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선거는 예상에 불과하다

경향신문 2020. 4. 24. 11:19

이번 투표에 사용한 기표용구에는 동그라미 안에 ‘점 복(卜)’자가 들어 있다. 원래는 ‘사람 인(人)’이었는데 용지를 접었다가 잉크가 묻어서 누구를 찍었는지 분간하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려고 바꿨다고 한다. 대칭을 이루지 않는 글자라야 확실히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설명이다. 대칭 아닌 글자는 얼마든지 있다. 고작 혼동을 피하려고 사람 인을 비틀어 점 복으로 만들었다니.


일설에는 ‘사람 인’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ㅅ’을 연상케 한다는 논란이 있어 바꾸었다는데, 만약 이름에 ‘복’자가 들어가는 사람이 출마하면 그때는 또 어떡할지 모르겠다. 애당초 ‘사람 인’을 집어넣은 이유도 불분명하다. 이처럼 먼 옛날의 일도 아닌데 그리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꿈보다 해몽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복’에는 사람을 뽑는다는 뜻이 있다. ‘복’은 갈라진 거북 등껍질을 형상한 글자다. 거북 등껍질을 불에 태워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던 시대의 산물이다. 중요한 자리에 앉힐 사람을 뽑을 때도 점을 쳤다. 점으로 만사를 결정하는 관습이 자취를 감춘 뒤에도 그 흔적은 남았다. 조선시대 정승 선발 절차를 뜻하는 매복(枚卜), 복상(卜相) 따위의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매복록(枚卜錄)>이라는 책이 있다. 조선의 역대 정승 후보자 및 당선자 명단이다. ‘매복’은 <서경> ‘대우모’의 “공이 있는 신하들을 일일이 점쳐서 길한 쪽을 따른다(枚卜功臣, 惟吉之從)”에서 유래한 말이다. 원래는 점을 쳐서 사람을 뽑는다는 뜻이지만, 사람을 뽑는다는 뜻만 남았다.


정승은 관료제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로, 국왕을 대리하여 문무백관을 통솔한다. 국왕은 가부를 결정하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정국 운영은 정승의 역할이다. 정승을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초기에는 국왕이 지명했지만 <매복록>에 나타나는 조선후기 정승의 선발 절차는 투표와 비슷한 점이 있다. 전·현직 정승들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국왕이 한 사람을 골라 낙점하는 방식이다.


정승 후보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이조 또는 병조 판서를 거쳐 1품에 오른 관원으로 뚜렷한 흠결이 없어야 한다. 후보는 대개 두셋이지만 단독인 경우도 있고 열 명 가까운 후보가 난립한 경우도 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국왕은 후보를 추가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고르고 골라서 뽑았으니 전부 성인군자였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부정부패로 탄핵을 받고 실각하거나 처형 또는 유배로 생을 마감한 이가 부지기수다. 결과적으로는 부적격자를 선발한 것이다. 애당초 완벽한 인사란 없는 법이다.


점이라는 것이 예상에 불과하듯 인사도 예상에 불과하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할지 못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 결과를 예상한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선거 자체가 예상이다. 당선자가 적임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보다 많은 유권자가 적임자로 예상한 사람일 뿐이다. 이 점에서 선거는 고작해야 세련된 형태의 점술에 지나지 않는다. 예상은 맞을 때도 있지만 빗나갈 때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다.


당선은 유권자의 예상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다. 임기 동안 마음껏 권력을 휘둘러도 좋다는 뜻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유권자는 당선자가 기대를 저버리면 지지를 철회할 권리가 있다.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도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선출된 권력에게서 권력을 회수한 경험이 있다. 굳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본다. 독재국가에도 형식적이나마 선거는 존재한다. 결정적 차이는 선출된 권력을 제어할 방법의 유무다.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유로 감시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선거는 무의미하다. 이 점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며, 꽃이 아니라 씨앗이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골라 심어도 저절로 잘 자라는 법은 없다. 물 주고 거름 주고 김매고 솎아내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유권자의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흑사병과 의사 기 드 숄리아크  (0) 2020.05.06
퇴계의 편지 “아내를 공경하라”  (0) 2020.05.04
선거는 예상에 불과하다  (0) 2020.04.24
코로나19와 정체성  (0) 2020.04.16
낙인찍기  (0) 2020.04.09
비둘기를 사랑한 조선의 부자들  (0)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