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402

옛날신문으로 보는 부마항쟁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부마항쟁을 하루 앞두고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고 피해를 입으신 분들과 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드린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9월 말 인혁당 사건과 과거사 논란이 불거졌을 때 사과에 이어 두번째죠. 부마항쟁은 어떤 사건일까요?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말합니다. 시위대는 ‘유신체제 타도’를 외치며 파출소ㆍ방송국 등을 공격하고, 18일과 19일에는 마산과 창원까지 시위가 확산됐습니다. 부산지역에는 계엄령이 떨어지고 공수부대가 동원되어 시민과 학생에 대해 무차별 진압이 이루어졌죠. 시위는 단시일에 진압됐지만 10월 26일 민심 이반 현상을 놓고 언쟁을 벌이는 도중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당시 경호실장 차지..

한국불교 조계종의 위기, 극복 가능한가

지난달 발생한 승려 도박사건을 시작으로 교계의 70%를 차지하는 한국불교 조계종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폭로된 동영상에서 보여지는 행태는 존경받는 청정스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속인들과 한치도 다를 바가 없어 더욱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도박이 아닌 놀이문화라 하여 진정국면을 찾고자 애쓰지만 종단 고위직 승려의 음주.흡연. 유흥업소 출입. 성문제 까지 거론되면서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2년전에 출입했다’ ‘간적은 있지만 계율은 지켰다’ 라는 궁색한 해명이 오고간다. 또한 참회의 뜻으로 하는 108배라는 것은 사실상 재가불자들에게도 일상적인 수행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조계종 수행.재정 분리... 미흡한 쇄신안 종단은 사건발생 한달여 만에 쇄신안을 내놓..

같은해 치러진 역대 총선과 대선

올해는 총선과 대선 두 개의 큰 정치일정이 잡혀 있어 그 어느때 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이번 총선은 2008년 촛불집회부터 2010년 6.2지방선거까지 있었던 반MB 정권심판이 선거 최대이슈인데요. 그중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가장 큰 여야간 논쟁거리가 되고 있던 가운데 야당 후보의 막말파문으로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안갯속 이네요. 어느 정권에서나 했었다고 주장하는 민간인 사찰은 선거정국 뿐만아니라 향후 정치권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됩니다. 민간인 사찰 라운드업 판단은 보편적 상식을 가진 국민의 몫입니다. 제정신 차리고 투표해야 겠습니다. 우리의 헌정역사를 살펴보면 같은해에 총선과 대선이 모두 있었던 해가 다섯번 있습니다. 1960년 제5대총선과 제4대 대통령선거부터 71년 제8대총선..

다시찾은 설날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나이먹는 날이네요 -ㅠ. 다음주면 설날입니다. 한해동안 감사했던 분과 존경하는 분께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세배하러 가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설날은 우리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군요. 이런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설날도 간단치 않은 수난의 역사가 있습니다. 구정이라는 낙후된 이미지를 벗을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합니다. 구정(舊正)이라는 것은 양력설을 신정(新正)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되어 부르는 다른 명칭인데요. 새로운 설이 아닌 오래되어 폐지되어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정이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좀더 체계적으로 도입된 것은 일제에 의해서 입니다. 이것은 해방이후 정부.공무원 사이에서 장려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인 시간..

연말 연예계 시상식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중에 방송가의 갖가지 시상식이 연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올해는 한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개인이 아닌 팀이 대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낳았군요. 그 외에 가요대상. 연기대상.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10대가수상은 한해동안 가장 왕성한 활동과 인기를 누린 가수를 시청자가 선정하여 시상하는 행사였는데, 1966년 ‘10대가수 가요제’에서 현재 ‘MBC 가요대제전’ 으로 명칭이 바뀌어 ‘제야의 종’ 타종 실황과 연결하여 축제형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희준을 시작으로 이미자. 남진. 하춘화. 혜은희. 조용필,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로 이어지는군요. 각 방송사의 가요대상 행사는 선정방식에 대해 뒷말이 무성해지고 많은 문제점을 낳아 2005년 38년만에 ‘10대 가수가요제’가 사실..

