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국민 지원금

‘국민 지원금’ 지급 기준을 놓고 정부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듯하다. 크게 보면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쪽과 일부에게만 지급하자는 쪽으로 나뉜다. 조선시대에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1645년 조선은 파열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핵심 재정관료 이시방은 자기 일기에 이렇게 썼다.

“충청도와 전라도에 기근이 심하게 들었다. 나라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미곡 운반의 일을 겨우 넘기고 나니, 뜻밖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 중국 사신이 잇달아 나온다. 여기에 드는 온갖 비용이 모두 세금 바깥에서 나온다. 공(公)과 사(私)의 재물이 모두 다하고 백성들 목숨이 거의 끊어지려 한다.”

 

조선시대 정부 재정에서 충청도와 전라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컸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란 미곡 10만석을 청나라에 보낸 일이다. 병자호란(1637) 패배에 따른 전쟁 배상금이었다. 호조 1년 재정에 맞먹는 양이었다. “뜻밖에 불행한 일”은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가리킨다. “세금 바깥에서 나온다”는 말은 백성들이 세금 이외에 추가로 부담한다는 뜻이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조선에 잇달아 사신을 파견했다. 그때마다 엄청난 접대 비용이 들었고, 그것은 모두 백성들에게서 추가로 거두어야 했다. 백성들 목숨이 끊어지려 한다는 표현은 당시 이시방만 했던 말이 아니다.

 

1645년에 이어 1647년에 다시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한강에 발 벗고 건너는 곳이 있다는 정도였다. 조정은 백성들 세금을 줄여주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구체적 방법을 놓고 의견이 나뉘었다.

 

당시 조정의 핵심 재정관료는 이시방, 이후원, 원두표 세 사람이었다. 원두표가 호조판서였지만 이시방이 그를 이어 호조판서를 지냈고, 두 사람이 갈등할 때 잠시 이후원이 호조판서를 지냈다.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원두표와 이후원이 같은 입장이고 이시방이 의견을 달리했다. 앞쪽 두 사람은 국가 재정을 더 중시하는 쪽이었고, 후자는 안민(安民)과 민생에 더 초점을 두었다. 이시방은 수년 뒤 대동법이 성립될 때 실무 총책임자인 호조판서였다. 이즈음 조익이 세 사람에게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조익은 대동법을 이론적으로 설계한 사람이다. 예조판서를 지내다 병자호란 직후 문책을 당해 물러나 있었다. 친했던 후배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에서 그는 비록 국가 재정이 어렵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는 국민을 구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데, 국민을 죽도록 놔둔다면 이것이 어찌 윗사람 된 도리일 수 있겠냐고도 물었다. 그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곡식은 백성이 생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즈음 사간원 헌납 조복양이 상소를 올렸다.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주장하는 상소였다. 이 상소의 결과로 개혁기구인 재생청이 만들어졌다. 조복양의 아버지가 바로 조익이다. 재생청 실무 책임자로는 이시방이 임명되었다. 이 재생청의 개혁 활동이 5~6년 뒤 충청도 대동법 성립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재생청 설립이 대동법 추진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코로나19 상황 이후 전 세계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경험 중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어떤 시스템이나 물건에 대해 평상시보다 운용능력이나 부하의 기준을 훨씬 높여 그 잠재적 취약성을 측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좋아만 할 일은 아니다. 이 상황이 국가 단위로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국가 내부에서도 진행되는 상황이다.

 

미래는 이미 현재 안에 있게 마련이다. 1645년에 조선은 오늘날의 ‘국민 지원금’에 해당하는 정책을 펴면서 동시에 거대한 국가 재정개혁의 첫발을 떼었다. ‘국민 지원금’에 대한 현재의 입장이 다가올 한국의 재정 및 복지 개혁에 대한 입장과 다를 리는 없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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