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기생 두향과 퇴계 이황의 사랑, 진실은

경향신문 2021. 2. 15. 17:05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함초롬한 초봄의 매화를 떠올리니 내 생각이 퇴계 이황을 향한다. 그처럼 매화시를 많이 읊은 선비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퇴계는 매화분에 물을 주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퇴계의 매화 사랑은 기생 두향(杜香) 때문이었다고 한다. 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도 두향을 부탁한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두향은 충북 단양 사람인데, 절세가인과 대학자의 아름다운 인연이라니, 송도 명기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의 만남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작가 정비석이 <명기열전>에서 두향과 퇴계의 사랑을 말했고, 최인호도 <유림>에서 그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그것은 최근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란다.

 

누구 말이 옳을까. 퇴계의 청아한 매화시를 좋아하는 나인지라, 사소하달 수도 있는 이 논쟁의 진실이 궁금했다. 문헌을 검토해보자 세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첫째, 18~19세기 서울 문인이 두향에 관해 최초로 기록을 남겼다. 관암 홍경모는 ‘배를 타고 구담을 내려가다(舟下龜潭記)’는 글에서, 두향의 무덤을 언급했다. 그는 노래와 춤을 잘하고 자연을 벗 삼았다고 했다. 또 두향의 무덤이 언덕에 있다며 “내가 노닐던 곳이니 이곳에 나를 묻어주오”라고 부탁했다는 사연을 적었다.

 

둘째, 퇴계가 두향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고 명시한 글도 있다. 영의정까지 지낸 심암 조두순의 문집에 ‘두향의 무덤(杜香墓)’이라는 시가 있다. 그 첫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퇴계의 시가 없었더라면 뉘라서 두향 낭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을까(不有退翁詩 誰識杜娘名)’라고 했다. 조두순의 시를 음미해 보면 두향은 절개 높은 기생이었다. 내가 살핀 퇴계의 문집에는 두향이 나오지 않지만, 조두순은 그를 언급한 퇴계의 시를 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두향은 16세기 이전의 인물이라고 봐야겠다.

 

셋째, 퇴계와 두향의 사랑을 언급한 이는 19~20세기의 문장가 운양 김윤식이었다. ‘장호의 배 안에서(長湖舟中)’라는 시에 붙인 주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향은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계실 때 방기(房妓)였다. 이 호수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杜香 退溪先生宰丹陽時 房妓也 投死于此水云).’ 방기라면 사또를 보살피는 기생이니 현지처이다. 김윤식은 두향이 퇴계와 그런 각별한 사이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늦어도 16세기부터 지방에는 방기가 있었다. 월사 이정귀도 방기와의 해후를 노래했다. 병자호란 직후에는 청나라 사신이 방기를 요구하자 죽음으로 항거한 의로운 기생도 있었다. 영조 4년, 이인좌가 난리를 일으켰을 때 남편을 따라 죽은 방기의 애절한 이야기도 있다. 충청절도사의 비장 홍임의 방기 해월은 유복자를 세상에 남겨두고 목숨을 끊었다.

 

19세기 식자층은 누구나 방기 해월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시절에 누군가가 단양군수 퇴계에게 두향이라는 절조 있는 방기가 있었노라고 상상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나 두향은 과연 퇴계의 방기였을까. 내가 퇴계 문집에서 읽은 기록은 정반대 쪽을 가리킨다. 퇴계는 기생과의 접촉을 끝까지 거부한 특이한 선비였다. 그는 왕명으로 평안도에 내려갔을 때도 평안감사가 아름다운 기생을 안겨주었으나 끝내 거절했다. 또 어느 해인가 안동부사가 행차에 기생을 동반하자 퇴계가 나무랐다고 한다(<퇴계 언행록>).

 

단양군수로서 퇴계는 몇 차례 명승을 탐방했다. 제자 김성일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마다 퇴계는 초연히 혼자 나가서 수석(水石) 사이를 거닐었고, 들판의 농부들이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신선 같은 분이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매화에 대한 퇴계의 사랑도 이미 젊은 시절부터 시작된 거였다. 두향이란 기생의 등장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백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지만 실화는 결코 아니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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