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 8

최익현의 운명

19세기 후반 프랑스가 쳐들어올 기세였다. 강적과 싸우지 말고 평화조약을 맺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호남의 대학자 노사 기정진은 결사반대했다. 그는 군비 강화의 방법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흥선대원군은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그때 근기의 석학 화서 이항로도 똑같은 입장을 밝혔다. 위정척사론이었다. 각지에서 선비들의 호응이 빗발쳤다. 그들은 외세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로 다짐했다. 이후 갈수록 국운이 기울었다. 선비들은 할 수 없이 목숨을 걸고 의병투쟁에 돌입했다. 면암 최익현은 그중 하나였다. 그는 이항로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기에 더욱 강경했다. 1876년 일본과의 통상조약이 체결될 때부터 최익현은 격렬히 반대했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시대착오라고 여겨질 수..

역사와 현실 2019.07.25

신라시대 3대 판결문

1988년 3월20일 경북 울진 죽변면 봉평 2리 마을 이장 권대선씨는 길 옆 개울에 처박혀 있던 명문비석을 확인하고는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비문 내용은 “524년(신라 법흥왕 11년) 모직지매금왕(법흥왕) 등 14명의 6부귀족이 회의를 열어 이야은성에 불을 내고 성을 에워싼 마을의 유력자들을 곤장 60대와 100대형에 처한다”는 판결문이었다. 울진 봉평비(국보 제242호)이다. 1989년 3월 경북 영일군 신광면 냉수 2리의 마을주민 이상운씨도 자기 밭에 박혀 있던 명문비석을 찾아냈다. 영일 냉수리비(국보 제274호)이다. ‘503년(지증왕 2년) 마을주민들이 재물(財)을 둘러싸고 다투자 지증왕 등이 재판 끝에 특정인(절거리)의 소유로 결정했다’는 판결문이었다. 2009년 5월11일 경북 포항시 북구 ..

너만 아니면 된다고?

포폄(褒貶) 문서라는 것이 있다. 조선시대 관원의 근무평정서다. 평가 주체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며, 평가 대상은 직속 하급 관원들이다. 평가는 매년 두 차례 실시하며 상, 중, 하로 성적을 매긴다. ‘하’를 받으면 퇴출이 원칙이다. ‘중’을 받아도 안심할 수 없다. 거듭 ‘중’을 받으면 역시 퇴출이다. 게다가 상대평가다. ‘하’를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평가자가 견책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현재 남아 있는 포폄 문서를 보면 평가 대상자 대부분이 ‘상’이고, ‘중’과 ‘하’는 한둘 정도다. 평가자 한 사람당 평가 대상자가 많지는 않으므로, 한두 사람만 ‘하’를 받아도 전체의 5~10%에 가깝다. 조선시대 근무평가는 6개월 단위로 하위 5~10%를 솎아내는 엄격한 제도였던 것이다. 물론 현장..

역사와 현실 2019.07.18

[여적]사라지는 ‘이육사 순국지’

중국에서 여행작가로 활동 중인 윤태옥씨가 지난 10일 베이징의 ‘이육사 순국지’ 철거 소식을 알려왔다. 윤씨는 페이스북에서 “육사 순국지 그 건물 남쪽과 동쪽의 평방이 철거되고 있다”면서 “순국지인 2층 벽돌 건물은 2차 철거한다고 현지 주민이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그가 보내온 사진은 철거가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건물 주변은 폐자재로 어수선하다. 벽에는 ‘안전제일 예방위주’ 등 철거를 알리는 중국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베이징시 둥청구 둥창후퉁 28호. 지난해 10월 경향신문 열하일기 답사팀과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이육사 시인이 순국한 옛 일본영사관 감옥 건물은 퇴락했지만 원형이 보존돼 있었다. 당시 답사팀은 건물 마당에서 시 ‘광야’를 암송하며 사적지가 보존되길 기원했다(경향신문 2018년 ..

역사 칼럼 2019.07.16

분노는 나의 힘

역사적 현상을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흔히 그 현상을 둘러싼 ‘구조’나 현상의 중심에 있는 주체의 ‘의지’를 살핀다. 예를 들어 19세기 조선왕조에서 농민반란의 폭발적 증가 이유를 세금제도 문란으로 인한 민생 파탄에서 찾는 것, 1차 세계대전 패배가 불러온 독일에 대한 과도한 전쟁 배상금 요구가 결국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구조적 설명이다. 또 조선시대 세금제도 개혁인 대동법 성립에서는 잠곡 김육 등 개혁 주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이것은 개혁 성공의 요소로 의지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런 설명을 들을 때 우리는 문제가 잘 설명되었다고 느낀다. 구조나 의지가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서 심리적 요인 같은 것도 때..

역사와 현실 2019.07.11

‘만취승마’와 음주운전

“남양백 홍영통이 임금의 탄신일에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1395년 10월11일) 조선 초 원로문신 홍영통(?~1395)이 태조의 탄신잔치에서 만취상태로 귀가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기사다. 홍영통의 출생연도는 모른다. 다만 1393년(태조 2년) 1325년생인 안종원(1325~1394)과 함께 ‘개국원로’로서 상을 받았으니 1320년대생(사망 당시 70대)일 가능성이 많다. 홍영통은 70대 고령에 만취승마까지 했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순박하고 상식에 따라 처신했다’()는 평을 듣는 홍영통의 허망한 죽음에 충격받은 태조는 사고 3일 뒤 원로 및 재상들에게 대나무로 만든 가마를 한 대씩 하사했다. 절대 음주상태로 말을 타지 말고 가마꾼이 모는 가마를 타라고 신신당부..

[편집국에서]비운의 문화재들, 제자리 찾아줄 때다

빼어난 조형미로 백제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국립부여박물관의 자랑이다. 이 향로를 보기 위해 부여를, 부여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관람객이 늘자 박물관은 이 향로만을 위한 전시공간을 특별히 단장하기도 했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부여의 문화적 자긍심을 상징한다.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고마운 문화재다. 세계적 박물관에는 관람객들이 즐겨찾는 상징적 소장품이 있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이나 ‘파르테논 마블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진품을 보기 위해 해마다 수백만명이 몰려든다. 문화재만이 아니다. 이름난 현대미술품을 소장한 미술관, 아름다운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의 쇠락한 중소도시 빌바오..

역사 칼럼 2019.07.05

성인 세바스티아누스와 흑사병

유럽 역사에서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는 14~16세기에는 엄청난 양의 미술작품이 제작되었다. 그림의 양도 증가했고 새로운 소재들을 다루었지만 여전히 기독교와 관련된 주제가 대다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인기를 얻은 기독교 성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성인 세바스티아누스였다. 페루지노, 틴토레토, 티치아노, 안드레아 만테냐 등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수 화가들이 그를 화폭에 담았다. 대체로 성인 세바스티아누스는 화살을 맞고도 얼굴에 고통보다는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특히 만테냐가 그린 성인 세바스티아누스는 근육질의 몸매에 온몸에는 10개 정도의 화살이 꽂혀 있고 게다가 머리를 관통한 긴 화살을 품고 있다. 세바스티아누스는 3세기 후반 로마 제국의 황실근위대 장교였다. 288년 황제였던 디오..

역사와 현실 2019.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