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남편을 윽박지르는 조선의 억센 아내

경향신문 2021. 8. 26. 10:03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많이 들어본 말인데, 중국 고대에 왕촉이란 학자가 한 말이다. 이 말을 근거로 후대에는 신하의 의리와 아내의 도리를 단정하는 경향이 심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신분의 고하를 떠나서 홀로 된 모든 여성에게 수절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왕촉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공자와 맹자만 하여도 왕을 버리고 나른 나라로 떠나가기 일쑤였으니, 신하와 임금의 의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부부가 죽도록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도 틀렸다며, 이익은 이렇게 말하였다. “남편이 일찍 죽었는데, 어째서 아내가 남편이 살아 있을 때처럼 해야 하는가?”(‘출부(出婦)’, <성호사설>, 제7권) 그 말 끝에 이익은 한마디를 보탰다. “나이도 어리고 의지할 데도 없는 여성이 원한을 품은 채 일생을 마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지나친 일이다.”

 

이익은 이혼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어떤 남편은 아내의 음란한 행실을 발견하고도 관련법이 없어서 이혼 재판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단다. 이혼의 조건을 명시한 법 자체가 없어 많은 부부가 죽을 때까지 억지로 함께 살아야 하므로, 이것은 정말 슬픈 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조선 사회는 가부장사회였다. 이혼을 못해 평생 고통을 받은 여성이 훨씬 많았을 텐데, 실학자 이익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아내의 횡포에 시달리는 이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조선 후기의 사회상이었다.

 

이익은 그 점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 당시 남쪽 지방에 어느 양반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성질이 악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하루는 그 여성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관청에서는 여성이 피살되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남편을 붙잡아 고문을 하며 조사하였으나 사실관계가 불투명하였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관아에서는 사망사건으로 매듭지었다. 세월이 흐르자 그 남성은 어느 규수와 재혼하였다. 그러자 죽은 것으로 처리된 여성이 다시 나타나 자신이 아내라고 권리를 주장하였다.(이익, ‘이혼(離昏)’, <성호사설>, 제15권)

 

독자 앞에 이익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 남성의 재혼이 과연 합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몰래 달아났던 그 여성과는 이혼이 이미 성립한 것으로 보아도 되는가? 그러면서 이익은 악처에게 시달리는 남성이 적지 않다고 고발했다. 그들 여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혼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그는 강력히 주장하였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모습이다. 억센 아내에게 꼼짝 못하고 눌려 지내는 남편이 18세기 조선에 즐비하였다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즘 풍속은 악독한 아내 앞에서 남편들이 숨을 죽이고 눈을 감는다. 황하의 동쪽 기슭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사나운 아내가 남편에게 큰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일이 참으로 많다.”(같은 글)

 

그런데 여기서 글을 마치면 한 가지 오해가 생길 것이다. 실학자 이익은 억센 여성을 악마처럼 여기며 비난하였까. 그는 가정의 주도권이 아내의 수중에 있다고 전하면서 그 사정을 이렇게 분석하였다.

 

“오늘날 가정을 살펴보면 권세는 모두 아내에게 있다. 남편이 강하고 아내가 부드러우면 안팎살림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열에 한둘도 안 되는데, 아내가 억세면 남편이 유약하더라도 오히려 가문을 잘 보존할 수 있다.”(‘여다남소(女多男小)’, <성호사설>, 제12권) 이 말 끝에 이익은 여성의 가내 권력이 고려 때 더 강했다는 주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내가 억세면 생활력이 강해서 식구를 먹여살린다. 이익의 이러한 주장이 당대의 사회현실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는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말이다. 오늘날에도 억센 아내들이 우리네 가정을 이끄는 실질적인 힘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까닭은 왜일까.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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