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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의 정체성

신조어는 언제나 생겨나지만 오늘날은 더 많이 등장하는 듯하다. 그냥 문맥으로만 짐작하고 넘어갔는데, 언젠가부터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뜻을 찾아본다. 그렇게 알게 된 단어가 ‘리즈 시절’이다. 지나가 버린 전성기를 일컫는단다. 그렇다면 ‘리즈 시절’은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는 유용한 용어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굽히고 들어가지 않은 것을 고구려의 패망 원인으로 드는 학자들이 있다. 흔히 신라의 ‘삼국통일’을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고구려는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패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당나라와 고구려 관계가 처음부터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당나라 태조 이연은 건국 후 고구려와 대등하게 공존하는 정책을 취했다. 수나라가 여러 차례 고..

역사와 현실 2022.05.19

일본인은 정말 전쟁을 아는가

저명한 일본사학자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패전 후 일본을 이렇게 회상했다. “신주쿠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주변은 불탄 벌판이었고 검붉게 그은 함석으로 만든 판잣집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2~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세탄 백화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략) 학교에 가보았더니 불타서 내려앉아 거무스름해진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그는 ‘전쟁에 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 ‘아, 일본인의 전쟁 이미지는 역시 이런 것인가’ 하는 이질감을 느꼈다. 직접 겪어보진 못했지만, 부모님이나 여기저기서 듣고 본 전쟁은 이렇게 한가한(?) 것이 아니었다. 적군이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고, 집 안으로 쳐들어올까 벌벌 떨고, 민간인끼리도 서로를 학살하고, 누가 우리 편인지..

역사와 현실 2022.05.12

장애인 시위에서 놓친 것들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가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장애인단체의 요구는 불법 시위로 불편을 겪는 시민의 성난 목소리에 묻혀버렸을 텐데, 언론의 반응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시민의 불편을 언급했다가 뭇매를 맞고 장애인 혐오로 낙인찍힌 야당 대표를 보라.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할 만하다. 상반된 의견이 대립할 때 한쪽을 편들기는 쉽다. 시민의 불편을 부각시켜 시위 방식을 비판하는 것도 쉬운 일이고, 장애인의 불편에 공감하며 시위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이 상황에서 언론의 할 일은 한쪽을 편들어 발길질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편가르기의 와중에 놓친 부분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구부러진 것을 펴려다가 반대쪽으로 구부러뜨리는 ‘교왕과직’을 저지르지 않았는지도 보아야 한다. 우선 시위..

역사와 현실 2022.04.28

조선 시대 장관 임명 논란

선조 14년 병조 참판 윤의중(1524~1590)이라는 인물이 형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 차관에 있다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이다. 그러자 조정 언론을 담당하는 사헌부·사간원에서 반대 상소가 올라왔다. 내용은 이랬다. “윤의중은 해남의 미약한 가문 출신인데 처음 관직에 나왔을 때는 뛰어난 인재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직과 명예로운 직책을 차례로 역임하여 참판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평생 치부에만 힘써서 그 부(富)가 호남에서 제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탐욕스럽고 비루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의중 경력은 상소에 쓰인 대로였다. 그는 25세인 명종 3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상당히 이른 합격이다. 32세에는 사가독서를 했고, 이어 이조 정랑에 올랐다. 사가독서는 엘리트 문관 ..

역사와 현실 2022.04.21

‘뜨거운 감자’ 흥선대원군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자 민씨정권은 청나라에 진압군 파견을 요청했다. 병자호란 후 약 250년 만에 처음으로 2000명의 청군이 서울에 진주했다. 청나라는 민씨들에게 밀려나 있던 대원군이 군란의 수모자라고 보고, 그를 청으로 납치했다. 국왕의 생부에 대한 전대미문의 행동이었다. 고종과 민씨들은 환호했지만, 기쁨은 곧 불안으로 바뀌었다. 대원군이 귀국한다는 풍문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청도 그를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건 부담스러웠고, 조선에는 대원군 지지 세력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특히 위정척사 세력이 강한 경상도에서는 모반 움직임까지 있었다. 어느새 대원군 귀국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1884년 2월16일 민씨정권의 군사실력자인 한규직이 일본대리공사 시마무라 히사시를 찾아와 대원군 관련 정..

