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수원 화‘성’과 정조의 이름 이‘성’을 딴 이른바 ‘2개의 성’ 특별전을 열고 있다. 그러면 지금까지 알려진 정조의 이름은 ‘이산’인데 어찌 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이산이나 이성이나 둘 다 맞다.



원래 정조의 한자이름은 ‘李’이라 하고 ‘이산’이라 불렀다. ‘’자는 산(算)자의 고어(古語)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임금의 이름과는 발음도 같을 수 없다는 이유로 평안도 이산(理山)은 초산(楚山)으로, 충청도 이산(尼山)은 이성(尼城) 등으로 고쳤다. 그러나 1796년(정조 20년) 정조가 독음의 표준이 된 운서(<규장전운>)를 편찬하며 막판 인쇄 단계에서 ‘셩(성·)’자를 뽑아내고 기존 운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자를 그 자리에 꽂아넣었다. 이후 정조의 이름은 ‘이셩(성)’으로 발음됐다.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가 왜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을 저질렀을까. 19세기 중인문사인 장지완(1806~?)의 <비연외초>(사진)는 “서성(1558~1631)의 가문이 16세기 이후 다수의 정승판서와 학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뜬금없는 이유 같다.


하지만 겨우 1남(순조)1녀(숙선옹주)를 둔 정조로서는 왕실의 번창이 화급한 당면과제였다. 정조의 롤모델인 세종은 당뇨병 등 갖가지 지병을 앓았지만 18남4녀를 두지 않았던가. 오죽 조바심을 냈으면 후궁인 화빈 윤씨(1765~1824)와 정부인인 효의왕후(1753~1821)가 ‘상상임신’까지 했을까. 그러나 자손이 번성한 인물의 이름자(성)에 당신의 이름을 억지로 밀어넣으면서까지 왕실의 번창을 바랐던 정조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아들(순조)과 손자(효명세자), 증손자(헌종)까지 1명씩의 아들로만 이어지다 결국 헌종에서 대가 끊겼으니 말이다.


정조의 이름을 이산에서 이성으로 바꿔 읽은 이상 백성과 고을 이름 중 ‘이성’자를 피해야 하는 등 후속조치가 필요했다. 단적인 예로 국왕의 동정 기록인 <일성록>까지 ‘성’자를 빼고 ‘일록’으로 읽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조는 “선대왕(영조)도 (숙종의 이름자인 이순이 포함된) 충무공 이순신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면서 “백성이나 고을 이름까지 번거롭게 바꿀 필요가 없다”고 명했다. 1800년 아들 순조가 즉위한 후에야 ‘이성’자가 들어간 이름들이 줄줄이 바뀌었다. 그중 충청도의 고을인 ‘이산’은 ‘이성’으로, 다시 ‘노성’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기환 선임기자>

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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