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 7

못다 이룬 율곡의 개혁

20년 3월 기사에는 율곡 이이의 제자 이귀의 상소가 나온다. 스승 이이가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상소에 대해서 사관(史官)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이때 조정 논의가 성혼, 이이 무리에 대한 공격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선비로서 성혼, 이이와 조금이라도 가까이했던 자는 차례로 배척당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위하여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이이가 사망한 지 이미 3년이 넘은 때였다. 사망 후에도 이이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그칠 줄 몰랐다. 이이는 사망하기 몇 달 전에 심지어 ‘소인(小人)’으로 규정당했다. ‘소인’이라는 말은 당시 평범한 비난의 말이 아니었다. ‘소인’은 설득과 타협이 아닌 배제와 박멸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 이이를 공격한 한 동인 ..

역사와 현실 2019.10.31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얼마 전에 ‘중세 말 피렌체로 팔려온 타르타르 노예’라는 제목의 논문을 준비하다가 우연하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어머니가 중국인 노예였다고 주장하는 책을 발견했다. 일견 황당해 보이지만 동시대에 이탈리아 도시들에 아시아 출신의 노예가 다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개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전엔 유럽과 아시아가 직접 교류를 하지 않았다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실제로 몽골이 유라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세계제국을 건설한 13~14세기에 다수의 아시아 출신 노예들이 유럽으로 팔려갔다. 14세기 중엽 흑사병으로 인구가 격감한 유럽은 흑해를 통해 여러 민족의 노예들을 수입했다. 당시 흑해 지역에서 활..

역사와 현실 2019.10.24

시중의 정치

영조와 정조는 조선 후기사회에 이채를 더했다. 그들은 스스로 ‘군사(君師)’ 곧 철인 왕을 자임하였다.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건국 이래 오랜 세월 성리학을 국시로 여겨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영조와 정조 같은 석학이 나온 것이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개혁정치가 조광조는 중종을 철인 왕으로 만들고자 정성을 쏟았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선조 때에는 시골로 물러났던 선비들이 조정에 복귀해, 선조를 철인 왕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철인 왕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영조와 정조는 역사적 기대에 부응하였다고나 할까. 그들은 한 나라의 왕이자 최고의 성리학자였다. 그들은 유교 경전인 에 명시된 ‘시중(時中)’의 가치를 바탕으로 이상 국가를 이..

역사와 현실 2019.10.17

[정인진의 청안백안 靑眼白眼]안중근의 전쟁과 평화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겨눈 브라우닝 M1900 권총에서 났던 총소리다. 이 총은 칠연발형이었으나 실제로 발사된 것은 여섯 발이었다. 세 발이 이토에 명중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수요(數謠)는 “육혈포로 칠 발을 쏜” 안중근을 기리며 그 총소리를 일곱 발로 듣는다. 제국주의는 무도하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적어도 조선에 관한 한 단순한 식민지배가 아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지적대로 그것은 독립국에 대한 강탈이고 침략이다. 더 나쁘다. 안중근은 이 침략에 대항하는 의병활동을 전쟁으로 규정한다. 안중근에 대한 일본의 재판은 법적으로 정당한가? 안중근의 거사가 이루어진 곳은 하얼빈역이다. 이곳은 청국의 영토이지만 러시아가 조차하여 동청철도의..

역사 칼럼 2019.10.15

인정의 나라, 인륜의 나라

성호 이익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인정의 나라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 많다는 뜻일까? 아니다. ‘인정’은 뇌물의 다른 이름이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뇌물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호가 본 조선은 뇌물의 나라였다. 인정이라는 명목의 뇌물이 가장 만연한 분야는 조세 행정이었다. 국가 재정을 지탱하는 전세(田稅), 군역(軍役), 공납(貢納)은 모두 뇌물의 온상이었다. 무슨 특별한 혜택을 바라서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뇌물이 없으면 정상적인 세금 납부조차 불가능했다. 세금을 깎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금을 내기 위해 뇌물을 주어야 했던 것이다. 전세는 지방 관청에서 수합해 조운선(漕運船)에 실어 한양으로 올려보낸다. 이 과정에서 온갖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

역사와 현실 2019.10.14

[여적]‘불후의 기록’ 탁본

1816년 7월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 비봉에 올라 비석을 발견했다. 무학대사비로 알려진 비석이었다. 이끼 낀 비석을 만지니 글자가 보였다. 몇 번 탁본을 하니 진흥왕의 ‘眞(진)’ 자가 드러났다. 이듬해 6월 다시 비봉을 찾은 추사는 모두 68자를 판독한 뒤 진흥왕순수비로 단정했다. 북한산비의 발견은 조선 금석학의 시작을 예고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정희는 본격 비석 조사에 나섰다. 경주를 돌며 진흥왕릉, 분황사 화쟁국사비, 무장사비, 문무왕릉비를 찾아 확인하고 고증했다. 그렇게 ‘깨진 빗돌을 찾아다니며(搜斷碣)’ 추사는 금석학자로 태어났다. 금석문에 대한 관심은 추사보다 이계 홍양호(1724~1802)가 빨랐다. 조선 명문가 자제였던 이계의 취미는 서화와 탁본 수집이었다. 그는 수집뿐 아니라 직접 탁본을..

역사 칼럼 2019.10.07

조국 백 명을 갈아치운들…

두 달 동안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조 장관과 관련된 대화를 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교육 문제, 세대 간 불평등 문제, 그리고 계급 문제로 확대된다. 하나의 신드롬이다.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에 반대하는 집단은 일견 크게 세 축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야당이고, 다른 한쪽은 검찰이다. 유력한 제도권 언론사들은 이 두 집단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그들에 동조하는 모양을 띠고 있다. 보도 내용만 봐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만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무엇보다 ‘도덕성’을 자산으로 삼아온 진보 진영 내에서도 조 장관을 둘러싼 첨예한 이견이 대립 중이다. 지금이라도 ..

역사와 현실 20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