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 11

실학자 정약용의 ‘페이크 뉴스’

실학자 정약용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었다. 세월의 장벽을 넘어, 그가 쓴 글은 오늘날에도 진가를 인정받는다. 도 그러하고 에 실린 논설이나 전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실학자가 쓴 글이라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다.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쓴 글도 있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글을 쓰는 경우조차 배제할 수 없다. 정약용의 시문집을 읽다가 글쓴이의 진의가 아리송한 글을 만나기도 한다. 알다시피 그의 형제들, 평소 친했던 선비들 중에는 천주교를 믿었대서 희생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정약용이 그들의 전기를 쓰면서, 해당자가 천주교와는 애초 거리가 멀었다고 주장한 경우이다. 그는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고 쓴 것일까? 아니면, 요샛말로 ‘페이크 뉴스’를 생산한 것인가? 그때 ..

역사와 현실 2019.06.27

[조호연 칼럼]김원봉과 황장엽에 대한 불공평한 시선

한국 보수의 특징은 대북강경정책이다. 하지만 실제 대북관 운용은 자의적이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박 대표는 편지에서 북한의 연호인 ‘주체’와 ‘북남’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어투 역시 ‘위원장님께 드립니다’로 시작해 시종 최고의 경어체로 일관했다. 편지 내용만 봐서는 ‘종북 빨갱이’ 그대로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간 편지’라는 제목으로 박사모 카페에 올렸다. 박사모 회원들은 “북한 추종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북남이란 표현을” “마치 신하가 조아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등 거친 비난과 욕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편지 쓴 사람이 박 대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업무상 편지 좀 주고받은 것 갖고..

역사 칼럼 2019.06.26

태정태세문단세…정순(익)헌철고순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어렸을 적 달달 외웠듯 조선의 임금은 총 27명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국왕’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니, 익종으로 추존된 효명세자(사진은 왕세자 책봉옥인)이다. 세자는 “귀티가 나고 용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효명세자의 저술이 역대 임금의 시문을 모은 에 포함됐고, 조선을 실제로 3년3개월간(1827년 2월~1830년 5월) ‘대리청정’했으니 ‘국왕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효명세자의 치세에 잠깐이나마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주춤했고, 260만명의 기민을 구휼했으며, 신진관료를 대거 선발하고, 상언과 격쟁제도를 활성화했다. 하지만 세자의 으뜸 업적은 따로 있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기에 소개된 정재(呈才·궁중연회에서 공..

사람이 먼저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의공(懿公)은 학을 끔찍이 아꼈다. 학을 관직에 임명하고 녹봉도 지급했다. 귀족이나 탈 수 있는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 어느 날 북방 이민족이 위나라를 침략했다. 의공은 백성들에게 무기를 나누어주고 맞서 싸우게 했다. 백성들은 거부했다. “학에게 싸우라고 하시지요.” 백성에게 외면당한 의공은 결국 이민족 군사들에게 죽고 말았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말을 애지중지했다. 비단옷을 입혀 침대에서 재우고, 대추와 육포를 먹이로 주었다. 말이 죽자 장왕은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귀족의 예법에 준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려 했다. 반대하는 자는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우맹(優孟)이라는 신하가 교묘하게 왕을 설득했다. “귀족의 예법은 야박합니다. 왕의 예법으로 장사지내십시..

역사와 현실 2019.06.20

[여적]조선도공 후예 심수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7년전쟁에서 끌려간 조선인은 5만~10만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도공, 석공, 목공, 인쇄공, 제지공 등 기술자나 기능인이 유독 많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했다. 도공은 일본군의 표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인 도공을 납치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다. 일본이 ‘조선 도공 모시기’에 열을 올린 것은 당시 일본에 다도가 유행하면서 질 좋은 다기와 다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구태훈, ‘일본에서 꽃핀 조선의 도자기 문화’). 피랍된 조선 도공 가운데 널리 알려진 이는 이삼평(李參平)이다. 1598년 사가현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아리타(有田)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백토(고령토)를 발견한 뒤, 그곳에서 조선식 자기를 제작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히젠 도자기’의..

