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격식과 실용

경향신문 2020. 8. 13. 15:21

1884년 윤5월, 고종은 복식 제도 개혁안을 발표한다. ‘갑신의제개혁’이라고 한다. 복식의 간소화와 단일화를 지향하는 이 개혁안은 서구와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전통 복식의 불편에 눈을 뜬 결과였다. 급진개화파는 양복 도입을 바랐지만 당시로선 시기상조였다. 복식 개혁을 영향권 탈피 시도로 의심하는 청나라의 눈치도 봐야 했다. 결국 개혁안은 전통 복식을 약간 수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공식 행사복인 ‘조복’, 제사 때 입는 ‘제복’, 상중에 입는 ‘상복’은 그대로 두고, 평상복만 바꾸었다. 활동에 편리하게 소매를 좁힌 ‘착수의’를 평상복으로 삼고, 그 밖의 ‘도포’니 ‘직령’이니, ‘창의’니 ‘중의’니 하는 복잡한 옷들은 전부 없애기로 했다. 관료의 복장은 양복을 본떠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유림은 강력 반발했다. 선왕이 제정한 복식을 버리고 오랑캐의 복식을 따른다고 비난했다. 복식의 단일화로 신분의 귀천이 불분명해졌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반대 상소가 빗발쳤지만 고종은 강경했다. 개혁안을 거부하는 자들을 단속했다. 유림은 이를 피해 시골로 은둔했다.

 

이해 10월,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정변이 실패하자 급진적 개혁에 부담을 느낀 고종은 개혁안을 철회했다. 그럼에도 갑신의제개혁은 최초의 복제 개혁 시도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 영향은 오늘날의 한복에도 남아 있다. 고종의 개혁 시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한복은 훨씬 불편했을 것이다. 격식과 실용의 대결은 늘 실용의 승리로 돌아가는 법이다.

 

실용적인 옷의 대명사 청바지도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1977년 6월4일자 경향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일본 오사카대학의 미국인 강사가 청바지 입은 여학생을 강의실에서 쫓아냈다. 강의실은 신성한 곳이니 청바지 차림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학생들이 집단 항의했지만 강사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일본 대학가에선 여학생의 청바지 차림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 대학가도 마찬가지였다. 정년을 앞둔 노교수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강의실에서 쫓겨난 여학생이 더러 있었다고 한다. 놀러갈 때나 입는 옷으로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몸매를 드러낸다는 점이 문제였다. 1970년대 유행한 통 넓은 청바지는 ‘야한 옷’이었던 것이다. 당시 교수들이 요즘 유행하는 스키니 청바지를 본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청바지를 문제 삼는 교수는 없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온 여학생이 핀잔 듣는 광경을 본 적은 있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 그랬다간 강의실이 텅 빌 것이다. 나가란다고 순순히 나갈 여학생도 없다. 만약 그런 교수가 있다면 사직을 각오해야 한다.

 

요즘은 레깅스 차림을 두고 말이 많다. 강의실에 입고 오는 학생도 있는데, 어떤 옷보다 편하다고 한다. 몇 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청바지처럼 평범한 일상복으로 자리 잡을 게 분명하다. 그때는 국회의원이 ‘빽바지’를 입었다가 본회의장에서 쫓겨난 사건도, 분홍 원피스를 입었다고 벌어진 논란도, 한때의 우스꽝스러운 촌극으로 기억될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 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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