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 82

(44) 고시생

김희연 기자 지난해 고시생과 관련한 씁쓸한 뉴스가 있었다.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25년차 고시생이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유서나 타살의 흔적없이 지병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 이 남성은 서울의 상위권 대학교 법학과 졸업생으로 지난 25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시험에 계속 낙방한 그는 생의 마지막 무렵에는 마음을 바꿔 법무사 시험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발견 당시 그의 책상에는 손때 묻은 법학 관련 서적이 펼쳐져 있었다. 아마도 이 40대 중반 고시생의 안타까운 죽음 뒤로 고시에 인생을 올인하는 청춘들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고위공무원 채용제도인 고시제도가 60여년 만에 손질돼 점차 사라질 운명이다. 행정안전부는 행정고시 선발 비율을 2015년까지 50%..

(43) 만화가게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시작은 심부름이었다. 겨우 여섯살, 한글도 못 읽고 팔다리도 짧은 어린 여동생에게 오빠들은 “만화가게에 가서 이걸 빌려와”라며 만화 목록과 돈을 쥐어주었다. 오빠들의 조기교육(?) 덕분에 만화책 제목을 통해 더듬더듬 한글을 익혔고, 만화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착한 모습을 보이면 ‘오뎅(어묵꼬치)’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대인관계의 기본까지 체득했다. 우리나라 만화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이도영 화백의 만평이 1909년 6월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것을 한국 만화의 효시로 꼽는다. 하지만 만화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대여도 해주는 만화가게가 대중화한 것은 50년대 후반부터다. 변변한 놀거리도, 공공도서실도 드물던 60~70년대엔 동네 만화가게가..

(16) 부끄러운 역사 친일 ‘미완의 청산’

ㆍ친일파 죗값 치르긴커녕 기득권 대물림 ‘끝나지 않은 국치’ 박한용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올해는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 노예로 전락했던 경술국치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데에는 무엇보다 일제의 침략야욕에 일차 책임이 있지만 우리 내부에도 여기에 적극 가담한 친일매국세력이 있었다는 부끄러운 역사를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얼빠진 부류를 제외하고 누구나 친일파를 비난하지만 과연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청산되었는가. 이토 히로부미 통감(오른쪽)과 이완용 내각총리대신의 얼굴이 함께 나온 기념엽서. 친일파란 일본의 이익과 요구에 따라 적극 협력한 무리를 일컫는다. 일본의 이익과 요구는 시기마다 다르게 등장했고 그 때마다 친일파들은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며 ..

(42) TV 인기 드라마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KBS 드라마 가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시청률이 44.9%(TNmS 조사 기준)까지 치솟았다. 요즘에는 드라마가 이처럼 회차별 최고 시청률 40%, 평균 시청률 30%를 넘으면 ‘빅 히트작’으로 기록된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끈 MBC 이나 SBS 도 최고 시청률은 40%대였고, 평균 시청률 은 30%대였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저녁 7시30분이 되면 ‘전국의 부엌에 밥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할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던 는 TV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정도 시청률로는 히트작 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았다. 역대 회차별 시청률 톱5로 꼽히는 (KBS) (MBC) (MBC) (SBS) (KBS)는 ..

(15) ‘역사교과서 왜곡’ 왜 끊임없이 이어지나

ㆍ“패권 망상 사로잡힌 日우익, 미래전략으로 교과서 도발” 이신철 |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운영위원장 2001년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서 만든 역사교과서 한 권이 한·일 양국관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면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역사상 가장 긴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각급 학교의 교과서 검정이 발표될 때마다 양국관계는 위협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과서 문제는 악화돼 갔다. 일본 우익의 ‘위험한 교과서’는 더욱 많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되었다. 2001년 의 채택률은 0.039%에 불과했다. 그것도 농아학교처럼 비교적 쉽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공립 특수학교에서 주로 ..

