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

경향신문 2022. 3. 24. 10:37

지나간 시간과 사건들이 모두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당대인들의 생생한 경험과 기억이 소멸된 뒤, 역사가들이 주목하여 서술한 것들이 역사가 된다. 역사가들마다 동일한 사실에 주목하지는 않는다. 어떤 역사가가 서술 대상으로 선택한 사건이 다른 역사가에게는 선택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역사를 구성하는 내용이 반드시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마도 이번 3월9일 선거는 ‘촛불혁명’과 짝하여 한국 현대사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가 끝난 뒤 각종 방송과 신문, 잡지, 그리고 팟캐스트에 이번 선거의 의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넘쳐난다. 차츰 잦아들겠지만 아마도 얼마간은 이 흐름이 이어질 것이다. 이 많은 평가들 중, 시간이 지나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조선 후기에 살았던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은 <성호사설>에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라는 짧은 글을 남겼다. ‘역사책을 읽고 일의 성패를 헤아린다’라는 뜻이다.

“천하의 일이 대개 10분의 8~9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 역사책은 모두 (일의) 성패가 이미 결정된 후에 쓰였다. 그런 까닭에 그 성패에 따라 곱게 꾸미기도 하고 아주 더럽게도 만들어서, 그 일이 (나타난 것과 다르게 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이) 당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여겼다. 또 (기술된 내용이) 선(善)에 대해서는 (그 속에 있는) 허물을 숨긴 것이 많고, 악(惡)에 대해서도 (그 속에 있는) 장점을 꼭 없애버린다. 그런 까닭에, (역사책에 쓰여 있는) 어리석고 슬기로움에 대한 구별과 선과 악에 대한 보복도 확실하지 않다. 그 당시에 있어서는 묘책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졸렬한 계획도 우연히 들어맞게 되었으며, 선한 중에 악도 있었고 악한 중에 선도 있었다는 것을 도대체 알 길이 없다. … 천하의 일은 세(勢)를 잘 만나는 것이 최상이고, 행·불행(幸不幸)이 다음이며, 시비(是非)는 최하이다.”

이미 확보된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찾는 것은 쉽다. 반면에 현재의 어떤 일이 결국 어떻게 귀결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여러 가능성들 중 어떤 것이 나중에 현실로 나타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인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을 고려하면, 결과로 찾아낸 원인이란 대체로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성호 이익이 윗글 끝부분에 쓴 내용은 역사의 흐름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이다. 그는 일의 결과를 결정하는 요소로 세(勢), 행·불행(幸不幸), 시비(是非) 3가지를 들었다. 세는 구조나 추세를, 행·불행은 국면이나 상황을, 시비는 도덕적 올바름을 뜻한다. 유학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윤리적 가치이다. 철저한 유학자 이익이, 도덕적 가치가 인간 행동과 세상의 흐름에 가장 적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것은 역설적이다.

경제학이 현실의 경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지만, 정확히 예측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설명과 예측 사이의 거리가 경제학과 경제 사이의 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고 경제학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흐름에 가장 적은 영향을 준다고 하여 역사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멈출 수는 없다.


이번 선거 결과에도 그와 관련된 시사점이 도출되었다.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 극복, 그 집중적 희생자로서의 청년세대에 대한 사회적 기회 확대, 2030 여성 인권 보호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하나 더. 이익은 천하의 일에서 시비를 최하로 놓았다. 세상일이 결정되는데 윤리의 구속력이 제일 약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윤리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이라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윤리적 가치의 실행을 개인 의지와 판단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좋은 제도란 결국 인간의 어두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선한 마음을 조장하는 제도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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