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비둘기를 사랑한 조선의 부자들

경향신문 2020. 4. 2. 11:05

물질에 대한 욕망,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성리학도 그렇고 불교와 도교, 기독교와 이슬람에서도 물질적 욕망에 휘둘리면 절대 안된다고 가르친다. 어떤 경전을 펴도 부자가 되어서도 결코 욕망의 노예는 되지 말라는 준엄한 가르침이 도처에 있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 선비들은 재물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다룬 글을 쓰기 일쑤였다.


그런 조선 시대에도 경제적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인구도 줄었다 늘기를 반복하였고 농업생산량도 부침을 거듭했다. 재력의 분배도 때에 따라 상당히 달라졌다. 특히 18~19세기에는 빈익빈 부익부로 요약되는 경제적 양극화가 더욱 심해졌다. 많은 선비가 이 문제를 ‘사치’의 만연이라고 비판하며 근검의 철학을 강조하였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비판적인 선비라면 무명자(無名子) 윤기(尹기, 1741~1826)가 생각난다. 그 자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특권층의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다. 그의 문집에는 ‘부귀한 집안의 네 가지 물건(詠富貴家四物)’이란 장편 시가 실려 있다(<무명자집 시고>, 제4책). 67세에 쓴 7언 절구(絶句)의 연작시였다. 당대의 부자들이 애지중지한 애완물 네 가지를 소개하고 조목조목 비판하는 시였다. 매화, 소나무 분재, 비둘기 둥지 그리고 서책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요즘 재벌들의 애호품은 과연 무엇일까. 나 같은 서민은 짐작도 못할 일이지마는 오늘의 눈으로 볼 때 18~19세기 조선 부자들의 사치품은 소박한 수준이었다.


조선의 부자들은 멋진 비둘기 집을 지어놓고 각양각색의 비둘기를 키웠단다. 윤기는 이렇게 읊었다.


“무늬 새긴 난간 높은 시렁에 단청도 휘황하네/ 좁쌀 허비해가며 비둘기 길러 구경거리를 만들다니 / 노랫소리도 구욱구욱 성질도 음탕해 내세울 게 과연 무엇인가/ 못하고 말고, 인(仁)의 이치를 지닌 달걀만이나 할까” 


시에서 보듯, 부자들이 가진 비둘기 집은 단청으로 아름답게 꾸민 특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역사를 알고 보면 한국의 특권층이 비둘기를 사랑한 역사는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것이 중간에 희미해졌다가 조선 후기에 되살아난 거였다. 고려 후기의 역사책을 읽어보면 옛사람의 비둘기 사랑은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공민왕이 그러했다. 왕은 비둘기를 몹시 사랑하여 수백 마리를 대궐 안에서 키웠단다. 왕은 비둘기용 새장을 만드는 데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베가 1000필이나 소모되었단다. 비둘기 모이로 왕이 소모하는 곡식만 해도 매달 12섬(斛)이었다(<고려사절요>, 공민왕 17년, 8월). 가난한 백성은 배를 곯고 있으나, 왕은 비둘기 모이로 귀중한 곡식을 마구 허비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왕조가 바뀌어 민본의 정치를 표방하는 조선시대가 되었다. 풍습도 썩 달라졌다. 세종은 사치스러운 왕실 정원 상림원(上林園)을 해체할 정도였다. 왕은 그곳에 있던 진귀한 식물이며 비둘기까지도 모두 민간에 나누어주었다. “임금님은 진귀한 물건을 좋아하지 않으셨다.”(<국조보감>, 세종 8년) 그 뒤로 조선에서는 비둘기를 키우는 풍습이 사라졌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정치적 이념의 힘이 얼마나 셌는지 실감이 된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사회풍조가 바뀌었다. 특권층은 다시 비둘기를 애호하였다. 영조와 정조는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였으나, 신하들은 만금을 헤아리는 재물을 뽐내며 물질적 욕망을 마음껏 추구하였다. 윗물이 맑다고 아랫물도 맑으란 법은 없는 것일까. 어쩜 그보다는 재물에 관한 인식에도 변화가 왔다고 봐야 하겠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근접한 세계관이 형성되고 있었다. 달라진 시류를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무명자 윤기라든가 영조와 정조는 꽤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대세는 반려견과 반려묘가 아닐까. 누구나 이들을 기르며 가족의 일부로 대접한다. 고양이와 개를 아들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세상은 늘 바뀌고 우리의 태도와 생각도 달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홍수가 지나간 다음, 지구에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차별과 배제의 악습이 더욱 강고해지지는 말아야 할 텐데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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