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언론은 정부보다 더 공정한가

경향신문 2020. 9. 3. 10:51

정상적인 사회라면 언론은 늘 정부보다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 실제로 늘 그렇지는 않다. 보편적인 일은 시대가 바뀌어도 다른 모습으로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조선왕조의 정치는 대신(大臣)과 언관(言官)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였다. 대신은 정승과 판서를 말한다. 이들의 책무는 한마디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다. ‘판서’는 한자로 ‘判書’라 쓰는데, 사안을 판단해 사인(signature)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언관은 오늘날의 언론인이다. 사헌부와 사간원, 넓게 보면 홍문관 관원을 포괄한다. 이들의 책무는 말하는 것인데,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고 바른 말을 해야 한다. 사헌부와 사간원 조직 내 관직명이 ‘집의(執義)’ ‘지평(持平)’ ‘정언(正言)’ 등이다. 글자 그대로 의로워야 하고,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고, 바르게 말해야 한다.

 

조선왕조에서도 정부가 늘 원칙대로 순조롭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원칙이 작동했던 시기는 길지 않다. 16세기 이래 중종, 특히 명종 대엔 대신의 힘이 너무 강했고 언관의 힘이 너무 약했다. 이렇게 되면 부패가 만연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자 선조 대부터는 오히려 언관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졌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문제해결 능력을 잃고 국정은 표류한다. 당시 이 문제점을 거의 유일하게 정확히 알아차린 사람이 율곡 이이다.

 

선조 13년(1580) 12월 이이는 낙향해 있다가 조정에 복귀했다. 5년 만에 돌아온 조정은 표류하고 있었다. 한때 그가 아낀 후배였고 이제 목소리가 커진 인물들은 정부가 무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이이는 대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이를 자기 편으로 여겼던 그들은 이이가 자신들을 배신했다며 분노했다.

 

선조 16년에 북방에서 ‘니탕개의 난’이 발발했다. 3만명 가까운 여진족이 함경도 북부를 침입한 사건이다. 당시 이이가 병조판서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이이가 일을 먼저 처리한 후 선조에게 사후 보고한 일이 있었다. 선조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언관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벼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이가 국가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고, 임금을 업신여겼다며 탄핵했다. 탄핵을 받자 이이는 집에 머물렀다. 선조가 계속해서 조정에 나올 것을 재촉하고 북방 사정도 다급하자, 이이는 선조에게 한 가지를 요청했다. 자신의 조정 복귀에 대해, 대신들도 동의하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말이 결정적으로 언관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들은 이이가 자신들과 승부를 겨루려고 하며, 필설(筆舌)을 놀려서 공의(公議)와 맞붙어 싸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말하는 공의란, 결국 자신들 주장이었다. 이이는 병조판서직에서 물러났다.

 

사회 내에 존재하는 어떤 조직도 존재 자체로 공정하지는 않다. 이 점에서 정부와 언론은 마찬가지다. 더구나 언론은 그 경제적 기초의 주요한 부분을 시장에 두기에, 사회적 공정성에 부합하는 물적 기반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적잖은 언론이 자신들을 존재 자체로 공정한 심판(judge) 같은 존재로 여기는 듯 말한다. 사실, 언론이 정부보다 더 공정하지 않을 때가 진짜 사회적 위기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봉준과 박영효  (0) 2020.09.17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0) 2020.09.10
언론은 정부보다 더 공정한가  (0) 2020.09.03
때아닌 인육 소동  (0) 2020.08.21
격식과 실용  (0) 2020.08.13
신라의 수도 이전 시도  (0) 2020.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