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동안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조 장관과 관련된 대화를 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교육 문제, 세대 간 불평등 문제, 그리고 계급 문제로 확대된다. 하나의 신드롬이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에 반대하는 집단은 일견 크게 세 축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이고, 다른 한쪽은 검찰이다. 유력한 제도권 언론사들은 이 두 집단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그들에 동조하는 모양을 띠고 있다. 보도 내용만 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만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무엇보다 ‘도덕성’을 자산으로 삼아온 진보 진영 내에서도 조 장관을 둘러싼 첨예한 이견이 대립 중이다. 지금이라도 조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 내 목소리에는 ‘공정’과 ‘정의’를 다름 아닌 우리가 훼손할 수 있느냐는 뼈아픈 자성이 들어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청년·대학생들의 목소리다. 진보 진영 내 조 장관 반대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청년·대학생들의 반대에는 우리 공동체의 공적 가치와 공정성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대의가 있기 때문이다.


선조 즉위(1567년)부터 10년 남짓한 기간에 조선 조정에서 벌어진 일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비슷한 면이 많다. 선조 즉위와 함께 사림이 집권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정치적으로 탄압받았다. 수많은 이들이 귀양 가고, 목숨을 위협받거나 실제로 목숨을 잃었다. 흥미롭게도 앞선 명종 대에 권세를 누렸던 인사들이 조정에서 축출되지는 않았다. 그들을 대표했던 몇 사람이 귀양을 갔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현직을 지켰다. 명종에서 선조로 넘어오는 과정이 정치적 쿠데타를 통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날 그들이 누리던 위세와 발언권은 급격히 축소되었다. 그들은 새롭게 떠오른 젊은 사림 인사들에게 공개적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변변히 대응할 수 없었다. 그 젊은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이 기대승, 이이 같은 사람이다.


선조 5, 6년 무렵 사림 인사들이 정승직까지 차지하면서 사림은 조정을 좀 더 완전하게 지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2~3년 사이에 조정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두 번 나타난다. 첫째, 선조 7년에 이이가 사림의 정치적 지향점을 새롭게 천명한다. <만언봉사>가 그것이다. 당시 그는 사림의 총아였다. 여기에서 그는 이제 사림의 정치적 임무가 바뀌었음을 선언했다. 사림이 권력에 대한 비판자에서 이제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동료와 후배들에게서 아무런 반향도 없었다. 그들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다음해 유명한 ‘동서분당’으로 나타난다.


동인과 서인 사이 갈등의 골은 빠르게 깊어졌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정치적 변동이 있었다. 그것은 선조 즉위 후 젊은 사림들에게 혹독한 공격을 당한 구세력이 동인과 결합한 것이다. 동인에게 적(敵)의 적은 동지였다. 서인이 사림 중 선배 세대라면, 동인은 후배 세대다. 대개 서인은 구세력 지배하의 명종 후반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던 데 비해 동인은 선조 즉위 후 관직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몰락하던 명종 대 구세력은 동서분당 이후 동인 편에 서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회복했고, 어린 동료인 동인들에게 ‘싸움의 기술’을 전수했다. 그리고 서인들에게 받은 정치적 모욕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선조 11년쯤 되면 다시는 동인과 서인이 화합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그러는 동안 이이가 제기한 민생 현안은 조정 논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국가적 재난을 거친 후에야 그의 옛 주장이 되살아났다.


역사에서 개혁시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정치적 요구와 사회·경제적 요구가 한꺼번에 분출되었다. 대개 시작은 정치개혁 요구로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제적·사회적 개혁에 대한 요구로 전환된다. 되돌아보면 1980년대 학생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구호는 ‘군부독재 타도’였다. 이것은 정치적 민주화를 뜻한다. 경제개혁에 대한 요구도 없지 않았지만 그 비중은 낮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고 경제적으로 고도성장 중이었다. 그때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적나라하지 않았다. 일자리는 늘어났고, 임금도 계속 올랐다. 가장 낮은 사회계층조차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 굳게 믿었다. 시간이 흘러서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한국은 ‘선진국’에 접근했고 경제성장률은 낮아졌다. 동시에 사회는 계급화되었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다. 오늘날 청년·대학생들에게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 민주화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고, 절실한 문제는 계급화된 현실과 자신들의 막막한 미래이다. 


한국 사회가 현재 놓여 있는 정치·사회적 상황이 역사적으로 예외적이지는 않다. 물론 그것이 계급화된 사회 현실을 그냥 둬도 좋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 현실이야말로 이제 모두의 눈에 분명해진, 급히 해결에 나서야 할 과제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 상황을 실제로 개선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일을 해야 한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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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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