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최악의 황제로 꼽히는 인물은 네로(37~68)일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이복동생을 살해한 패륜아, 베드로와 바울을 처형하고 기독교를 박해한 폭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성적으로 타락한 난봉꾼, 로마시에 불을 지르고 하프를 연주한 미치광이 등 온갖 추악한 모습으로 서술되곤 한다.


네로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모두 사실일까? 네로에 관한 이미지는 주로 타키투스가 저술한 <연대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 책은 네로가 죽은 후 50년이 지나서 저술됐다. 네로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던 타키투스는 네로 시대에 살았던 플리니우스가 쓴 저술을 참조했다. 플리니우스는 네로를 “인류의 파괴자”, “세계의 독약”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플리니우스는 네로 시절 정치적인 탄압을 받았고, 네로 사후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제 가문의 지배가 끝나고 새로 정권을 잡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열렬히 지지한 인물이었다. 새로운 황제는 네로를 혹평함으로써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원했고, 어쩌면 플리니우스는 새로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유럽의 지배 종교가 된 이후에는 기독교를 박해한 최초의 로마 황제 네로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더욱 어려워졌다. 네로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이자, 부활한 그리스도에 맞서는 악마로 묘사되었다. 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다름 아닌 20세기에 제작된 영화들이었다. 미국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제작한 <십자가의 징표>는 네로를 히틀러에 비유했고, 영화 포스트에 방탕한 모습의 네로를 그려냈다. 굶주린 사자에게 기독교인들을 던져 넣고 즐거워하는 네로는 포악한 기독교의 적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서술들도 있다. 로마 제국의 번영을 만들어낸 오현제(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들)의 한 명으로 칭송받는 트라야누스 황제는 네로가 다스린 5년만큼 태평성대도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네로는 자신의 양부와 같은 햇수 동안 통치하면서도 그중에서도 5년 동안 특히 그 도시를 향상시키는 일에서 매우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트라야누스는 다른 어느 황제도 네로의 5년에 미치지 못한다고 종종 말하였는데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섹스투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전>(361년)) 또 다른 기록은 네로가 사망한 후 한동안 로마의 평민들이 그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어떤 이야기가 맞을까?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최근 학계의 연구는 네로의 치세를 좀 다른 시각에서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네로는 제정 초기 불안정한 황제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평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이었던 원로원과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몰락했다. 그래서 실권을 갖게 된 원로원 출신들이 정적이었던 네로를 강하게 비판했고, 기독교 신학자들은 그를 적그리스도라는 악마로 만들었다.


네로의 경우처럼 303년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45~312)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이와 유사하다. 박해를 직접 경험한 락탄티우스(240~320)는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범죄를 발명한 자요, 사악의 전문 기술자였다. 모든 걸 파멸시켰을 때 그는 신에게도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탐욕과 비겁함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자기 제국을 네 부분으로 분할했고 군대를 몇 배로 늘렸다”면서 분노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모든 정책을 비판했고, 기독교를 박해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고 비아냥댔다. 반면 100년 후의 오로시우스(380~420)는 “인류에게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상태가 도입되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공공의 안녕을 걱정하는, 굳은 단결과 공동의 권력 행사로 특징 지워지는, 상호 이해에 기반한 여러 명의 통치자의 공동체가 도입되었다”고 4분할 정치를 칭송한다.


무엇이 진실일까? 역사에서 객관적 진실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위의 사례들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역사 사료들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료의 기록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건이나 인물을 평가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사회적 요구에 일정 정도 영향을 받는다. 정치적, 종교적으로 의견이 다른 경우 상대방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가혹하고 편향되기 마련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론은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방송, 신문, 인터넷은 서로 다른 해석을 쏟아내며 자신들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로마 황제에 대한 기록과 평가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론전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 매체들이 하는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 없이 믿고 행동하는 것은 최소한 피해야 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보의 진위 여부, 객관성 여부, 왜곡과 과장의 유무 등의 사항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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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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