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고리대와 가계부채

경향신문 2021. 1. 28. 09:48

매년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함께 ‘가계금융·복지조사’라는 보고서를 낸다. 이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부채는 8256만원이다. 자영업자는 사업자금으로, 무주택자들은 전세가격 상승으로, 집을 구입한 사람들은 주택가격 상승으로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심지어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학자금 대출 부담을 안고 있다. 위 액수에는 작년 코로나19로 악화된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는 이보다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빚은 역사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다니거나 소규모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린다. 옛날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온 가족과 함께 일하며 소규모 경작지에서 생계 자료를 얻었다. 자영업이나 사기업이 경기 영향을 예민하게 받듯이 농업은 날씨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 댐이나 양수기가 있던 때가 아니다. 대부분의 영세한 소농들은 한 해 흉작도 버틸 비축이 없었다. 이것이 고리대가 작동하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시대 법정이자율은 미(米) 1가마(15말)에 5말로 연리 33%이다. 국가에서는 ‘일본일리(一本一利)’ ‘자모정식(子母停息)’을 원칙으로 정했지만 현실에서는 ‘이중생리(利中生利)’와 고리대가 일반적이었다. ‘일본일리’는 이자(利)가 원금(本)을 넘지 않는 것이다. 100만원을 빌려주면 원리금을 합해서 200만원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다. <고려사>는 ‘자모정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가마를 빌려 준 자는 가을에 1가마 5말을 받고, 2년이 되면 1가마 10말을 받고, 3년이 되면 2가마를 받으며, 4년이 되면 이자를 정지했다가 5년이 되면 3가마를 받는다. 6년 뒤에는 이자를 정지한다.” ‘이중생리’는 이자가 다시 이자를 낳는다는 뜻으로 지금의 복리(複利) 개념이다. 국가가 이렇게 규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빚을 갚을 수 없는 농민은 결국 자기 땅을 채권자에게 넘겼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채권자에게 땅을 넘겨도 그 땅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그 땅을 떠날 수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났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떠난 것이다. 땅은 물론이고 태어나서 맺은 모든 인간관계와 익숙한 자연환경도 두고 떠난 것이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마지막 조건들이다. 남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이제 남의 땅이 된 이전 자기 땅에서 계속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양민(良民), 즉 평민이 노비가 되었다. 경제적 예속은 신분적 예속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사료에 수없이 나오는 압량위천(壓良爲賤)이다. 빚 때문에 양민이 노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국가에 세금 내고 군인이 될 국민이 없어지게 된다.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 채권자들 손안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흉년에 소농민이 빚을 지고, 그것을 못 갚아 땅을 잃고 노비가 되는 것은 자동적인 과정이었다. 이것을 막으려고 조선 시대에는 환곡을 설치했다.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비상기금으로 마련한 것이 환곡이다. 환곡의 정반대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민간에서 운영된 고리대이다. 환곡의 궁극적 목표는 백성의 대부분인 소농민들이 자립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에 고리대는 그 반대 방향으로의 지름길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며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가계부채 수준은 대단히 높고 국가채무는 대단히 낮은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가 국가채무만 낮게 유지한다고 정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실체는 국민이지 정부가 아니다. 흥미롭게도 전통시대에 세계에서 환곡 같은 제도를 운영했던 유일한 나라가 조선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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