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249

우리들의 평양감사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는 세 폭짜리 ‘평안감사향연도’를 아실 것이다. 몇 달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한 작품이다. 대동강을 무대로 펼쳐진 풍속화인데, 영조 21년(1745년)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때 작품이라면 그림 속 평안감사는 이종성이었다. 영조 21년 4월5일, 이종성은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참조). 그는 당대 명인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사도세자가 궁지에 빠졌을 때 최선을 다해 보호한 신하로 그 명성이 높았다.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숭되자 그 묘정에 배향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종성은 폐단을 바로잡는 데 관심이 많아 실학자의 저술도 환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영조에게 실학자 유수원의 등용을 촉구했다(영조 13년). 제도의 폐단을 잘 아는 선비로는 유수원이 제일이라면서..

역사와 현실 2021.04.08

유튜브 단상

며칠 전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베트남에 와서 하면 안 되는 것들이라는 주제를 담았는데, 그중 하나가 인상적이다. 절대로 정부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베트남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정부 비판에 대해 권위주의적 억압을 가하는 것은 중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도 한 세대 전에는 그랬다.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일본인들도 정치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회계층이 따로 있다고 여긴단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오늘날 한국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매우 예외적이란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1945년 이후 미국이 가져다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히 한국..

역사와 현실 2021.03.25

식민지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문제?’

몇 해 전 외신기자단 회견에서 한 일본 기자가 우리 관료에게 “식민지 문제에서 일본이 뭘 어떻게 더 하라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우리 관료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문제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답했다. 악의에 찬 질문에 대해 우리 국민의 감정을 표현한 말이었지만 외신기자들은 두고두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편적인 여성 인권 문제였던 위안부 이슈와 달리, 식민지 문제는 국제사회의 공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이슈다. 세계인들에게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식민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알다시피 제국주의 열강을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식민지가 되었다. 그럼 세계 도처에서 역사문제가 벌어져야 할 텐데 한·일을 제외하고..

역사와 현실 2021.03.18

이순신의 죽음

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조정에서는 수군을 없애려고 했다. 신립 장군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자 이순신이 급히 글을 올려 수군이 중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진술했다. 대신들은 그 글을 읽고 생각을 바꾸었다. 윤휴의 (제23권)에 기록된 내용이다. 윤휴는 충무공 이순신의 삶을 깊이 연구해 ‘통제사 이충무공의 유사’라는 글을 지었다. 마침 그의 서모(庶母)가 이순신의 딸이라, 윤휴는 이순신을 곁에서 모신 여러 부하와 집사 및 하인을 만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유사’는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없는 내용도 많고 신빙성도 높다. 많은 사람이 이순신의 최후에 관해 갖가지 억측을 했다. 심지어 장군이 그때 전사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도 있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이순신의 측근은 무어라고 증언..

역사와 현실 2021.03.11

무엇을 위한 기념일인가

지난달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한 ‘이십공신회맹축(二十功臣會盟軸)’은 1680년 열린 회맹제를 기념하여 만든 문서다. 24m에 달하는 이 문서는 원형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으며, 관련 기록도 충실하여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만큼 국보로 지정하기에 손색이 없다. 회맹제는 공신과 그 자손들이 모여 공신 책훈을 기념하고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연례행사는 아니지만 국가 주관의 공식 행사인 만큼 오늘날의 국가기념일이나 다름없다. 회맹제의 절차는 이렇다. 날을 잡아 제단을 설치하고 국왕이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치면 국왕은 짐승의 피를 입술에 바르는 삽혈 의식을 거행한다. 두말하지 않겠다는 맹세다. 의식을 마치면 잔치를 열어 즐긴다. 참석자에게는 푸짐한 선물을 하사한다. 1680년 회맹제에는 ..

