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렌즈

올해 인생 처음으로 장을 담갔다. 모든 건 우연히 본 홈쇼핑에서 비롯하였다. 메주, 소금, 건고추, 대추, 숯에 물까지 보내줄 테니 그냥 그대로 담갔다가 몇 달 후 가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소금도 다 계량해서 보내니 계란을 띄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 염도 그대로 딱 하면 된다고 했다. 안 그래도 풍미 좋은 집된장을 몹시 그리워하던 터, 저렇게 쉽다면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어 과감히 도전에 나섰다. 오산이었다.

메주를 넣은 소금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피었다. 그 징그러움이라니! 놀라서 여기저기 문의하니 걷어내면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그 순간 정말 궁금해졌다. 이렇게 곰팡이가 피는 걸 보면서도 이걸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첫 인간은 누군가? 언제쯤 장을 가르나 궁금하여 안내문을 보니 60~90일이라고 나왔다. 2차 충격! 60일과 90일은 1개월이나 차이가 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건지 설명이 없다. 고민 끝에 대충 75일 정도에 장을 갈랐다.

장을 가르려고 친정에서 오래된 장독을 얻어 왔다. 친정어머니가 장독을 주시면서 소독 걱정을 하실 땐 한 귀로 흘려듣고선, 집에 와서야 이리저리 찾아봤다. 그랬더니 숯을 피워 연기로 소독하란 것이다. 3차 충격! 아파트 어디에서 숯을 피운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사람 크기만 한 장독은 숯 같은 게 아니면 어떻게 소독을 했겠나 싶었다. 소독법을 찾다가 보관을 잘못하면 구더기가 생긴다는 얘기를 보았다. 구더기라니! 충격의 연속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라는 속담이 이렇게 대범한 말인 줄 미처 몰랐다. 구더기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워 바로 포기하고 싶거늘.

어쨌거나 이 몇 차례의 충격을 딛고 장을 갈랐다. 마지막으로 이쁘게 장독에 담고, 언제쯤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안내문을 다시 보았다. 글쎄, 이 상태로 숙성하여 1년 반에서 2년 후에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대충격이었다!

충격을 가라앉히고 나자, 장 담그기가 정말 대단한 프로젝트라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콩 농사에 메주 띄우기부터 계산하면 자그마치 3년짜리 프로젝트인 셈이다. 웬만한 석사과정보다 길지 않은가? 장 한번 망치는 건 논문 쓰려고 준비한 3년짜리 실험이 망한 것과 똑같다.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처음 장 담그기를 한 사람이. 누구냐, 넌!

장이 숙성될 동안 기울여야 하는 정성과 보살핌을 생각하니, 장독에 버선을 붙이고 금줄을 치고 어쩌고 하는 수많은 미신과 속설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나도 모르게 장독을 쓰다듬으며, 절로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발효의 신에게 빌었으니까 말이다.

장 하나 담그며 떤 이 모든 호들갑은 사실 나의 무신경함과 무계획에서 비롯했다. 예전 어머니가 하실 땐 관심도 없었고 그냥 장독에 담아 놓으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던 데다, 사전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렇게 대책 없이 갑자기 ‘과거’를 딱 직면하니,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과거’는 지금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현재’와 다르다는 점을.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잘 잊어버린다는 점을.

우리는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과거는 분명하다고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과거에 대해서 좀 쉽게 판단하고, 어떤 때는 어리석었다는 둥의 오만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가 그렇듯이 과거도 불투명하다. 이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현재’라는 너무 두꺼운 렌즈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여러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2022년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명심해야 한다. 이 렌즈를 벗어버릴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적어도 어떤 렌즈를 끼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과거에 대해 갖춰야 하는 겸허함이다.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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