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경향신문 2021. 10. 14. 09:52

수나라 문제 양견은 태어날 적부터 손에 ‘왕’자가 새겨져 있었다. 손금이 ‘왕’자 모양이었나 보다. 그는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믿었다. 황후의 아버지로서 대장군의 자리에 오르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아홉 살짜리 황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양견은 아들 양광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다. 양광은 희대의 폭군 수양제다. 수양제의 죽음과 함께 수나라는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요나라 야율을신의 어머니는 양을 잡아 뿔을 뽑고 꼬리를 자르는 꿈을 꾸었다. 점쟁이가 말했다. “양(羊)의 뿔과 꼬리를 없애면 왕(王)이니 당신의 아들은 왕이 될 것이다.” 양치기 소년 야율을신은 황제의 신임을 얻어 위왕에 책봉되었다. 그 역시 끝이 좋지 않았다. 권력을 남용하다 황제의 의심을 사서 처형당했다. 가족도 몰살을 피하지 못했다.

 

궁예는 젊은 시절 강원 영월 세달사에서 승려 노릇을 했다. 하루는 까마귀가 떨어뜨린 물건을 주웠더니 ‘왕’자가 새겨져 있었다. 궁예는 승복을 벗어던지고 도적 떼에 합류했다. 마침내 후고구려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왕 노릇도 지겨웠는지 신이 되고자 했다. 미륵불을 자칭하며 관심법으로 신하들을 마구 죽이다가 왕위에서 쫓겨났다. 도망치던 와중에 보리 이삭을 주워먹다 백성에게 살해당했다.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는 자의 비참한 최후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무학대사가 풀이했다. “사람(|)이 서까래 셋(三)을 짊어지면 왕(王)이니, 당신은 왕이 될 것이다.” 예언은 적중했다. 이성계는 조선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인생이었다. 아들들이 왕위를 다투며 서로 죽이는 참극을 보아야 했고, 만년에는 권력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밀려났다.

 

1589년, 정여립이 반란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하자 세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정여립의 아들 정옥남의 등에 ‘왕’자 무늬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정여립은 아들이 왕이 될 운명이라 믿고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1901년, 지리산 도적 김태웅은 손바닥에 ‘왕’자 문신을 새겼다. 그는 자기가 <정감록>에 등장하는 메시아 정도령이며, 장차 왕위에 오를 것이라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다가 붙잡혀 처형당했다. 몸 어딘가에 일부러 ‘왕’자를 써넣은 사람은 이밖에도 많은데, 그들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상의 이야기는 전부 야담에 가깝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왕이 되기보다 왕 노릇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정재)은 관상가 내경(송강호)에게 묻는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남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한다. “나는 왕이 되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왕이 될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설사 그런 운명을 타고났다 한들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대선 후보 손바닥의 ‘왕’자에서 시작된 무속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지자가 써줬다니 믿어야지 별수 있겠는가. 역술인과 침구사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니 그것도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중요한 건 대선을 앞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처럼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다. 한마디로 후보의 준비 부족 탓이다. 당선 이후의 청사진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뿐이다. 이 점은 다른 후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당선만 되면 뭐든 다할 것처럼 말하지만 미덥지 않다. 공약도 유행을 타서 그런지 엇비슷하다. 차별화된 정책과 비전이 없으니 경선이 네거티브 공방과 신상털기 논쟁으로 흘러가는 것도 당연하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