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백 홍영통이 임금의 탄신일에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태조실록> 1395년 10월11일) 조선 초 원로문신 홍영통(?~1395)이 태조의 탄신잔치에서 만취상태로 귀가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기사다. 홍영통의 출생연도는 모른다. 다만 1393년(태조 2년) 1325년생인 안종원(1325~1394)과 함께 ‘개국원로’로서 상을 받았으니 1320년대생(사망 당시 70대)일 가능성이 많다. 홍영통은 70대 고령에 만취승마까지 했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순박하고 상식에 따라 처신했다’(<태조실록>)는 평을 듣는 홍영통의 허망한 죽음에 충격받은 태조는 사고 3일 뒤 원로 및 재상들에게 대나무로 만든 가마를 한 대씩 하사했다. 절대 음주상태로 말을 타지 말고 가마꾼이 모는 가마를 타라고 신신당부한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고불고 고재고재(고不고 고哉! 고哉!)”(<논어> ‘옹야 23장’)라는 화두를 던졌다. 후대 사람들은 이를 ‘과음’을 경계한 ‘공자왈’이라고 보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고(고·두 되 정도 담는 작은 술잔)라는 술잔으로 주량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어찌 ‘고’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해석했다. 정약용은 둘째아들 정학유(1786~1855)에게 “요즘 소가 물 마시듯 곧바로 목구멍으로 술을 삼키는 자들이 많다”고 꼬집으면서 “술의 참맛은 입술을 적시는 것”이라 했다(<다산시문집>). 그렇다면 공자나 정약용의 말대로라면 취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괜찮다는 의미인가. 정약용은 고개를 내저었다. “술을 좋아하면 오장육부에 스며든 술독이 썩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고 경계하면서 “너(아들 학유)는 제발 술을 끊고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이덕무(1741~1793) 역시 “‘취(醉)’자는 죽음을 뜻하는 ‘졸(卒)’이, 술에서 깬다는 뜻의 ‘성(醒)’은 살아난다는 ‘생(生)’이 포함됐고, 술잔 ‘치(치)’는 위태롭다는 ‘위(危)’와 비슷하고, 술잔 ‘배(杯)’는 ‘불(不)’자에 속한다”(<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6’)고 했다. 얼마 전 발효된 ‘제2윤창호법’에 따라 이제는 ‘한잔 술’도 음주운전 처벌을 받는 세상이 됐다. 


“공자님도 적당히 마시라는 뜻으로 ‘고불고 고재고재’라 하지 않았냐”는 자못 유식한 인용도 한낱 허튼소리가 되었다. 이제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내는 흉패(兇悖)한 행동은 모두 술에서 비롯된다”는 정약용의 언급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때다.


<이기환 선임기자>

Posted by mx2.0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