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국민사은대잔치

경향신문 2021. 1. 7. 09:43

‘고객사은대잔치’라는 행사가 있다. 기업이 고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뜻에서 준비하는 이벤트다. 대개는 경품 행사다. 1등 경품은 어마어마하다. 승용차 정도는 보통이다. 한때는 억대의 현금이나 귀금속을 주기도 했다.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난 탓에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가의 경품을 주는 행사가 드물지 않다. 그런데 경품은 운 좋은 사람의 차지다. 정작 충성 고객은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한다. 정말 고객을 감사하게 여긴다면 모든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제품 가격을 낮추든지 양을 늘리든지 방법은 여러 가지다. 굳이 극소수만 혜택을 보는 경품 행사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분은 ‘사은’이지만 목적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홍보 효과다. 고가의 경품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기업에는 제품을 널리 알리고 새 고객을 확보할 기회다. 모든 고객에게 주는 저렴한 사은품보다 단 한 명의 고객에게 주는 고가의 경품이 홍보 효과가 높다. 당첨이 벼락 맞기보다 어렵다는 복권이 잘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는 비용 문제다. 모든 고객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거두는 방법을 기업이 마다할 리 없다. 결국 고객사은대잔치의 실체는 광고이며 판촉이다. 한마디로 상술이다.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마케팅은 기업의 필수 활동이다. 수익의 일부를 고객에게 돌려주겠다는데 나쁠 것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당첨된다고 내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정 기분이 나쁘거든 그 제품을 안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업 아닌 정부가 필수재에 속하는 주택을 걸고 경품 행사를 벌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정부의 주거 안정 대책은 별로 효과가 없다. 신규 분양 아파트의 당첨 확률은 경품 수준이며, 그나마 현금 부자에게 유리하다. 대다수 무주택자는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 임대로 눈을 돌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공임대주택은 여전히 부족하고, 조건이 괜찮다 싶으면 분양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하다. 대통령이 직접 공공임대주택을 둘러보고 앞으로는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한 주거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다. 내 지역구에 임대주택은 안 된다는 의원들의 행태를 보건대 늘리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분양이건 임대건 희박한 당첨 확률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정부의 주택 정책은 기업의 경품 행사와 다를 게 없다. 소수의 당첨자만이 혜택을 얻는 ‘국민사은대잔치’다. 쾌적한 주거와 막대한 시세차익이라는 경품에 눈이 먼 사람들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불법 거래와 위장전입, 허위 결혼과 가짜 임신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가 ‘국민사은대잔치’를 벌이는 이유 역시 홍보와 비용이다. 혜택을 보는 사람은 소수지만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명분은 챙길 수 있다. 주택 정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보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그에 비하면 공공임대주택이나 신규 분양을 ‘찔끔’ 늘리는 정도는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 재상 자산은 맨발로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사람을 보면 자기 수레에 태워 건네주곤 했다. 맹자는 말했다. “은혜로우나 정치를 할 줄 모른다.” 한두 사람을 수레에 태워 강을 건네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다리를 놓는 것이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날 이전까지 도심 주택 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부랴부랴 마련한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리 없다. 이번에도 ‘국민사은대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숙한 대책으로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정부는 정치를 할 줄 모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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