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 7

[여적] 문화재가 된 ‘활쏘기’

은 조선 신궁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이다. 병자호란으로 누이가 포로로 잡혀가자 주인공 ‘남이’는 활을 들고 적진으로 달려가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는다. 애국심에 호소한 ‘국뽕 영화’이지만 잊혀져간 활쏘기 무예를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활을 가까이 했다는 점은 고구려 벽화 ‘수렵도’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민족을 뜻하는 동이족을 ‘동쪽의 큰 활잡이’ 종족으로 풀기도 한다. 동이의 ‘이(夷)’ 자를 해체하면 큰 대(大)와 활 궁(弓)이다. 문헌에 보이는 단궁(檀弓:단군의 활), 맥궁(貊弓:맥족의 활)은 활의 역사가 오래됐음을 증거한다. ‘쏜살’ ‘긴장(緊張)’ ‘해이(解弛)’처럼 활과 관련된 어휘도 적지 않다. 옛날 활쏘기에 능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화살이 버들잎을..

역사 칼럼 2020.07.31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용과 거부

한때 세계사 교과서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켰다는, 관행적으로 사용한 표현이 있었다. 구체적 내용이나 맥락에 대한 보충설명이 없다면 이 문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신앙은 기독교를, 이성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학문을 상징한다. 조금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중세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학문을 신앙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천년 넘게 배제했다. 그러다 12~13세기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배우자는 욕구가 다시 일어났다. 13세기 후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도 신의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서 기독교 신앙과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이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학문의 수용에 아무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역사와 현실 2020.07.30

[역사와 현실] 이익이 들려준 이순신 이야기

성호 이익의 글은 명쾌하고 분석적이라서 읽을 때마다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성호는 이순신에 관해서도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몇 차례 거듭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서너 가지 점에서 정말 탁견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이순신을 조정에 추천한 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세기에는 서애 류성룡이 왜란 때 정승으로서 많은 공을 세웠다며 호평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성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류성룡의 공적이 아무리 많다 해도 이순신을 조정에 천거한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보았다. 그의 설명이 대강 이러했다. 이순신은 본래 이름 없는 장교에 지나지 않았다. 류성룡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조선은 침몰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0.07.23

[여적]강산무진도 vs 촉잔도권

2009년 10월 초 국립중앙박물관은 13년 만에 일본에서 건너온 ‘몽유도원도’를 보려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2005년 용산중앙박물관 개관전에서는 8년 만에 공개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작품이 주목을 받은 것은 두루마리 대작으로 실물 공개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길이가 11m, 세한도는 15m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감상을 적은 발문(跋文)을 포함한 것으로 순수한 그림의 크기는 몽유도원도가 38.7×106.5㎝, 세한도는 23.3×69.2㎝에 불과하다. 조선 회화의 진정한 대작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856×44.1㎝)와 심사정의 ‘촉잔도권’(818×85㎝)이다. 불화를 제외한다면 역대 회화 가운데 이들을 능가할 대작은 없다. 두 작품은 조선 후기 ..

역사 칼럼 2020.07.22

조선시대 성교육

<천자문>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도 ‘하늘 천, 따 지’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아예 <천자문>이 뭔지 모른다. <천자문>을 마치고 이어서 읽었던 <동몽선습> <격몽요결> <소학> 같은 교육용 필독서 역시 알 턱이 없다. 세상이 변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가르치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가르치는 과목이 딱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성교육이다. 조선시대 성교육의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야담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더러 있지만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흥미 위주의 음담패설에 불과하다. 이밖에 춘화(春화)를 보면서 성교육을 했다는 둥, ‘보정(保精)’이라는 성교육 과목이 있었다는 둥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도 전부 낭설이다. 어쩌다 발견한 성 ..

역사와 현실 2020.07.16

홍콩보안법과 세조구제

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 162명이 만장일치로 이 법을 통과시켰고 시진핑 주석의 서명으로 곧바로 시행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새 법의 내용은 크게 4가지라고 전한다. 외국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을 금지하고, 국가 정권 전복 및 테러리즘 활동을 금지하고 처벌하며, 국가안보 교육을 강화하고, 마지막으로 이를 위한 집행기관을 홍콩 내에 설치하는 것이 그것이다. 홍콩보안법 통과가 갑작스럽지는 않다. 2019년에도 홍콩의 ‘범죄자’를 홍콩이 아닌 중국 내륙으로 송환하여 처벌하려는 홍콩 송환법이 추진되었다.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입법이 좌절되었지만 중국 당국은 송환법을 추진했던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홍..

역사와 현실 2020.07.09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십자군 전쟁

최근 몇 년 동안 타임 슬립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였다. 타임 슬립(Time Slip)은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 여행을 뜻한다. 타임 슬립을 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겪게 되는 어려움은 상호 소통이다.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다른 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 행동양식, 가치관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래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 <비지터>(1993년)는 중세 유럽의 기사와 그의 종자가 20세기로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프랑스 왕 루이 6세(1108~1137)를 구한 기사 고드프루아는 마녀의 마술로 미래의 장인을 살해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는 마법을 활용하다가 잘못되어 미래..

역사와 현실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