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여적]삼국유사면

경향신문 2020. 6. 24. 11:30

삼국유사 테마파크. 군위문화관광재단 제공


고려 말 간행된 <삼국유사>의 저자는 수백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초간본이 전하지 않는 데다 현전하는 중간본(정덕본·1512년)에도 저자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본에는 저자의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고려 문인 민지가 쓴 일연의 저서 목록에도 삼국유사는 보이지 않는다. 중간본 간행을 주관한 경주부윤 이계복이 ‘인각사 주지 일연’이라는 서명을 책 중간에 슬며시 끼워넣지 않았으면 삼국유사 저자는 미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일연 스님(1206~1289)은 경북 경산의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9세에 출가해 국가 승려시험에서 최우등으로 합격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여러 절을 옮겨다니며 40대에 대선사가 됐다. 70대에는 ‘원경충조’라는 호를 받으며 국존에 봉해졌다. 스님은 생애 마지막 5년을 군위 인각사에 주석했다. 당대 최고승이 수도 개경에서 수백리 떨어진 인각사의 주지를 자청한 것은 절 인근에 90대 노모가 계셨기 때문이다. 스님은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입적했다.


조선시대 내내 <삼국유사>는 읽히지 않았다. 인각사는 유림들에 의해 훼손됐다. 모두 억불숭유의 피해자였다. 20세기 초 일본 유학 중인 육당 최남선은 임진왜란 때 건너가 동경제국대학에 비장돼 온 삼국유사를 국내 학계에 소개했다. 그는 ‘해제’를 통해 삼국유사를 “한국 고대사의 최고 원천”으로, 일연 스님을 “동방의 헤로도토스”로 평가했다. 폐허가 된 인각사는 최근에야 발굴이 이뤄지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인각사 경내에는 일연 스님의 보각국사탑과 비(보물 428호) 등이 남아 있다.


경북 군위에 ‘삼국유사면’이 생긴다고 한다. 군위군은 주민 투표를 통해 관내 ‘고로면’의 명칭을 내년부터 ‘삼국유사면’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강원 영월에 지형과 인물을 딴 ‘한반도면’ ‘김삿갓면’이 있지만, 옛 문헌을 지명으로 끌어들인 것은 처음이다. 군위군은 몇해 전부터 테마파크 개장, 목판 간행 등을 통해 ‘삼국유사 고장’임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삼국유사를 이탈리어로 완역한 마우리치오 리오코는 “한국의 보물은 K팝이 아니라 삼국유사”라고 말했다. 경북 군위가 그 보물의 가치를 알리는 첨병이 되길 바란다.


<조운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