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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조선”은 무엇입니까

살기가 어려워도 희망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어려움이 클수록 고통을 벗어난 이상세계를 향한 동경도 커지는데 이것이 인간 역사의 모습이다. 조선 후기에도 그러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어지러운 사회경제적 현실에 괴로워했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때였다. 그러나 조정 대신들은 그들 자신이 속한 기득권층의 이익에 봉사할 뿐이었다. 그들은 백성의 편에 설 생각이 없었으므로 조정의 실정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수가 자꾸만 늘어났다. 그들 중에는 하루빨리 조선왕조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가올 새 세상에 희망을 걸었다. 그들은 <정감록>이라는 정치적 예언서를 삶의 교과서로 삼았다. 이 책은 누가 저술했는지도 알 수 없으나, 영조 때 역사의 표면으로 떠오른 것만은 사실이었다. 국가..

역사와 현실 2020.06.25

[여적]삼국유사면

고려 말 간행된 의 저자는 수백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초간본이 전하지 않는 데다 현전하는 중간본(정덕본·1512년)에도 저자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본에는 저자의 서문이나 발문이 없다. 고려 문인 민지가 쓴 일연의 저서 목록에도 삼국유사는 보이지 않는다. 중간본 간행을 주관한 경주부윤 이계복이 ‘인각사 주지 일연’이라는 서명을 책 중간에 슬며시 끼워넣지 않았으면 삼국유사 저자는 미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일연 스님(1206~1289)은 경북 경산의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9세에 출가해 국가 승려시험에서 최우등으로 합격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여러 절을 옮겨다니며 40대에 대선사가 됐다. 70대에는 ‘원경충조’라는 호를 받으며 국존에 봉해졌다. 스님은 생애 마지막 5년을 군위 인각사에 주석했다..

역사 칼럼 2020.06.24

명복은 빌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말이다. 명복(冥福)은 저승의 행복이다. 이승의 삶이 끝나면 저승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느 종교나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교는 독특한 점이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생전의 행위와 신앙이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한다. 따라서 사람이 죽고나서 명복을 빌어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반면 불교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명복을 빌어주면 아귀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악인도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명복을 비는 게 효과가 있는 종교는 불교뿐이다. 불교의 3대 의례는 모두 명복을 비는 의식이다. 망자의 명복을 빌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산재(靈山齋), 명복을 빌어줄 이 없는 원혼을 위한 수륙재(水陸齋), 생전에..

역사와 현실 2020.06.18

[조호연 칼럼]‘백선엽 논란’, 지체된 정의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에 대한 국립묘지 안장 찬반 논란이 불거졌다. 김병기·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파묘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다. 현재 서울과 대전 현충원에는 60여명의 친일파가 잠들어 있다. 두 국회의원은 나라에 헌신한 이들을 모시는 현충원에 친일파들은 묻힐 자격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이장해야 한다고 법 개정 취지를 설명한다. 이 내용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백 장군은 사후 국립묘지 안장이 어려워진다. 보수 세력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전쟁 영웅을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일각의 논리는 도를 넘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백선엽 장군은 6·25의 이순신인데, 현충원 안장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순신 장군은 반민..

역사 칼럼 2020.06.17 (1)

국가의 일

48년 만에 한 해에 세 번째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된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또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960년대 경제성장을 시작한 이래 세 번째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뉴스도 같이 전해진다. 물론 이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이며, 사정은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다. 오히려 한국은 성공적 방역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그 부정적 영향이 가장 적다는 사정이 그래도 불행 중 위안이 된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중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란다.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그래서 이번 추경에서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상당한 몫을 차지할 것이란다.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전통시대의 기후상황은 오늘날의 경기변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 오늘날..

역사와 현실 2020.06.11

기적을 믿고 바라게 된 사회

흔히 서양 중세는 암흑시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은 중세를 고대 문명의 찬란한 빛이 사라진 시대로 보았고, 이러한 관점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에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중세는 이성으로 타파할 무지, 야만, 몽매, 폭력의 시대였다. 19세기 이후 서양 중세사회에는 어둠만이 아니라 빛도 있었다는 해석이 나타났다. 하지만 현대인의 이성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서양 중세는 여전히 너무나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였다. 중세사회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 중 하나는 프랑스와 영국의 왕들이 연주창 환자를 손으로 만져서 치료할 수 있다는 집단적 믿음이다. 프랑스의 카페 왕조는 11세기부터, 영국의 노르만 왕조는 12세기부터 이 기적의 치료를 시행했다. 사..

역사와 현실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