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세종스타일’과 광화문 한글 현판

경향신문 2020. 5. 21. 10:45

자칭 ‘시민모임’이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자 현판은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 광장을 상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해례본 서체로 제작한 샘플도 선보였다. 반드시 한글 현판을 걸도록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겠단다.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광장 좋다. 현판만 바꾼다고 되겠는가. 이참에 광화문 앞 세종대왕 동상도 바꾸자. 근엄하게 옥좌에 앉은 모습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월드스타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모습은 어떨까. ‘세종스타일’ 동상은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K팝의 위상과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차라리 옥좌에 앉은 싸이 동상이 낫겠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기왕이면 탈부착식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 싸이를 능가하는 한류스타가 나오면 바꿔 앉힐 수 있으니까.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용도 절약되니 일석이조다. 다만 현재로서는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가 유력한데, 멤버가 많아서 전부 옥좌에 앉힐 수는 없으니 가위바위보로 정해야겠다. 나머지 멤버들의 동상은 옥좌에 기대 서거나 앞에 드러누운 모습으로 만들면 되겠다.


칼을 든 이순신 동상도 바꾸자. 촛불 시위가 벌어진 평화로운 시민의 광장에 칼이 웬 말인가. 칼 대신 촛불을 들면 어떨까. 자유의 여신상에 버금가는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다. 아예 발상을 바꾸어 포기 김치를 들고 있는 것도 괜찮겠다. 김치를 들고 있는 이순신, 일명 ‘김순신’ 동상은 한식 세계화에 기여할 것이며, 광화문 인근의 한식집은 김치를 맛보려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찰 것이다. 어떤가?


이건 아니다. 세종대왕도 좋고 강남스타일도 좋지만 ‘세종스타일’ 동상은 민망하다. 김치도 좋고 이순신 장군도 좋지만 ‘김순신’ 동상은 끔찍하다. 마찬가지로 광화문도 좋고 한글도 좋지만 둘의 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자 현판이 희미한 사진을 복원한 것이니 원형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해례본 서체도 원형과 거리가 멀다. 해례본은 원본 글씨를 뒤집어 나무에 새기고, 잉크를 발라 종이에 찍어낸 것이다. 즉 복사본의 복사본이다. 사진으로 복원한 한자 현판이 외려 원형에 가깝다.


한글 서체는 해례본 이후 수백년간 발전을 거듭하며 유려해지고 읽기 편해졌다. 그 발전을 싹 무시하고 투박한 초창기 서체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한글의 첫 모습’이기 때문이란다. 해례본 서체가 한글의 원형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원형을 중시하면서 현판의 원형 복원을 반대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의 글씨가 별로라는 견해도 있지만, 글씨가 좋아서 달자는 게 아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명필로 알려진 서예가라도 평가는 갈리는 법이다. 한석봉의 글씨는 ‘상놈의 글씨(常漢之筆)’라는 혹평을 받았고, 표암 강세황의 글씨는 ‘요망한 글씨(妖筆)’라는 비난을 들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도 평가가 엇갈린다. 잦은 진위 논란이 그 증거다. 요컨대 글씨가 아름답다느니 기운이 넘친다느니 하는 것은 전부 개인 취향이다. 개인 취향을 남에게 강요하면 곤란하다.


아름다운 예술품도 공간에 어울리지 않으면 흉물에 불과하다. 지자체에서 거액을 들여 경쟁적으로 설치한 조형물이 흉물 취급을 받는 이유가 이것이다. 한글 현판 역시 그 자체로는 아름다운 예술품일지 몰라도 광화문에 걸리는 순간 흉물이 된다. 한동안 광화문에 걸려 있던 박정희의 한글 현판처럼 말이다. 그가 서툰 솜씨에도 기어이 제 글씨를 걸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광화문의 상징성을 탐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광화문 현판은 고증에 충실하고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 시대정신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누군가의 존재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자 쓰면 중국 속국’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벗어날 때가 됐는지, 여론은 한글 현판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문화재청도 이미 결정된 일이라 바꿀 뜻 없다 하니, 이 글은 괜한 긁어부스럼 만들기일지 모른다. 문화재 복원은 역사 복원 작업이다. 아무리 정당한 당위라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 연구원 연구교수 confuc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