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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교황이 고려왕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1333년 교황 요하네스 22세가 고려의 왕에게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9월 무렵이었다. 한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교황이 고려의 충숙왕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 편지가 사실이면 우리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발견일 것이라는 전문가의 인터뷰도 함께 실려 있었다. 이후 이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2017)와 김진명의 소설 (2019)까지 나왔다. 이 이야기는 한국 사람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드높일 수 있는 소재임이 분명하다. 14세기 초반에 이미 교황이 고려왕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고려의 명성이 유럽에까지 알려져 있었다고 자랑하고, 유럽과 한반도의 교류사를 250년 이상 앞당겨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지의 수신인을 고려왕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역사와 현실 2020.09.24

전봉준과 박영효

1894년 11월 박영효가 내부대신이 됐다. 얼마 후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이 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서울로 끌려오자 박영효가 직접 심문했다고 한다. ‘위로부터 혁명을 일으킨’ 인사가 ‘아래로부터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을 다그치는 진풍경이었다(오지영의 <동학사>). 그들이 만나자 엄청난 설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편의상 3회전으로 정리해볼 수 있는데, 1회전은 전봉준의 죄상을 꾸짖는 시간이었다. 박영효는 세상에 알려진 전봉준의 죄상을 외웠다. 반란군을 이끌고 전주를 함락한 죄, 무기와 군량미를 빼앗은 죄, 조정 관리를 살해한 죄, 세금을 임의로 사용한 죄, 양반과 부자를 핍박한 죄, 노비문서를 없애 사회기강을 흔든 죄, 농경지를 백성에게 나눠주어 법질서를 무너뜨린 죄 등이 길게 나열됐다..

역사와 현실 2020.09.17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진나라 환관 조고가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려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제 호해에게 사슴(鹿)을 바쳤다. “이것은 말(馬)입니다.” 사실대로 사슴이라 말한 신하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뒤로는 아무도 조고에게 바른말을 못했다.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유래다. 조고의 행태는 일찍이 예견된 것이었다. 진시황이 지방을 순행하다 갑자기 사망하자 조고는 진시황의 죽음을 감추고 얼음을 가득 채워넣어 시신의 부패를 막았다. 평상시처럼 음식을 올리고 업무를 보고하게 했다. 맏아들 부소를 후계자로 지정한 문서를 파기하고, 자결하라는 문서로 바꿔치기했다. 죽은 사람을 살아 있다 하고, 후계자를 죄인으로 둔갑시켰으니, 이 역시 지록위마와 다름없다. 조고가 정권을 장악한 뒤로도 지록위마는 계속되었다. 곳곳에서 반..

역사와 현실 2020.09.10

언론은 정부보다 더 공정한가

정상적인 사회라면 언론은 늘 정부보다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 실제로 늘 그렇지는 않다. 보편적인 일은 시대가 바뀌어도 다른 모습으로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조선왕조의 정치는 대신(大臣)과 언관(言官)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였다. 대신은 정승과 판서를 말한다. 이들의 책무는 한마디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다. ‘판서’는 한자로 ‘判書’라 쓰는데, 사안을 판단해 사인(signature)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언관은 오늘날의 언론인이다. 사헌부와 사간원, 넓게 보면 홍문관 관원을 포괄한다. 이들의 책무는 말하는 것인데,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고 바른 말을 해야 한다. 사헌부와 사간원 조직 내 관직명이 ‘집의(執義)’ ‘지평(持平)’ ‘정언(正言)’ 등이다. 글자 그대로 의로워야 하고, 균..

역사와 현실 2020.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