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멈추지 않는 마녀사냥

경향신문 2019. 11. 21. 11:33

16~17세기 마녀사냥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광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살육당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이 척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마녀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1486년에 출간된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악마와 마녀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마녀사냥의 베테랑들이었던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도사와 요하네스 슈프랭거(1438~1495)가 저술한 책으로, 마녀를 색출하고 고문하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마녀사냥 안내서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선 악마와 마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2부에선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며, 3부에선 마녀를 기소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이 마녀사냥 가이드북을 보면 마녀 판별의 핵심 조건은 악마와의 계약이었다. 악마와 성관계를 통해 계약을 맺은 마녀는 악마의 하수인이 돼 악마의 연회에 참석한다. 이 악마의 주연에선 광란의 춤과 난잡한 성교가 행해진다. 주연을 마친 마녀들은 영아를 살해하고 짜낸 기름과 다른 재료를 섞어 제조한 마법의 향유를 선물로 받아간다. 계약을 맺은 마녀는 악마로부터 엄청난 힘을 얻어  빗자루나 막대기를 타고 날 수 있으며 동물이나 반인반수의 형상으로 변신할 수 있다. 부부간의 행위를 못하게 해 출산을 방해하고, 목축과 농업 생산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악령이 들게 만들고, 사람과 짐승을 병들게 하고, 암소의 젖을 마르게 하고, 폭풍우를 일으킬 능력도 있었다. 심지어는 태아나 신생아를 먹어치우거나 악마에게 바치기도 한다. 이처럼 교회와 성직자들이 만들어낸 정형화된 마녀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하나의 실체를 가진 존재로 자리 잡았다. 


악마와 계약을 맺고 악마의 연회에 참여한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어떻게도 증명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마녀를 판정하는 최후 수단은 고문을 통한 자백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하거나 거짓으로 공모자를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여론몰이, 누명 씌우기 등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 책은 1600년까지 28판을 찍을 정도로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성공했고, 그러한 성공 덕분에 16~17세기 마녀사냥을 위한 중요한 안내서 역할을 했다. 근대의 여명이 밝아오는 이 시기에 어떻게 이 터무니없고 비이성적인 책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두 명의 마녀사냥꾼과 이들의 책이 성공할 수 있게 뒷받침해준 첫 번째 공로자는 교황이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책의 서문에 저자들의 마녀사냥 활동을 방해하는 자들을 파문하겠다는 칙서를 내림으로써 이 책이 교회의 공식 입장과 교리임을 천명했다. 교황은 마법의 악이 그 도를 넘어 더 이상 관용과 아량으로 대할 수 없고, 앞으로 종교재판소의 주된 임무는 마법과 가차 없는 투쟁을 벌이고 마법을 완전히 뿌리 뽑는 일이며, 악마가 전 인류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만큼 교회는 전력을 다해 악마와 싸워야 하고 그 뿌리 깊은 마성을 완전히 근절시켜야 한다며 악마와 마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쾰른대학교 신학과 교수들의 승인서 역시 이 책의 권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교황의 칙서와 신학 교수들의 승인서가 악마와 계약을 맺는 마녀가 실재하며, 이들이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으므로 이들을 척결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인의 의무임을 확증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믿고 무고한 이웃을 고발한 대중들이 없었다면 근대 초 마녀사냥의 광풍은 불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들로 하여금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고발하게 만든 유혹 중의 하나는 밀고의 대가로 받는 금전적 보상이었다. 하지만 마녀사냥의 책임을 그들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은 만성적인 기근과 그로 인한 기아, 봉건 영주들의 착취,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주기적으로 가져가는 전염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식을 독점한 교회와 성직자들의 설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녀사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발전으로 점진적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만들고 특정 집단이나 사람을 공격하는 일종의 마녀사냥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만들어낸 최고의 마녀사냥은 아마도 빨갱이 때려잡기일 것이다.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매카시즘이라 불리는 공산주의자 사냥 열풍이 불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정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매카시의 고발 직후 미국에서는 600여명의 공무원, 연예계 종사자, 교육자, 노동운동가들이 청문회에 불려나가고, 직장을 잃고, 투옥되었다. 그러나 매카시즘의 열풍이 지나간 뒤 재심이 진행되자 이들 가운데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 고발과 폭로, 그리고 무비판적인 여론몰이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여전히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근거 없이 추정을 이어가며 여론을 선동하는 사람들을 본다. 광폭한 마녀사냥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불행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런 무분별한 거짓 고발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아울러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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