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나의 미시사가 거시사와 만날 때

나는 친할머니가 참 어려웠다. 내 할머니는 포용과 사랑이 아니라 까다로운 예절 교육의 아이콘이셨다. 할머니가 오시면 늘 절을 하며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이렇게 절을 올리는 것은 내 세대에는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관습이었다. 절을 올릴 때면 상당히 긴장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팔의 각도, 어깨 자세 등을 놓고 또 한 소리를 들었고, 사촌들과 나란히 절을 할 때면 절에 대한 품평까지 각오해야 했다. 밥상머리에서 식사예절에 관한 잔소리도 한 무더기였다.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죽을 먹을 땐 가장자리부터 얌전히 떠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중학생인 내가 죽 먹는 방법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이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할머니의 아들 선호는 온 집안을 뒤흔들었는데,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내 할머니만 한 분은 찾기 힘들었다. 할머니는 내 세대의 어떤 할머니보다도 특이하고 유난스러워 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세월이 흘러 어느새 이 모든 이야기가 기억의 저편으로 희미해지던 어느 날, 우연히 일제강점기 구여성, 신여성과 같은 표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논문 한 편을 읽게 됐다. 1920~1930년대 신교육을 받은 남성들이 부모가 짝지어준 조강지처를 버리고 신여성과 연애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때, 신문이나 잡지에서 구여성과 신여성이 어떻게 표상되고 있는지, 이런 세태가 어떻게 그려졌는지를 다룬 부분을 읽다가, 문득 내 친할머니의 나이를 셈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친할머니가 바로 이 논문에서 다루는 그 구여성이었다는 것을.

참으로 웃긴 게, 그때까지 나는 친할머니가 태어나신 해를 따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생년의 마지막 숫자가 같았기에 어릴 때부터 늘 그 연세를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새삼스럽게 따져 본 할머니의 연세는 내 또래의 일반적인 할머니보다 20살은 더 많았다. 아버지가 늦둥이 막내였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이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구여성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할머니 이야기의 파편들이 술술술 엮이기 시작했다. 10대에 혼인하였으나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유학한다고 방학 때나 내려와서 시집살이가 서러웠다는 이야기, 할아버지가 내려와도 어른들이 길일 받아 합방해야 한다고 간섭해서 10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이야기, 신교육 받은 할아버지가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는 할머니에게 질색팔색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시에 소박맞는 아내들이 그렇게 많았으나 할머니는 워낙 미모가 출중해서 위기를 넘겼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건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훨씬 먼저 돌아가셨기에 교차검증은 안 된 이야기다.

할머니의 삶이 거시사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이해하고 나니, 할머니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지방 문중에서 가내 교육만 받은 여성, 소박맞는 자기 또래 ‘구여성’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운 시집살이에다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불안에 떤 10대 후반의 여성 등으로 내 나름의 역사지도에 매핑을 하며 객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지도에서 보면 내 할머니는 그냥 그 세대의 전형적인 한 부류였을 뿐이다.

개인의 미시사는 언제나 거시사와 맞닿아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이 지도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면 지나치게 자만심에 빠지거나, 이유 없이 억울해진다. 한편 내 좌표를 정확히 파악한 것만으로 안심해서도 안 된다. 가장 많은 점이 모인 곳에 나도 있으니 중간은 가지 않느냐며 안도하면 안 되는 시대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선량하고 평범한 다수 속에 안주하는 것이 발전을 막는 장벽일 수 있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시대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그 흐름이 거셀 때 그러하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가 거시사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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