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세상을 일깨우는 죽비 같은 책 ‘칠극’

경향신문 2021. 6. 3. 10:19

방적아(龐迪我)라는 낯선 이름을 아실까 모르겠다. 본명은 디다체 데 판토하. 스페인 사람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과 안정복의 저술을 비롯해 여러 문집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방적아가 유명해진 것은 <칠극(七克)>이라는 책을 썼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칠극>은 <천주실의>와 함께 가장 인기 있었던 서학 서적이다. 이 책은 성리학자들의 애독서인 <사물잠>과 유사하다. <사물잠>이라면 공자가 수제자 안연에게 일러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방편을 풀이한 것으로,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 <칠극>은 비슷한 내용을 훨씬 체계적으로 서술한 데다 동서양의 명언 명구를 인용해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감명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최근 간행된 <칠극>(정민 역, 김영사, 2021)을 다시 읽으며, 나는 풍부한 해설과 유려한 번역에 감탄하였다.

 

이 책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누군가로부터 비방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이가 제정신으로 나를 헐뜯었다면 화를 내도 되겠으나, 그 마음이 병들어서 나를 헐뜯은 거라면 성을 낸들 무엇하랴?” 조선 선비들은 낯선 서양 선교사가 전하는 주옥같은 말씀에 공감하였을 것이다.

 

저자는 선교사라 <성경> 말씀도 빠뜨리지 않았다. 게으른 농부의 밭에는 가시덤불이 가득하더라며, 잠깐이라도 마음을 내버려두면 삿된 생각과 더러운 욕망이 수많은 싹으로 돋아나 덤불을 이룬다고 경고하였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인데 그 취지가 유교 경전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 신앙의 모범 솔로몬 왕도 책에 등장한다. 천사가 솔로몬을 찾아와 무엇이든 원하면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자 왕은 자신에게 지혜를 달라고 간청하였고, 천주는 그에게 지혜는 물론이고 부귀영화와 건강까지 주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며 선비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의심을 품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 책을 조서에서 가장 먼저 읽은 사람은 실학자 성호 이익이었던 것 같다. ‘칠극(七克)’이란 글에서, 그는 이 책이 유교의 극기(克己)와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내용도 풍부하고 논리적이며 비유도 적절해 수양에 도움을 준다고 호평하였다. 하지만 ‘천주’와 ‘마귀’ 등 이설이 포함되어 있어서 유감이라고 하였다(<성호사설> 11권).

이 책이 널리 유행한 것은 정조 8년(1784) 무렵이었다. 천주교 신자 이벽의 영향으로 정약전과 정약전 형제가 이 책을 읽었다(<다산시문집> 15권). 이가환과 이기양 등도 이 책을 손에 쥐었다. 윤지충 역시 이 책을 빌려 보았다고 하였듯, 그 당시에는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윤지충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칠극>을 빌려 옷소매에 넣고 고향 진산으로 돌아가 철저히 학습하였다(<실록> 순조 1년 12월22일). 그런데 그때부터 조선사회에는 천주교를 공격하는 물결이 거세졌다. 안정복은 권철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설사 뼈를 찌르는 듯한 절실함이 있다고 하여도 이 책이 학자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비판하였다(<순암선생문집> 6권). 순조는 신유사옥이 끝난 뒤 반포한 ‘반교문’에서 “<칠극>은 황당하기가 도참서나 다름없다”고 매도하였다(<실록> 순조 1년 12월22일).

 

그래도 <칠극>은 살아남았다. 유배지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정약용은 남몰래 이 책을 인용하였다. 그가 자제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 책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지금 우리는 관점과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에 산다. 죽비처럼 우리를 일깨우는 책 <칠극>이 많이 탄생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인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