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경향신문 2020. 9. 10. 11:11

진나라 환관 조고가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려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 호해에게 사슴(鹿)을 바쳤다. “이것은 말(馬)입니다.” 사실대로 사슴이라 말한 신하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뒤로는 아무도 조고에게 바른말을 못했다.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유래다.

 

조고의 행태는 일찍이 예견된 것이었다. 진시황이 지방을 순행하다 갑자기 사망하자 조고는 진시황의 죽음을 감추고 얼음을 가득 채워넣어 시신의 부패를 막았다. 평상시처럼 음식을 올리고 업무를 보고하게 했다. 맏아들 부소를 후계자로 지정한 문서를 파기하고, 자결하라는 문서로 바꿔치기했다. 죽은 사람을 살아 있다 하고, 후계자를 죄인으로 둔갑시켰으니, 이 역시 지록위마와 다름없다.

 

조고가 정권을 장악한 뒤로도 지록위마는 계속되었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지만 천하가 태평하다며 황제를 속였다. 결국 탄로나자 함께 정변을 일으킨 재상 이사에게 책임을 물어 죽였다. 입지가 위태로워지자 제 손으로 옹립한 황제 호해마저 핍박해 죽였다. 거짓과 진실을 바꾸어 군주에게 아부하는 신하는 결국 군주를 배신하기 마련이다.

2014년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그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였다. 조고 같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는 비선실세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지록위마는 진실을 호도하는 정권의 행태에 대한 지식인들의 경고였다.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은 “협조요청이지 언론통제가 아니다”라는 변명,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정치관여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는 궤변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래지 않아 조고 같은 비선실세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은 조고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한 셈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은 지난 정권이 몰락한 원인을 망각한 듯하다. 입시비리를 상류층의 관행이라 하고, 부동산 투기를 문화재 보호라고 잡아뗄 때부터 조짐이 보였다. 집값은 천정부지인데 부동산 대책이 효과를 낸다 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의 전화는 외압이 아니라 단순 민원이라 하며, 편가르기 의도가 뚜렷한 간호사 격려 메시지를 순수한 격려라고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지록위마가 있지만 이쯤 하겠다. 개중엔 사슴이 아니라 진짜 말이 한두 마리쯤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판적 여론과 날로 떨어지는 지지도를 보니, 사슴을 말이라 우긴다 보는 사람이 더 많은 모양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지록위마인가. 대통령인가, 당인가, 아니면 한 줌도 못 되는 극성 지지자인가. 그들이 입만 열면 들먹이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난 정부는 지록위마의 경고를 무시한 지 2년 만에 몰락했다. 만약 경고를 엄중히 받아들였다면 그처럼 처참히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 정부의 지록위마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원인은 북한도, 경제도, 코로나도 아니다.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왜곡하는 지록위마의 행태다. 조고를 타도하고 권력을 차지한 대통령과 여당은 스스로 조고가 되려 하는가.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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