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타는 목마름’으로만 되던 시대는 갔다

경향신문 2021. 12. 23. 11:51
얼마 전 중국 국무원이 ‘중국의 민주’라는 백서를 발간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0개 국가를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여는 데 대한 대응이었다. 한때 중국은 선거, 다당제, 인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인정하면서 서방의 민주주의 공세에 수세적인 자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런데 예상대로 이번에는 ‘민주주의 모델은 하나가 아니다’라며 서구의 민주주의를 맹렬히 비난하고 ‘중국식 민주’를 제창했다. 백서는 국민이 투표할 때만 잠깐 대접받고 나머지 기간엔 냉대받는 현실, 선거로 구성된 의회라는 것이 국민의 대표라기보다는 자본가와 사회 이익단체의 대표라는 사실,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정치체제지만 그 결과는 포퓰리즘과 불평등, 방역 실패 등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상을 지적한다. 반면 중국공산당의 일당 통치는 자본가나 이익단체 등 중간계급의 준동을 배제하고, 국가가 국민의 생존과 삶의 질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말만 ‘민주주의’인 나라보다 훨씬 ‘위민적(爲民的)’ ‘민본적(民本的)’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어 솔깃하다.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절규한 이래, 현대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는 정치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신앙이 되어 왔다. 신앙인 만큼 믿음은 절절했지만, 그에 대한 심도 깊은 인식은 갖출 새가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신봉하는 대의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그것이 채택하고 있는 다당제, 1인1표제, 다수결 등의 제도는 별 문제가 없는지 등등, 우리가 당연한 전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숙고는 부족했다(2018년 3월15일자 본 칼럼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참조).

사실 중국공산당의 저런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 서구 민주주의가 동아시아에 소개될 때 많은 지식인들은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일본 근대사상의 태두라 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조차도 다수결이라는 제도에 회의감을 표할 정도였다. 그 선봉은 중국의 혁명가 장병린(章炳麟)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의회와 헌정 도입은 봉건제가 있던 유럽, 혹은 일본에서나 가능한 것이라며 “대의정체는 봉건제가 변한 것”이고, “헌정은 단지 봉건세력과 귀족들의 자기변신”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귀족으로만 구성되는 상원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의회가 귀족과 기득권층이 일반 서민을 착취하는 합법적 기구가 될 거라고 경고했다.(박훈, ‘봉건사회’-‘군현사회’와 동아시아 ‘근대’시론).

한편 중국은 이런 나라들과 달리 이미 2000년 전 진한 제국 시기에 봉건제를 일소하여, 황제와 백성 사이에 중간계급(귀족이나 중간단체)이 없는 ‘일군만민(一君萬民)’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의회를 만들어 없던 귀족과 서민의 구분을 새삼 만들기보다는 왕자(王者) 한 사람이 권력을 잡는 게 낫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중국에는 대의정치보다는 선한 전제정치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마치 그 후 중국의 정치사를, 나아가 오늘날의 시진핑 체제를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

반면 중국의 의회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논자도 있었다. 웅범여(熊範輿)는 봉건제 사회에서는 신분제가 있어 정치는 귀족만이 담당하고 서민은 정치에 간여할 수 없었던 반면, 이미 봉건제와 신분제(학계에서는 대체로 송대 이후 중국에서는 신분제가 실질적 의미를 잃게 되었다고 본다)가 사라진 중국에서는 정치 담당 층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능력과 상황에 따라서는 평민층도 정치에 참여해 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의회가 설치되면 이런 중국인들의 정치적 천성이 백분 발휘되어 영국이나 일본보다도 나은 의회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백서 ‘중국의 민주’는 웅범여가 아니라 장병린의 손을 들어줬다. 아마도 향후 10년간 한국 민주주의는 ‘중국의 민주’가 내뿜는 거센 폭풍과 맞닥뜨릴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는 위협으로, 어떤 이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성적인 준비가 시급한 때다. ‘타는 목마름으로’만으로 되던 시대는 갔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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