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너만 아니면 된다고?

경향신문 2019. 7. 18. 11:27

포폄(褒貶) 문서라는 것이 있다. 조선시대 관원의 근무평정서다. 평가 주체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며, 평가 대상은 직속 하급 관원들이다. 평가는 매년 두 차례 실시하며 상, 중, 하로 성적을 매긴다. ‘하’를 받으면 퇴출이 원칙이다. ‘중’을 받아도 안심할 수 없다. 거듭 ‘중’을 받으면 역시 퇴출이다. 게다가 상대평가다. ‘하’를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평가자가 견책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현재 남아 있는 포폄 문서를 보면 평가 대상자 대부분이 ‘상’이고, ‘중’과 ‘하’는 한둘 정도다.


평가자 한 사람당 평가 대상자가 많지는 않으므로, 한두 사람만 ‘하’를 받아도 전체의 5~10%에 가깝다. 조선시대 근무평가는 6개월 단위로 하위 5~10%를 솎아내는 엄격한 제도였던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편법과 부작용이 있었지만,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능력 있는 자는 기용하고 능력 없는 자는 퇴출한다는 인사의 제1원칙을 제도적으로 관철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비하면 오늘날 공무원의 근무평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평가가 나쁘면 승진이 어려워지거나 월급이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여간해서 퇴출은 불가능하다. 하기야 기자들이 만장한 자리에서 ‘국민은 개돼지’라고 공언해도 퇴출이 불가능한데, 고작 능력이 부족하다는 애매한 이유로 퇴출이 가능하겠는가. 능력에 관계없이 오래 버틸수록 급여가 높아지는 호봉제는 덤이다. 이 같은 고용안정성 때문에 수많은 구직자가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을 꿈꾼다. 유난히 이 분야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등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날로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기존의 정규직 입장에서는 공정하지 않아 보이는 모양이다. 정규직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하는 구직자도 같은 의견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공정’이다. 능력에 따른 차별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를 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 있다.


시험은 공정한 경쟁이다. 그런데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나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은 일을 한다면 그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아니,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불평등과 불공정의 극치 아닌가. 비정규직이 시험을 거치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이 불공정하다면, 한 번의 시험으로 정규직의 특권을 얻고, 그 특권을 정년까지 누리는 것도 불공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정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정규직도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지 계속 공정한 경쟁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능력이 있으면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올라가고, 능력이 없으면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내려와야 공정한 세상 아닌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지속적인 평가로 무능력자를 퇴출했던 조선시대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오늘날에는 ‘능력이 있으면 정규직, 없으면 비정규직’이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능력 없는 사람이 일찍 태어난 덕택에 정규직을 차지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뒤늦게 고용시장에 진입한 탓에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 청년 구직자들은 능력이 있어도 정규직이 되기 어렵다. 기성세대는 걸핏하면 청년 구직자들에게 열정이 없다느니 노력이 부족하다느니 훈수를 두곤 하지만,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그들과 경쟁을 벌여 정규직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청년 구직자와 비정규직은 악화된 고용환경의 피해자일 뿐이다. 


만약 정규직도 예외없이 공정한 경쟁을 시키겠다고 하면, 사용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비정규직과 구직자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까. 그렇지만 실현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정규직의 극심한 반발로 사회가 마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톨게이트가 잠시 막히고 학교급식이 며칠 중단되는 정도는 애교다. 그러니 그들을 너무 탓하지 말자. 누군가 당신에게 공정을 요구하며 지금 누리는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면, 당신 역시 그렇게 해서라도 저항하지 않겠는가.


공정한 경쟁이 능사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은 모두를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에 몰아넣을 뿐이다. 한번 경쟁에서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챔피언이 방어전 치르듯 계속되는 도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규직은 무늬만 정규직일 뿐, 사실상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또는 정규직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에는 비정규직이 없고, 공정한 세상에는 정규직이 없다. 평등이 중요하다면 전자를, 공정이 중요하다면 후자를 선택하라. 이도저도 싫고, 지금처럼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기형적 고용구조가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면, 당신의 생각은 아마도 이것이리라.


“나만 아니면 돼!”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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