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보신각, 시간을 널리 알리는 집

경향신문 2020. 12. 10. 09:44

1395년, 조선 태조는 운종가(현 종로1가)에 누각을 짓고 큰 종을 달았다. 아침저녁 종을 쳐 백성에게 시간을 알렸다. 조선 최초의 종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종각이 불타자 건물을 새로 짓고 사찰의 범종을 옮겨 달았다. 그 뒤로도 종각은 누차 화재를 겪고 자리를 옮겼지만, 그 종은 변함없이 도성 사람들의 시계 노릇을 했다. 이른바 ‘보신각 종’이다.

 

종각에 보신각 이름이 붙은 경위는 자세하지 않다. 고종 시절 붙인 이름인 듯한데, 고종이 직접 붙였다고도 하지만 증거는 없다. ‘보신’ 의미도 분명치 않다. 혹자는 방위에 맞춘 이름이라 한다. ‘인의예지신’은 각기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데, 동쪽에 흥인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홍지문이 있으니, 도성 가운데 자리한 종각의 이름에 ‘신’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대문 안 건물 이름에 전부 ‘신’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인의예지’를 넣은 도성 문들의 이름은 개국 초에 지은 것이다. 500년이 지난 고종 때 와서야 ‘신’을 채워넣었다니 이상하다. 무엇보다 건물과 성문은 다르다. 건물의 이름은 그 건물의 기능과 관련이 있기 마련이다.

 

보신각 이름에 ‘신’이 들어간 이유는 따로 있다. 신뢰야말로 시간의 생명이며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계절처럼 믿음직하다(信如四時)”란 말이 있다. 매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처럼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시간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시간은 항상 일정하고 정확하다는 믿음에서다. 만약 시간이 수시로 길어지고 짧아진다면, 시간의 신뢰성에 바탕한 세상의 질서는 무너지고 만다. 도성 백성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리는 게 보신각의 역할이다. 시간(信)을 널리 알리는(普) 집(閣)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시간을 알린다는 뜻의 한자어 ‘보신(報辰)’과 동음이의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닌 듯하다.

 

전근대 국가들은 달력과 시계 제작에 국력을 기울였다. 시간에 대한 신뢰는 국가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종각의 종이 제때 울리지 않으면 관련자를 엄벌에 처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 기술로 만들어진 시계가 널리 보급되면서 종각의 운영은 중지되었다. 보신각 종은 한동안 하는 일 없이 매달려 있다가 새 역할을 맡았다. 다름 아닌 ‘제야의 종’이다.

제야의 종은 본디 일본 풍습이다. 일본 각지의 사찰에서는 제야를 맞이하여 108번 종을 치곤 했는데, 1927년 도쿄방송국이 생중계하면서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2년 뒤 경성방송국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타종 행사가 진행되었다. 일본의 사찰에서 종을 빌려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직접 쳤다고 한다. 이로부터 제야의 종 타종식은 전국 각지의 유명 사찰로 퍼져나갔다.

 

보신각에서 타종 행사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53년이다. 그로부터 67년간 보신각 종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새해를 알렸다. 우리의 전통은 아니지만 굴곡진 현대사를 함께한 존재임은 부정할 수 없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멈춰선 우리의 일상처럼 잠시 멈추게 되었다. 방역이 중요한 때이니 어쩔 수 없다. 이 또한 보신각 종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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