역사와 현실 2022.04.14

호그와트 역사수업 유감

해리 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는 우리 같은 ‘머글’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흥미로운 수업이 가득하다. 비명을 질러대는 맨드레이크 같은 식물을 다루는 약초학 수업, 탁자를 돼지로 바꾸는 법을 가르치는 변신술 수업, 행운의 묘약을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약 수업까지. 이런 특이한 수업 속에 유일하게 머글도 수강할 만한 것이 있으니 바로 빈스 교수의 마법의 역사 수업이다. 역사를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 참으로 뿌듯하다. 이것 보라! 마법의 세계에서도 역사학은 유용한 학문이다! 아쉽게도 이런 뿌듯함은 곧 쭈그러들고 만다. 마법의 역사 수업은 유일하게 유령이 가르치는 과목이라는 점 외에는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교수가 유령이라 칠판을 스르륵 통과해서 들어온다는 것이 그나마 이 수업에서 ..

역사와 현실 2022.04.08

수상한 ‘만인산 성명’

때는 구한말. 소격동 한 주사는 이 판서에게 줄을 대어 밀양군수에 임명된다. 무능력자가 관직에 오르면 결과는 뻔하다. 재정은 파탄지경, 군민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임기가 끝나가자 한 주사는 유임을 위해 여론을 조작한다. 신문을 이용해 자신을 청백리로 포장하고 시정잡배를 동원해 ‘만인산’을 만들게 한다. 만인산은 1만 명의 이름을 적어넣은 양산이다. 선정을 베푼 지방관에게 백성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기념품이다. 한 주사는 싫다는 백성을 협박해 만든 만인산을 이 판서에게 보여준다. 이 판서는 유능한 인재를 알아본 자신의 안목을 자화자찬하며 한 주사의 유임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해조의 소설 (1909)의 전반부 줄거리다. 한 주사는 탐관오리다. 그는 백성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려고 만인산을..

역사와 현실 2022.03.31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

지나간 시간과 사건들이 모두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당대인들의 생생한 경험과 기억이 소멸된 뒤, 역사가들이 주목하여 서술한 것들이 역사가 된다. 역사가들마다 동일한 사실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어떤 역사가가 서술 대상으로 선택한 사건이 다른 역사가에게는 선택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역사를 구성하는 내용이 반드시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마도 이번 3월9일 선거는 ‘촛불혁명’과 짝하여 한국 현대사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가 끝난 뒤 각종 방송과 신문, 잡지, 그리고 팟캐스트에 이번 선거의 의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넘쳐난다. 차츰 잦아들겠지만 아마도 얼마간은 이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이 많은 평가들 중, 시간이 지나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조선 후기에 살았던 ..

역사와 현실 2022.03.24

야성적 민주주의

지난 3월9일 대통령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박빙의 차이로 나온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선거 불복에 대한 우려였다. 사전투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던 터라, 어느 쪽이든 패자가 승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5년 전에도 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 탄핵 시위 군중을 보면서, 혹시 폭력사태가 나면 어쩌나 했다. 불복과 폭력은 문자 그대로 ‘피로 쟁취한 한국 민주주의’를 파탄 낼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기우였다. 비서양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맨 먼저 실험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서양을 제외하고는 가장 먼저 헌법 제정(1889년)과 의회 설치(1890년)를 이룬 나라다. 1870년대에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시행한 적이 있으나 오래지 않아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일본은 몇 번의 계..

역사와 현실 2022.03.17

나의 미시사가 거시사와 만날 때

나는 친할머니가 참 어려웠다. 내 할머니는 포용과 사랑이 아니라 까다로운 예절 교육의 아이콘이셨다. 할머니가 오시면 늘 절을 하며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이렇게 절을 올리는 것은 내 세대에는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관습이었다. 절을 올릴 때면 상당히 긴장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팔의 각도, 어깨 자세 등을 놓고 또 한 소리를 들었고, 사촌들과 나란히 절을 할 때면 절에 대한 품평까지 각오해야 했다. 밥상머리에서 식사예절에 관한 잔소리도 한 무더기였다.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죽을 먹을 땐 가장자리부터 얌전히 떠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중학생인 내가 죽 먹는 방법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이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할머니의 아들 선호는 온 집안을 뒤흔들었는데, 친구들과 얘기해봐..

역사와 현실 2022.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