역대서울시장 선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총 30명의 시장이 거쳐갔습니다. 이 자리가 ‘대선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비유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요. 민선 1기 조순 시장과 후임 고건시장이 대권주자로 꼽히기도 했고, 제4대 윤보선 대통령 그리고 현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의 자리를 디딤돌로 대통령에 선출됐기 때문이지요. 이승만 정권의 2인자로 부통령까지 오른 이기붕씨도 서울 시장을 했답니다. 10월 26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중 서울시장 선거는 유권자 수 837만명으로 단연 최대규모입니다. 이번 10.26 보궐선거로 서울시민들은 34대 31번째 시장을 뽑게 됩니다. ‘안철수 열풍'을 낳았고 전격적인 후보단일화로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복지가 선거의 화두로 떠올랐고 정당이 없는 시민의 후보가 범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되는 ..

1946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개교

정진호 기자 ㆍ북한에서 가장 크고 위상 높은 대학 김일성종합대학은 북한에서 가장 큰 대학이자 사실상 유일한 ‘종합대학’이다. 북한에는 3개의 종합대학이 있는데 평양의 김책공업대학은 이공계 중심이고 개성의 고려성균관대학은 경공업 전문대학이기 때문에, 인문·사회·이공계를 아우르는 실질적인 종합대학은 김일성대학뿐이다. 줄여서 ‘김대(金大)’라고도 부르지만 약칭이 ‘수령의 권위’를 손상시킨다고 해서 공식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다.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과 근대 과학이론을 체득한 민족간부의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하며 1946년 10월1일 문을 열었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후 새로운 사회 건설에 들어선 북한에서 인재 육성은 그 당시 가장 절박한 문제였다. 북한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민족 인텔리’가 아주 적었..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 결정

이윤주 기자 ㆍ“세울, 꼬레아”… 나고야에 압승 19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현지시간은 오후 3시45분, 한국에서는 오후 11시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서울 52, 나고야 27.” 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순간이었다. 나고야에 비해 열세로 평가받았던 서울이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뒀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꿈을 품은 것은 1979년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추대된 박종규씨였다. 1970년대 후반 한국 스포츠는 세계무대를 향해 막 도약을 시작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대한민국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과 중국을 위협하며 신..

1970년 월간지 ‘사상계’ 강제 폐간

김준기 기자 ㆍ독재정권에 맞선 비판적 지성지 1950~196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는 비판적 지성지였던 ‘사상계’는 1952년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 ‘사상’에서 출발했다. ‘사상’의 편집인으로 참여했던 장준하가 1953년 4월 이 잡지를 인수해 제호를 ‘사상계’로 바꾸고 월간 종합교양지를 만든 것이다. ‘사상계’는 민주주의와 자유언론, 남북통일, 노동 등의 분야에서 자유와 진보에 기반을 둔 권위 있는 글을 실었다. 특히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글로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들의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는 판매부수가 5만~8만부에 이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장준하가 1967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발행인이 부완혁으로 바뀌었다. 박정희 정권의 미움을 받아오던 ‘사상계’는 1970년 ..

1891년 ‘모비딕’ 작가 허먼 멜빌 사망

윤민용 기자 ㆍ‘체험을 문학으로’ 해양소설 새 경지 개척 영문학사에서 소설가 허먼 멜빌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그는 19세기 미국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인공으로, 모험소설 을 통해 미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하나 생전의 그는 무명작가에 가까웠다. 1819년 8월1일 미국 뉴욕시에서 멜빌은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8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복하게 자랐지만 13살에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으로 소년 멜빌은 학업을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온갖 잡일을 전전하던 그에게 바다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20살 때 잠시 영국 리버풀로 가는 여객선에 선원으로 승선했고, 1841년 당시 포경업의 중심이던 뉴베드포드에서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포경선 아쿠시네트호에 탔다. 그러나 포경선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