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 3

때아닌 인육 소동

돌발적인 사건은 어느 시대든 일어난다. 이것은 태평성대라고 하는 세종 때 일로 이계린이 황해감사에 임명되었다. 임지로 떠나기 직전 그는 조정에 재정지원을 요청했는데, 황해도는 이미 수년째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계린은 현지 사정이 무척 열악해, 사람이 사람 고기를 먹는 사태까지 일어났다고 했다(, 세종 29년 11월15일). 말을 전해 들은 세종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즉위 초부터 백성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했는데 인육 소동까지 벌어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괴로움에 빠진 왕은 의정부 대신들과 해법을 논의했다. 다들 철저한 진상조사를 주문했다. 신임 감사 이계린으로 말하면 세종의 조카사위였다. 세종의 큰누나인 정순 공주의 사위였던 것이다. 조사 결과 이계린은 정순 공주 댁에서 일하는 환관 김한에게..

역사와 현실 2020.08.21

격식과 실용

1884년 윤5월, 고종은 복식 제도 개혁안을 발표한다. ‘갑신의제개혁’이라고 한다. 복식의 간소화와 단일화를 지향하는 이 개혁안은 서구와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전통 복식의 불편에 눈을 뜬 결과였다. 급진개화파는 양복 도입을 바랐지만 당시로선 시기상조였다. 복식 개혁을 영향권 탈피 시도로 의심하는 청나라의 눈치도 봐야 했다. 결국 개혁안은 전통 복식을 약간 수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공식 행사복인 ‘조복’, 제사 때 입는 ‘제복’, 상중에 입는 ‘상복’은 그대로 두고, 평상복만 바꾸었다. 활동에 편리하게 소매를 좁힌 ‘착수의’를 평상복으로 삼고, 그 밖의 ‘도포’니 ‘직령’이니, ‘창의’니 ‘중의’니 하는 복잡한 옷들은 전부 없애기로 했다. 관료의 복장은 양복을 본떠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유림은 강력 반발..

역사와 현실 2020.08.13

신라의 수도 이전 시도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삼국통일 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은 689년에 수도를 경주에서 달구벌, 즉 지금의 대구로 옮기려 했다. 이 시도는 실패했다. 신문왕이 수도를 옮기려 했던 이유는 지금 봐도 이해할 수 있다. 백제와 고구려 영역을 아우르게 된 신라의 수도로 경주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다. 수도로 기능하려면 위치가 대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을 것이다. 신문왕의 수도 이전 실패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당시는 신라의 왕권이 최고조인 통일 전쟁 직후였다. 어느 나라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최고 권력자의 권력이 더 강화되기 마련이다. 신라가 초강대국 당나라까지 한반도에서 몰아낸 것이 신문왕 즉위 ..

역사와 현실 2020.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