역사 칼럼 2019.06.18

[여적]‘조선시대 3대 정원’

‘주변의 산은 높더라도 험준하게 솟은 정도가 아니요, 낮더라도 무덤처럼 가라앉은 정도가 아니어야 좋다. 주택은 화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사치한 정도가 아니어야 좋다. 동산은 완만하게 이어지면서도 한 곳으로 집중되어야 좋다.’ 200년 전 서유구가 백과사전 에서 밝힌 집터 잡는(相宅·상택) 법이다.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분화되면서 사대부의 생활이 주거와 조경에 눈을 뜰 정도로 나아졌다는 증거다. 서유구가 터잡기, 집짓기 법을 얘기할 때 한양에는 저택과 정원, 별장들이 들어섰다. 사대문 안에서는 정동의 심상규 저택, 삼청동의 김조순 별장 ‘옥호산방’이 호화로움을 뽐냈고, 도성 밖에서는 서유구의 번동 별장인 자연경실, 홍양호의 우이동 소귀당이 입에 오르내렸다. ‘성락원(城樂園)’이 조성된 것도 이즈음이다. 성락..

역사 칼럼 2019.06.14

모데르누스

며칠 전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에 한 친구가 흥미로운 요청을 올렸다. 광화문에 나갔다가 퀴어축제 참가자들과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행진을 동시에 보았단다. 스피커 성능이 좋아서 양쪽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가 먹먹하고 정신이 없었다고. 친구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던 일의 혼란스러움을 토로하며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 친구가 전한 내용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런 양상이 조만간 사그라질 것 같지도 않다. 현재 우리가 보고 듣는 소란스러움 혹은 혼란스러움이 단지 특정한 사회적 이슈나, 더 나아가 현 정권에 대한 개인적 호오(好惡)에서만 비롯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마다 개인적으로 쌓아온 삶의 경험들과 각자의 상식 차이가 원인일 것이다. 어찌 됐든 이제 우리는 ‘저쪽 편’에도 모종의 진정성이 있음을 인정..

역사와 현실 2019.06.13

양녕대군의 두 얼굴

“충녕(세종)에게 하늘도, 인심도 쏠린 것을 알고는 일부러 미친 척하면서….” 1879년(정조 13년) 정조의 글(‘지덕사기’)처럼 양녕대군 이제(李제·1394~1462)는 세종의 등극을 위해 일부러 미치광이로 살았다는 것이 여러 기록에서 보인다. 1418년(태종 18년) 6월6일자도 태종이 폐세자 양녕대군에게 “네(양녕대군)가 언젠가 나(태종)에게 ‘세자 자리를 사양하고 싶다’고 고한 적이 있지 않으냐”고 언급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실록을 읽으면 양녕대군의 행태가 너무도 몰상식적이고, 또 그 때문에 너무나 많은 주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편 있는 여성(어리)을 빼앗아 아이까지 낳고, 큰아버지이자 2대 임금인 정종을 모신 기생(초궁장)을 농락했으며,..

[여적]‘남영동 대공분실’의 변신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다. 김수근문화재단의 홈페이지에는 그의 작품 연보가 소개돼 있다. 대표작 ‘공간 사옥’(1971)을 비롯해 남산 자유센터(1963), 경동교회(1980), 인천상륙작전기념관(1982), 불광동성당(1982), 청주박물관(1985) 등 익숙한 건축물이 많다. 그러나 그의 건축 리스트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물론 재단이 공개한 작품연보에는 빠져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치안본부가 ‘국가보안 사범’ 전문 수사처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했다. 7층 벽돌 건물로 앞면을 제외하고는 창이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특히 5층은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수직으로 작은 창을 냈다. 위압적이고 폐쇄적이다. 1987년 1월14일,..

역사 칼럼 2019.06.11

민주주의, 역사의 최종 단계인가?

최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는 중도 세력의 약화와 극우 세력의 약진이라는 우려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영국에서는 신생 극우 정당인 브렉시트당이 32%로 1위를 했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주의 정당 국민연합이 23%로 선두를 차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난민들의 이탈리아 입국 계략은 인신매매를 돕고 부추기는 일”이라면서 강경한 난민 반대 정책을 외치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극우세력인 북부동맹이 34%를 얻었다. 난민 반대,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등의 극단적인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 극우 정당들이 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가 그 자체로서는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기에 불안정한 정치제도라는 것이..

역사와 현실 201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