조건은 무엇인가. 사람인가, 자리인가, 상품인가. 주인이 대를 이어 영업하는 곳을 노포라고 하지만, 꼭 가족이 대를 이어야 노포인가. 노포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가족이 아닌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가족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한들 주인 대신 조선족 아주머니들만 가게를 지킨다면 노포라고 할 수 있을까. 자리를 옮긴다고 노포의 명성에 흠이 가는 것도 아니다. 100년 전통의 노포치고 자리를 옮기지 않은 가게가 드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음식점의 경우 ‘맛’을 노포의 조건으로 간주하곤 하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맛은 주관적이다. 똑같은 음식인데 어떤 사람은 옛맛 그대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맛이 변했다고 한다. 음식맛이 바뀌었는지 입맛이 바뀌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지식하게 옛맛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다. 노포가 오랫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이유는 맛이 바뀌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금씩이나마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어 맛이 바뀌었기 때문이리라. 망할 각오를 하고 옛맛을 지키려 한들, 식재료가 변하는데 맛이 변하지 않을 리 없다. 쌀도 고기도 채소도 이미 수십년 전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리도 상품도 노포의 조건이 될 수 없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형이상학의 논제가 있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괴수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치고 제물로 바쳐졌던 젊은이들과 함께 배를 타고 돌아왔다. 아테네 사람들은 그 배를 소중히 보관했다. 판자가 썩으면 새 판자로 교체했다. 세월이 흐르자 원래의 판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2000년 동안 철학자들의 의견이 갈린 문제다. 정답은 없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이 논제를 처음 제시한 플루타르크는 <영웅전>에 이렇게 기록했다. “테세우스와 젊은이들을 무사히 태우고 돌아온 그 배는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 시대까지 보존되었다. 그리고 배의 낡은 부분이 보이면 늘 수리를 해서 다시 새로운 나무로 갈아 끼웠다고 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그 배를 가리켜 성장과 변화의 상징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테세우스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의 배는 못해도 500년 이상 보존되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수리를 거듭한 결과, 테세우스의 배는 원형을 잃었다. 그러나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성장과 변화의 상징’이었다. 전통은 시대와 호흡하며 성장하고 변화한다. 사람이 바뀌어도, 자리가 바뀌어도, 상품이 바뀌어도 노포가 노포인 이유는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이 을지로, 청계천 일대 재개발 사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30년 전통의 노포들이 철거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시내에 30년 넘은 노포는 드물지 않다. 강북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강남이 개발된 지 벌써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강남에도 수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가 즐비하다. 개발이 능사는 아니지만 전부 보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시장의 선의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재개발로 자리를 옮긴 뒤 음식맛이 변해버린 노포들이 안타까워 그랬을 것이다. 다만 변한 것이 음식맛인지 시장의 입맛인지는 알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다. 고작 ‘아재 감성’의 맛집을 보존하겠다는 순진한 발상으로는 설득하기 힘들다. 게다가 50년 넘은 이순신 장군 동상은 옮기고, 30년밖에 안된 냉면집은 그대로 두겠다고 하니, 일관성 없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 무엇이 전통이며 무엇이 아닌지, 무엇을 개발하고 무엇을 보존할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묻는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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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