역사와 현실 2021.03.04

지혜로운 어려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조선은 개혁의 나라였다. 조선이 성공시킨 개혁들 중에 대동법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가장 하기 어려운 게 세금제도 개혁이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한 마을에 10가구가 산다고 치자. 대동법 이전에는 빈부와 무관하게 가구별로 1년에 100만원씩 냈다. 실제 현실은 그보다 더 안 좋았다. 수령과 가깝거나 힘 있는 가구는 세금을 안 내거나 100만원보다 적게 냈다. 대동법은 가구가 아닌 땅에 세금을 부과했다. 땅 없는 가구는 세금을 안 내고, 땅 많은 가구는 그 규모에 비례해서 내게 했다. 과세 대상 자체가 달라졌던 것이다. 인조반정(1623) 후 새 정권은 쿠데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이 필요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대동법이다. 이 당시 ..

역사와 현실 2021.02.25

세종의 ‘문명적 주체’ 만들기

광화문에는 두 개의 동상이 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화폐에도 이 두 분은 등장한다. 왜 이 두 명일까. 이순신 장군은 일본 침입으로 위기에 빠진 ‘민족’을 구했기 때문이고, 세종대왕은 ‘민족의 문자’ 한글을 발명한 분이기 때문일 게다. 두 경우 다 동상까지 세워진 이유는 ‘민족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차치하고 세종의 경우는 좀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이 있다. 세종은 한글창제만 한 게 아니다. 중국의 역법을 소화하여 이라는 천문 계산서를 편찬했고 자동 물시계, 해시계를 만들었으며 아악을 제정했다. 장영실·박연 등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주역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민족주의의 개가’일까. 독자들께는 좀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글창제는 한자를 더 정확하게 읽기 위한 ‘발음기호’를 만..

역사와 현실 2021.02.18

기생 두향과 퇴계 이황의 사랑, 진실은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함초롬한 초봄의 매화를 떠올리니 내 생각이 퇴계 이황을 향한다. 그처럼 매화시를 많이 읊은 선비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퇴계는 매화분에 물을 주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퇴계의 매화 사랑은 기생 두향(杜香) 때문이었다고 한다. 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도 두향을 부탁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두향은 충북 단양 사람인데, 절세가인과 대학자의 아름다운 인연이라니, 송도 명기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의 만남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작가 정비석이 에서 두향과 퇴계의 사랑을 말했고, 최인호도 에서 그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그것은 최근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란다. 누구 말이 옳을까. 퇴계의 청아한 매화시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사소하달 수도 있는..

역사와 현실 2021.02.15

[여적]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누구나 한번쯤은 ‘우리나라 국보 1호는 무엇이냐’는 문제를 접했을 것이다. 정답은 물론 ‘남대문’이다. 지금은 숭례문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남대문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부동의 ‘국보 1호’였다. 그래서 숭례문은 국보 중에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 은연중 여겨졌다. 20여년 전 국보 1호 논쟁이 뜨겁게 일었다. 학계 일부가 훈민정음이나 석굴암, 불국사, 다보탑, 팔만대장경과 같은 문화재를 국보 1호로 재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격론을 벌였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1호감으로 적당하다는 의견과 숭례문을 국보 1호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1996년에는 정부가 시민들을 상대로 국보 1호 재지정 여부를 물은 적도 있다. 전국의 남녀 1000명이 여론조사에 참여했는데,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역사 칼럼 2021.02.10

진상품 마케팅

진상품은 국왕에게 바치는 지방 특산물을 말한다. 진상품의 종류는 조선시대 재정 백서 및 지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전부 식재 아니면 약재다. 음식을 진상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향토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진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부산의 향토음식 동래파전은 삼월 삼짇날 동래부사가 진상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냉동탑차도 아이스박스도 없는 조선시대에 부산 동래구에서 서울 종로구까지 파전을 상하지 않게 배달하는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설령 상하지 않게 배달했다 한들, 그게 맛이 있겠는가. 재료만 가져와 대궐 앞에서 부쳐 따끈따끈하게 진상하는 방법도 있겠다만, 그걸 동래파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종로파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진상품이었다는 사실이 맛과 품질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와 현실 2021.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