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세종의 마음 씀씀이

경향신문 2020. 11. 19. 14:17

조직을 지키려면 ‘충신’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세종도 그렇게 생각했다. 고려가 망할 때 충신과 의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왕은 늘 마음이 불편하였다(실록, 세종 13년 3월8일).

 

고심 끝에 세종은 고려의 충신을 현양하기로 마음먹었다. 왕은 당대 최고의 역사가 설순과 더불어 고려 말 여러 인물의 행적을 따져보았다(세종 12년 11월23일). 설순은 길재를 뛰어난 충신이라고 손꼽았다. 그러면서도 그 학문은 빼어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세종은 설순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학문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며 행실에 비중을 뒀다.

 

“길재의 충성스러운 행적이 귀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벼슬을 추증하였고, 그 아들에게도 관직을 주었다. 고려의 귀족은 누구나 조선왕조에 합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길재는 가문이 한미하여 생활이 풍족하지 못한데도 애써 벼슬을 사양하였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후세가 이런 사실을 알게 하라.”

 

이어서 세종은 정몽주의 행실도 기렸다. “태종께서는 정몽주가 충의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점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그를 호평하고 자손에게 상도 주셨다. 정몽주 역시 고려 충신으로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옳다.” 부왕 태종이 제거한 정몽주를 세종은 고려 최고의 인물로 손꼽았다. “정몽주는 참으로 성품이 순후하고 진실하였다. 그런데 길재는 성품에 모난 점이 없지 않았다.” 집현전 학사 권채는 세종의 평가에 공감하면서, 고인이 된 대학자 권근도 정몽주를 지극히 존경했다는 말을 덧붙였다(세종 13년 3월8일). 권근과 권채는 숙질간이었다.

 

두루 살핀 끝에 세종은 설순에게 이렇게 지시하였다. “정몽주는 죽을 때까지 절개를 지켜 변할 줄 몰랐다. 또 길재는 절조와 마음을 잘 보존하여 관직을 줘도 상소를 올리고 물러났다. 그대는 둘의 모습을 <충신도>에 올리고 그들을 기리는 문장을 지으라.”(세종 13년 11월11일)

 

고려 말의 대학자요, 정몽주의 스승이었던 목은 이색도 왕의 눈길을 끌었다. 세종은 그의 됨됨이를 깊이 알고자 했다(세종 13년 3월8일). 마침 조정에는 이색과 친분이 있었던 이긍이란 신하가 있어, 보고 들은 바를 증언하였다. 이색은 문장에 재주가 뛰어났으나, 관리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식한 권채는 이색의 또 다른 면모를 떠올렸다.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지나치게 큰 건물을 지으려 하자 유탁이란 대신이 반대하였다. 공민왕은 화를 내며 유탁을 죽이려 하였는데, 이색이 간언하여 그는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세종은, 이색에게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장점이 있었다며 찬탄하였다.

 

사실 이색과 정몽주 등에게도 심각한 문제점이 없지 않았다. “내 생각에 고려 때 이색과 정몽주도 그러했고, 이 나라 초창기의 대신들도 모두 똑같은 잘못이 있었다. 그들은 당파를 만들어 상대에게 피해를 많이 주었다.”(세종 25년 6월22일) 세종은 그들의 결함을 똑똑히 알고 있었음에도, 장점으로 단점을 가려주었다. 남의 잘못이 눈에 띄기만 하면 부풀리고 헐뜯는 데 익숙한 소인배들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넉넉한 마음가짐이었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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