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 8

[조운찬 칼럼]애이불상<哀而不傷>의 오월

정도상의 신작 장편 은 5·18민주화운동 시민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적 배경은 1980년 5월26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15분까지 10시간 남짓이다. 최초의 5·18 기록물 는 물론이거니와 (임철우), (한강), (정찬주) 등 많은 ‘오월 소설’이 열흘간의 항쟁 전 시간을 포괄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 작가 정도상이 항쟁의 일부만 다룬 것은 오월항쟁의 진행과정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일 수 있다. 형식의 차별성이다. 그런데 작품을 읽다보면 의 특징은 형식보다는 주제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항쟁의 최후는 시민군의 쓰라린 패배다. 전남도청에 있던 시민군의 일부는 계엄군 진압을 앞두고 귀가한다. 남아있는 자는 총에 맞고, 군홧발에 차이고, 대검에 찔려 최후를 맞는다. 살아남는 ..

역사 칼럼 2020.05.29

프레임의 전환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집안에 갇혀 지낸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옛날이야기도 다시 꺼내 읽었는데, 15세기의 문장가 강희맹이 쓴 글 하나가 내 마음에 남았다. 강희맹은 소문난 재담가여서 종일토록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강희맹이 아들에게 준 일종의 가훈이었다. 어느 도둑에 관한 이야기인데 선비들이 쏟아낸 틀에 박힌 훈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곰곰 생각하면 특별한 맛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본다. 어느 곳에 도둑질을 업으로 삼은 이가 살았단다. 그것도 가업이라 생각하였던지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둑질하는 기술을 열심히 가르쳤다. 아들의 솜씨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은 자신의 솜씨가 아버지보다 낫다고 자부하였다. 아들의 자만심이..

역사와 현실 2020.05.28

[여적]최서면의 근기(根器)

1969년 겨울 어느날, 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은 도쿄 고서점거리 진보초의 한 서점에서 보내준 ‘도서목록’에 눈이 꽂혔다. 를 확인한 그는 소장자(스에마쓰 교수)한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세우는데 정작 안 의사 전기가 없으니 양보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최 원장의 열정에 감복한 소장자는 결국 책을 내줬다. 구전으로만 떠돌던 안중근 옥중 자서전의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뒤 안중근숭모회 이사장인 노산 이은상은 를 국내에 번역 소개했다. 안 의사 탄생 100년을 맞은 1979년에는 을 펴냈다. 안중근 연구의 시작이었다. 최서면 원장 역시 연구자로 나섰다. 일본 ‘외교시보’에 발굴기를 소개한 최 원장은 이내 ‘안중근연구회’를 출범시켰다. 매일같이 외무성 외교사료관으로 출근해..

역사 칼럼 2020.05.28

[여적]간송미술관의 보물 경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스물네 살 되던 1929년 미곡상을 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4만마지기(수확량 2만석)의 논을 상속받는다. 쌀 2만석은 요즘 시세로 450억원, 수십채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간송의 꿈은 변호사가 되어 일제강점기의 우리 동포를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졸지에 대부호의 상속자가 되면서 ‘문화재 지킴이’로 진로를 바꾼다. 그가 문화보국(文化保國)에 뜻을 세운 데에는 서예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이충렬, ). 간송의 문화재 수집은 일제 문화침탈이 극에 달한 1930~1940년대에 집중되었다. 간송은 1935년 일본인 골동상에게 기와집 20채 값을 치르고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구입했다. 신윤복의 풍속화첩 ‘혜원전신첩’을 사들이는..

역사와 현실 2020.05.22

‘세종스타일’과 광화문 한글 현판

자칭 ‘시민모임’이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자 현판은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 광장을 상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례본 서체로 제작한 샘플도 선보였다. 반드시 한글 현판을 걸도록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겠단다.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광장 좋다. 현판만 바꾼다고 되겠는가. 이참에 광화문 앞 세종대왕 동상도 바꾸자. 근엄하게 옥좌에 앉은 모습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월드스타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모습은 어떨까. ‘세종스타일’ 동상은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K팝의 위상과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차라리 옥좌에 앉은 싸이 동상이 낫겠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기왕이면 탈부착식으로 만드는 게..

역사와 현실 2020.05.21

‘신천지’와 공동체 삶의 가치

20여 년 전 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여기에 나왔던 궁예의 ‘관심법’이 얼마간 유행했다. 왕이 된 궁예는 자신을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하며 자신에게 반역을 꾀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역사기록에도 그렇게 나온다. 궁예의 말과 행동은 그 자신의 생애는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신라는 9세기에 들어서 차츰 국가체제가 와해되었다. 9세기 중반이 되면서 중앙정부가 사회 치안을 유지할 능력을 잃었다. 여기저기 사병(私兵)으로 무장한 유력자들 ‘호족’이 등장했다. 그들은 일종의 군벌세력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낯선 풍경이지만 유럽 중세에서는 흔한 광경이다. 9세기 말이 되면 경주의 중앙정부는 더 이상 지방에서 세금을 걷지 못했다.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지자 불교의 ..

역사와 현실 2020.05.14

흑사병과 의사 기 드 숄리아크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카뮈의 소설 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책 판매량도 늘었다. 이 소설은 194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오랑시에서 발생한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페스트와 맞서 싸웠던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경험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작은 도움과 위안을 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전염병이 파괴한 평범한 일상, 가공할 공포에 맞선 작은 인간들의 숭고한 연대, 그 속에서 더욱 빛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들려준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 역사 속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특히 700년 전 중세 유럽을 강타하고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흑사병은 인간 존재의 무기력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역사와 현실 2020.05.06

퇴계의 편지 “아내를 공경하라”

코로나19가 세계 각국에 유행하자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편에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가정폭력과 이혼율도 급증한다며 걱정이 많단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성인 남녀가 평화롭게 사는 일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유교가 지배한 옛날에는 부부관계가 어떠했을까. 그때는 가부장 사회라서 여성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을지 몰라도 남성은 편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기가 쉽다. 정말 그랬을지 모르겠다.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퇴계선생연보’에 따르면, 그는 21살 때 허씨 부인과 결혼했다. 두 해 만에 큰아들 준이 태어났고, 다시 4년이 지나 둘째 아들 채를 얻었다. 그런데 산후병이 있었던지 부인이 세상을 떠나 이황은 27세..

역사와 현실 202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