(41) 아르바이트

김윤숙 기자 yskim@kyunghyang.com 예나 지금이나 ‘아르바이트’ 하면 대학생이 떠오른다. 등록금을 대기 위해서든, 용돈을 벌기 위해서든, 최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 대학생들에게 ‘알바’는 필수과목이나 마찬가지다. 기록상으로 학생들이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배재학당에 ‘자조부’라는 시설이 생기면서다. 여기서 학생들은 붓과 구두 등을 만들어 팔았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1930년대 이전까지는 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낮에는 농사나 상공업에 종사하고 밤에 야학을 하던 학생들은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아르바이트로 보긴 힘들었다. 1970년대 대학생이 아이들을 모아 그룹과외를 하는 모습. | 경향신문..

(14)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기나긴 보상투쟁

ㆍ“피폭자는 한·일 어디에 있건 피폭자” 30년 소송 끝 승리 곽귀훈 | 전 원폭피해자협회 회장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 10일 전인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과 3일 뒤인 8월9일 오전 11시2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는 사이판 근처의 테니안 섬을 출발한 미군 장거리 폭격기 B29의 원자폭탄 공격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풍비박산해버리고 말았다. 원자폭탄은 인류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괴력을 발휘했다. 1초의 몇 만분의 1인 짧은 순간에 섭씨 4000도가 넘는 열선과 각종 방사선, 경이적인 풍압으로 사람과 모든 시설물은 먼지가 되어 암흑세계를 연출했다. 그 뒤 두 도시에선 흰 버섯구름만 피어오르는 광경이 멀리서 바라다보였을 뿐이다. 원자폭탄의 폭발 이후 일본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였던 히..

(40) 여성의 이름

손동우 기자 sdw@kyunghyang.com ‘영자’와 ‘경아’의 차이는 무엇일까. 1970년대 중반 개봉된 와 은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의 원조 격으로서 각각 조선작과 최인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의 주인공인 영자는 식모, 봉제공장 공원, 시내버스 안내양을 거쳐 ‘마지막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창녀가 된다. 에서 경아는 부유한 중년남자의 후처 등을 거쳐 호스티스로 전락한 뒤 길거리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1970년대 영화 속 여주인공 이름 ‘경아’는 세련된 감성을 반영해 당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영자와 경아는 비슷한 인생경로를 밟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바로 영자와 경아라는 이름이다. 영자는 일제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자(子)’로 끝나는 구시대적 이..

(13)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70년 망향의 한’

ㆍ‘동토의 땅’서 얼어죽고 굶어죽고… 해방뒤엔 ‘잊혀진 존재’로 배덕호 | 지구촌동포연대 대표 이장호 감독, 김지미 주연의 영화 는 일제 식민시기 조선인 ‘명자’가 ‘아끼꼬’ ‘쏘냐’로 불리며 세 나라 국적을 가진 채 기구하게 살다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머나먼 남사할린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는 게 줄거리다. 영화 주인공처럼 1905년부터 45년까지 당시 일본 땅이었던 남사할린(당시 일본명 가라후토) 전역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망향의 한을 품고 구천을 떠도는 수만명의 조선인 혼령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할린 돌린스크시 탄광마을 브이코프촌 조선학교 졸업사진. 해방 이후 남사할린 전역에서 운영되던 조선학교는 1963년 소련 행정당국의 폐쇄 결정으로 문을 닫게 되고, 이로부터 25년간 민족의 말과..

(39) 지하철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로 시작하는 그룹 ‘동물원’의 노래가 발표된 것은 1990년이다. 노래 도입부에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올 때의 기계음과 안내방송을 집어넣어 당시로서는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노랫말 속에서 지하철은 세련된 도시의 감수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지만 현실 속 지하철은 아비규환의 전장이었다. 같은 해 2월 구로역, 신도림역 등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 20곳에는 신종 아르바이트가 등장했다. 만원 객차 안으로 승객을 밀어넣는 ‘푸시맨’이었다. 당시 서울이 인구 1000만명의 도시로 거듭나면서 아침마다 반복되는 출근전쟁은 신문 사회면의 주요 기사로 다뤄질 정도였다. 콩나물 시루, 지옥철 등 지하철의 별칭도 여러가지였다. 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