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사람이 먼저다

경향신문 2019. 6. 20. 13:51

춘추시대 위(衛)나라 의공(懿公)은 학을 끔찍이 아꼈다. 학을 관직에 임명하고 녹봉도 지급했다. 귀족이나 탈 수 있는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 어느 날 북방 이민족이 위나라를 침략했다. 의공은 백성들에게 무기를 나누어주고 맞서 싸우게 했다. 백성들은 거부했다. “학에게 싸우라고 하시지요.” 백성에게 외면당한 의공은 결국 이민족 군사들에게 죽고 말았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말을 애지중지했다. 비단옷을 입혀 침대에서 재우고, 대추와 육포를 먹이로 주었다. 말이 죽자 장왕은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귀족의 예법에 준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려 했다. 반대하는 자는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우맹(優孟)이라는 신하가 교묘하게 왕을 설득했다.


“귀족의 예법은 야박합니다. 왕의 예법으로 장사지내십시오.” “어떻게?” “옥으로 관을 만들고, 귀한 재목으로 상여를 만드십시오. 백성을 시켜 왕릉을 조성하고, 장례식에는 외국 사신들을 초청하십시오. 장례가 끝나면 사당을 세워서 길이 제사를 지내십시오. 그러면 왕께서 사람보다 말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장왕은 그제야 잘못을 깨닫고 죽은 말로 요리해 사람들의 배 속에 장사지냈다. 말에게 걸맞은 장례식이었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투계(鬪鷄)를 좋아했다. 궁중에 싸움닭을 기르고 500명의 군사를 시켜 돌보게 했다. 날개에 금가루를 뿌리고 발에는 쇠발톱을 끼웠다. 행차를 떠나면 수백 마리를 새장에 넣어 데려갔다. 닭이 싸움에 이기면 비단을 수백 필씩 하사했다. 현종은 말도 좋아했다. 궁중의 가무를 담당하는 교방(敎坊)에서 말 400필을 기르고 춤을 가르쳤다. 잔치를 벌일 때마다 말떼의 춤을 선보였다. 민심은 현종을 떠났고, 결국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다.


당나라 마지막 황제 소종(昭宗)은 원숭이를 키웠다. 높은 관직에 임명하고 관복까지 입혀 항상 곁에 두었다. 훗날 소종이 간신 주온(朱溫)에게 살해당할 때, 막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원숭이 한 마리만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원숭이가 사람보다 충성스럽다고 했지만, 애당초 원숭이에게 쏟을 애정을 사람에게 쏟았다면 소종의 말로가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물을 사랑한 군주가 반드시 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았으니, 동물 사랑과 인간 사랑은 별개인 모양이다.


앞서 언급한 군주들이 권좌에서 쫓겨난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쏟아야 할 관심과 애정을 동물에게 쏟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 사람의 존재는 참을 수 있어도, 자기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 동물의 존재는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사람보다 대접받는 동물의 존재는 민중의 분노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민중은 사람을 동물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군주를 외면하고, 때로는 혁명을 일으켜 축출했다. 그 배경에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유교적 인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맹자가 말했다. “주방에 기름진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이다.” 동물을 먹이느라 사람을 굶기는 군주는 군주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그나마 사람이 최소한의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유교적 인본주의 덕택이었다. 


동아시아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동물보다 소중하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민중이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 민주주의의 역사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사람을 동물 취급하면 안 된다는 뜻이며, 사람다운 삶은 동물보다 나은 삶을 의미한다. 사람이 동물보다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 역사의 진보다.


그간 인간 중심의 문명은 수많은 동물을 희생시켰다. 이제 반성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도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식도 달라졌다. 동물권은 청와대 국민청원의 단골 이슈다. 개고기를 없애라, 동물 실험을 금지하라, 동물 학대를 처벌하라, 전부 20만 명 넘게 참여해서 답변을 받아냈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동물이 지금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도록 해야겠지만, 구부러진 것을 펴려다 반대쪽으로 구부러뜨리는 교왕과직(矯枉過直)이 되면 곤란하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이룩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사는 우리로서는 사람이 동물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다른 개체, 다른 종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도 사람은 다른 어느 존재보다 소중하다. 이 점에서 동물 학대가 사람의 갑질보다 더한 공분을 일으키는 지금의 현실은 다소 우려스럽다.


사람이 동물보다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은 지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땅의 인권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행위다. 사람은 이념보다, 돈보다, 그리고 동물보다 소중하다.


“사람이 먼저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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